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입니다. 이 때가 되면 으레...'장애인'에 대한 기획 기사가 쏟아집니다. 무관심이 일상이 되어버린 장애인들에게 '반짝'하는 여론이 어떤 느낌일까요? 냉소적일 수도...그나마 이거라도...란 두가지가 엇갈리겠죠.
'관광지 등의 장애인 이용 실태'에 대한 기사를 준비해보란 지시를 받은건 금요일 아침이었습니다. 전날 너무 많이 마신 술 탓에 괴로워하던 중 전화를 받았죠. 처음엔 간단하게 생각했습니다. 장애인 섭외해 몇 군데 가보면 되겠지 싶었죠.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랬더니...이걸 보는 사람들이 공감을 할 수 있을까란 의문이 생기더군요.
기본적인 생활이 아닌 '여가활용'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건데 '여가'란건 장애인 중에서도 누릴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가 있고, 누릴 수 있는 사람이 갈 수 있는 곳은 그런 장치가 어느 정도 돼 있을 것이기에 기본적인 이동권을 보장해주면 최소한 사회가 할 일은 다 한 게 아닐까란 생각이었죠.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며 같이 다녀줄 장애인을 찾았는데 이게 쉽지가 않았습니다.
'이쯤에서 접자'란 게 제 솔직한 바램이었는데 광화문 열린마당에서 장애인 집회가 있으니 거기 가서 같이 다녀볼 분을 찾아보란 지시에현장에 있던 후배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그 쪽으로 이동하던 중 도와줄 분을 찾았단 말을 들었죠. 2001년 교통사고로 뇌병변 1급 장애인이 된 이종욱 씨였습니다.
'장애인의 날'을 맞아 이 문제를 제기한 '장애인편의시설촉진시민연대'는 장애인이 나들이를 나설 때 이런 점에서 힘들단 이야기를 차근차근 해줬습니다. 제가 '장애인'이 아니기 때문에 사실 말로만 들었을 땐 잘 와닿질 않았습니다. 종욱 씨와 청계천을 걸어봤습니다. 길 포장에서부터 전 돌로 된 울퉁불퉁한 포장이 고즈넉스럽고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휠체어를 탄 분들에겐 이야기가 다르더군요. 극심한 진동에 진로 이탈이 되는 경우도 많고, 심지어는 넘어질 수도 있었습니다. 청계천 구간 5.84km 중 장애인 화장실은 모두 6곳이 있습니다. 문제는 이들 화장실로 올라가는 길에 휠체어 경사로가 없다는 겁니다. 경사로를 가려면 그 위치에서 1km를 더 가야합니다. 결국 화장실에 다녀오려면 4km를 가야하는 셈이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도 큰 문제였습니다. 저희 차론 이동이 불가능하니 장애인 콜택시를 불러야했는데요. 1시간 넘게 기다리는 건 예사였습니다. 나중엔 저희가 시간에 쫓겨 휠체어를 맡기고 종욱 씨를 저희 차에 태운 다음 도착한 곳의 대여용 휠체어를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서양의 경우 '장애인'에 대한 시설이 우리보다 더 잘 갖춰져있죠. 이는 '장애'가 우리에게도 언제나 올 수 있다는 생각에서라고 합니다. 나도 언제 '장애인'이 될 지 모르니 그에 대한 편의 시설을 갖추는 건 당연하다는 사고방식이죠. 하지만, 우리는 그런 의식보단 '장애인이 뭘 그런 것까지 바래?'란 생각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휠체어에 의지한 편의시설 연대 사무총장 말씀이 저의 마음을 콕 찌르더군요.
장애인도 당연히 편의시설을 이용해 관광을 즐길 권리가 있는데 당연히 안 올 것이라 생각하고 아예 편의시설을 만들지 않는다는 장애인들은 지속적으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해왔습니다. 때로는 격렬하게...과격하게... 그 결과 여러가지 결과물을 얻어냈죠.
올해 4월부터 시행된 '장애인 차별 금지 법률'도 그 투쟁의 산물입니다. 이에 따르면 장애인이란 이유로 일자리 등은 물론 관광이나 여가생활에서도 불편함을 겪지 않도록 늦어도 2015년까진 편의시설을 갖춰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전국의 관광지와 숙박시설, 음식점 가운데 장애인들이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는 곳이30%가 채 안 된다고 합니다.
제도는 본래 사회를 따라가는 법입니다. 하지만, 건물 곳곳마다 붙어 있는 '금연'표지판 아래에서 담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것처럼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제도가 마련된 들...실효성이 전혀 없습니다. 장애인 차별법은 현재 한국 사회 구성원들에게 어떻게 비쳐질까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일상화되지 않는 한 법과 제도는 실효성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취재 과정에서 만났던 장애인들이 한결같이 꼽은 '장애인에 대한 배려 부족'이 마음을 때리면서 여가 생활에서 장애인 편의 시설 부족에 대해 안이하게 생각했던 제가 부끄러워졌습니다.
[편집자주] 유재규 기자는 2005년 SBS 기자로 입사해 국제부를 거쳐 사회2부 사건팀 기자로 취재 현장을 누비고 있습니다. 따뜻한 시선과 섬세한 취재로 우리 일상의 사건.사고와 숨은 이야기들을 전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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