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주림이 한계를 넘으면 독재권력에도 맞서는 용기가 생긴다.
최근 아이티는 물론 이집트 등에서도 곡물가격 급등으로 폭동이 일어나고 있고, 베트남,아르헨티나 처럼 주요 곡물 수출국들은 민심을 달래기 위해 수출물량을 통제하고 있다.
과거 중국의 천안문 사태도 물가급등에 따른 불만에서 시작된 것처럼 '먹을 것'을 제대로 먹지 못하도록 식품가격이 뛰면 독재국가에서도 시위가 일어난다.
이미 여러 차례 지난 글에서 설명한대로 밀,옥수수 등 곡물 가격은 일 년도 안 돼 2,3배로 뛰었고 이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주식으로 삼는 '쌀' 가격도 미쳤다고 할 정도로 폭등하고 있다.
세계 금융위기가 파생상품이 발달한 선진국에 타격을 주는 위기라면 최근 식량위기는 주로 가난한 나라의 중산층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고 있다. 여기에는 어쩔 수 없게 위기를 초래한 원인도 있지만 부시 행정부를 비롯한 각국 정부의 정책적 실패도 위기에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 1월 초 '2008년 화두는 물가급등'이라는 글을 비롯해 여러 차례 글을 통해 식량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뛰는 이유에 대해서는 설명을 해 왔다. 중국과 인도의 경제가 성장하면서 소득이 늘어난 중국,인도인들이 육식을 자주하게 돼 그만큼 가축들을 먹일 곡물사료 수요가 늘어난 측면이 있고, 기상 악화로 세계 2위 밀 수출국인 호주가 흉작을 겪으면서 수요는 늘고 공급이 줄어든 상황을 만들었다. 이런 것은 어쩔 수 없는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최근 곡물 가격 급등분의 20~30%는 투기세력이 낀 탓이라는 분석에서 알 수 있듯이 서브프라임 사태로 실물 경제침체 위기를 겪게 된 미국이 금리인하를 통해 달러 가치를 계속 떨어뜨리면서 투기세력이 달러 자산을 팔고 원유와 곡물, 원자재 시장에 몰려 가격급등을 부추켰다. 이 부분은 잘못된 정책과 위기를 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측면이 섞여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곡물시장에서 돈 좀 벌겠다는 투기세력의 욕심이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어느 한 가족을 굶어죽게하고 있다는 비난은 가능하다.
그런데 이런 식량 위기를 부른 원인 가운데는 정치인들이 표를 좀 얻어보려고 한 욕심에서 비롯된 잘못된 정책 하나가 작용하고 있다. 바로 옥수수를 이용해 생산하는 바이오 에너지인 에탄올 경작을 장려하기 위한 부시 행정부의 보조금 정책이다. 친 환경적인 연료를 사용해 환경을 보호하자는 것이 왜 잘못된 정책이냐고?
우선 2006년 부시 미 대통령의 연두 교서에서부터 발동이 걸린 에탄올 장려책의 배경에는 선거를 앞둔 공화당이 이른바 'The Farm States'에서 표를 더 얻어보려 한 전략이 숨어있다. 백번 양보해서 순수하게 환경도 생각하고 표도 얻어보겠다는 생각이었는지 몰라도 결과는 엉뚱하게 나타났다. 농민들이 보조금을 받으려고 밀농사를 때려치고 너도나도 에탄올 원료가 되는 옥수수를 경작지에 심으면서 세계 주요 밀 수출국인 미국의 밀 공급이 줄었다. 미국이 옥수수를 원료로 한 바이오 연료에 앞장을 서다보니 옥수수 가격이 오르고 이렇게 되자 다른 밀 수출국들도 밀이나 쌀보다는 경작지에 바이오 연료로 쓸 수 있는 곡물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제는 옥수수에 이어 밀 가격까지 폭등하게 됐다.
이런 정책은 환경에도 그리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바이오 연료 붐이 일면서 브라질 같은 경우 경작지가 아닌 곳도 나무를 베고 경작지로 만들어 사탕수수나 옥수수를 심으면서 산림의 황폐화(deforestation)를 가져오고 있다. 당연히 기후변화에 악영향을 주는 결과를 가져온다.
더욱이 바이오 연료 수요가 늘어나게 된 근본 이유는 국제유가의 급등세인데 국제유가가 이렇게 뛰고 있는데는 주요 산유국인 이라크가 미국의 이라크 전 장기화와 내란으로 공급을 제대로 하지 못한 탓도 있다고 봐야한다.역시 부시 탓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타임>지나 칼럼니스트이자 경제학자인 크루그만 교수는 부시 행정부의 바이오 연료 장려책을 "대국민 사기" 라고 규정하며 비판을 가하고 있기도 하다.
다행히 우리는 주식인 쌀의 경우 비축분이 많아서 위기를 겪을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위기는 위기가 오지 않았을 때 벌어졌던 '논쟁'의 승자를 가려주기도 한다. 위기 상황에서 쌀을 자급하지 못할 경우의 위험성을 지적하던 쪽에 대해 반대편에서는 "쌀이 부족하면 언제든지 다른 나라에서 사면 된다" 고 반박했다. 그런데 밀,옥수수 등 곡물 가격 급등이 닥친 지금 우리는 과연 어떤가? 해외에 경작지를 확보해 놓지도 못했고 위기 상황이 오자 주요 곡물수출국들은 수출을 통제하고 있다. 말 뿐이었지 제대로 된 대책을 세워놓지 못했다는 말이다.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정책결정자들이 위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다시 위기가 올 때 우리라고 낭패를 당하지 못하리란 법이 없다. 그럴싸하게 포장된 '정책'이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될 지를 꼼꼼하게 따져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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