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성있는 수사관련 예산·인력 뒷받침해야"
"성범죄 전반의 법정형을 대폭 올리겠다는 것은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지 못할 뿐 아니라 엉뚱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서울고법 행정2부에 근무하는 설민수(39) 판사가 최근 법무부가 아동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범인들에 대해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하는 내용의 가칭 `혜진ㆍ예슬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 "전시 효과"라고 지적해 눈길을 끌고 있다.
3일 법원 내부통신망에 따르면 설 판사는 "수사 또는 형사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사회적 방향에 대해 지나가는 생각으로 쓴 개인적인 글"이라고 전제한 뒤 "성폭행범의 문제는 다른 사회적 병리현상과 비슷하며 이는 단칼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설 판사는 먼저 논의 중인 `혜진ㆍ예슬법'에 대해 "이미 (아동 성폭행 후 살해와 관련한) 대부분의 유사범죄는 사형이 가능하고 최소 무기형 정도를 선고하고 있다"며 "앞으로 (이 법률이) 약화될 가능성도 별로 없는 현실이고 보면 법정형을 올리는 것은 무언가 남겼다는 한건주의는 될 지언정 현실적 대책은 아니다"고 말했다.
또 "선고형을 올려 범죄를 억제하겠다는 생각은 `경제적으로 합리성을 가진 범죄자'라는 가설에 따른 것"이라며 "그러나 인간의 성을 매개로 한 행위는 기본적으로는 합리적 계산과는 거의 관계가 없고, 특히 범죄는 더욱 그러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설 판사는 성범죄 전반의 법정형을 대폭 올리는 것도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엉뚱한 결과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음을 경고했다.
설 판사는 "오랜 교제관계 중 일부 강제력을 쓴 경우나 구타나 폭행 후 성폭행도 법률상 동일한 선고형을 받게 되는 한국의 현실에서 모든 성폭행에 대해 결국 같은 양형을 대하게 될 것이고 결국 이를 판결하게 될 판사들은 사안에 따라 가능한 거의 모든 방법을 동원해 형을 낮추는 방식을 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설 판사는 또 "그래도 해결할 수 없는 사건들에서 상당수는 장기형을 선고받게 될 것이며 이는 사회적으로 통제 불가능한 범죄자만을 양산하게 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설 판사는 "이제는 시스템 자체 또는 환경적 변수를 변화시키기 위한 보다 장기적이고 근본적 해법들이 논의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설 판사는 지금 필요한 것은 성폭행 범죄에 대한 법정형의 조정, 전자팔찌제도, 명단공개와 같이 사후 관리시스템 없이는 실효성 없는 대책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성폭행 예방 및 범인 검거 관련한) 예산과 인력을 보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설 판사는 "강력반 형사는 날마다 벌어지는 강력범죄를 해결하기 바쁘고, 지구대 경관은 거리 순찰에 바쁜 현실에서 미성년자 대상 범죄에 대해 어떤 거창한 대책을 내놔도 1개월 후 정도가 지나가면 또다시 발생하는 다른 범죄들에 묻힐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설 판사는 이 밖에도 다시 사회에 복귀한 관련 범죄자들에 대한 사후 관리, 피해자를 돕기 위한 사회구호기관이나 행정기관들의 유기적 움직임 등도 함께 시급히 논의돼야 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설 판사는 "대책을 세울 때 제발 미국은 어떻게 한다는 식의 보도에 따른 대책은 안 나왔으면 한다"면서 "미국의 특정제도나 법은 미국이라는 특수한 조건 하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특정제도를 그대로 가져오는 것은 우스운 결과만 낳을 뿐"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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