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나이에도 세계관을 갖고 있고, 큰 꿈을 꾸었던 이상주의 자."
미국 민주당의 유력 대선후보인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의 어머니 스탠리 앤 던햄 소에토로에 대한 지인들의 평가다.
뉴욕타임스 인터넷판은 14일 앤의 친구와 동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1995년 암으로 작고한 오바마 모친의 알려지지 않은 삶을 재조명했다.
오바마 의원은 선거운동기간에 자신의 어머니를 '싱글 맘'이라고 불렀지만, 그를 키워낸 어머니의 범상치 않은 삶을 온전히 표현하기에는 미흡하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백인 어머니 앤은 2차 세계대전기간 군 기지에서 태어났고, 가구 세일즈를 하던 그녀의 아버지는 남자 아기를 원했기 때문에 '스탠리'라는 이름을 붙여줬다고 한다.
그녀의 가족은 1960년 하와이 호놀룰루에 정착하기 전까지 보다 나은 돈벌이를 위해 캘리포니아, 캔자스, 텍사스, 워싱턴을 전전했다.
이듬해 앤은 하와이 대학의 러시아어 수업중에 이 학교 최초의 흑인학생있었던 남편과 만났고, 당시 미국내에서 백인과 흑인간 결혼이 극히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1963년 이들은 파경을 맞았고, 앤은 롤로 소에토로라는 인도네시아 출신 학생과 재혼했다.
앤의 고교친구들은 앤이 백인 남학생과 데이트한 것을 본 적이 없다며 "그녀는 인종문제 기준으로 삼아 다름을 멀리하기 보다는 다름을 수용하는 쪽이었다"고 회고했다.
첫 결혼과 재혼문제에 대해서도 지인들은 "그녀는 얼마나 깊게 사랑하는 지가 문제지, 결혼이란 제도 자체가 특별히 중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앤은 1974년 호놀룰루로 돌아왔다가 3년 후 대학원 인류학 논문을 위한 현장탐사차 인도네시아로 다시 갔으나, 소년 오바마는 하와이에 남았다.
어머니와 아들이 떨어져 있던 이 기간은 서로에게 힘든 시간이었다.
오바마는 2살 이후 자신의 생부를 거의 본 적이 없고 어머니와도 떨어져 살아서 성장기의 오바마에게서 '부모의 흔적'을 찾아내기 힘들지만, 앤의 지인들은 지금의 오바마 의원에게 그녀가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그녀는 소년 오바마에게 정직함과 직설적인 언변, 독립적인 사고의 중요성을 가르쳤고, 그녀의 많은 지인들은 앤이 아들에게 남겨준 '유산'으로 자신감, 추진력, 경계 허물기 등을 꼽았다.
그러나 포드재단과 인도네시아의 은행에서 소액금융대출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등 왕성하게 일하던 앤은 95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오바마 의원은 가장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어머니의 유물이 무엇이냐는 AP통신의 질문에 "어머니의 유해가 뿌려진 하와이 오하우 남쪽 해변의 절벽이 담겨있는 사진"이라고 답한 바 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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