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관투자자 가운데 가장 큰 손인 국민연금 기금이 현대자동차와 두산인프라코어 주총에서 오너인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과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의 등기이사 선임 안건에 반대표를 던지기로 했습니다. 이들이 분식회계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하거나 공금을 횡령한 혐의로 형을 선고 받았던 만큼 도덕적으로 문제 있는 재벌 오너의 이사선임을 거부하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막상 주총에선, 국민연금의 반대의견은 큰 영향을 미칠 수는 될 수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기금이 현대자동차 지분 4.56%를, 두산인프라코어 지분 2.92%를 보유하고 있지만, 두 회사의 전체 지분구조상 오너 일가의 우호지분이 많기 때문입니다. 또 지금까지 국민연금이 반대해서 주총 안건이 통과되지 않은 경우는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국민연금의 상징성을 감안하면 파장은 적지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 대기업 CEO의 엄격한 도덕성이 요구되는 추세를 감안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얼마전에도 세계 기관투자자에게 주총 관련 의안 분석과 의결권 행사 권고안을 제공해 주는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 거버넌스 서비스도 이번 현대차 주총과 관련해서 같은 의견을 내놨었습니다. 내용을 자세히 보면요,
"정 회장의 (비자금 조성과 횡령 혐의에 관련한) 범죄행위가 매우 심각하다. 그의 도덕성 결여는 현대차에 타격을 줬다"
"현대차의 매출과 이익은 1999년 정 회장의 취임 후 급격히 늘었지만, 정회장의 행위를 묻어두기에는 이러한 성과가 우리에겐 충분치 않아 보인다"
투자자에게 기업의 이익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기업의 장기적인 가치와 경쟁력 제고를 위해 이제 오너와 CEO의 도덕성은 필수라는 얘깁니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외환위기 이후 많이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선진국에 비해서는, 또 외국인 투자자의 입장에서 보면 어떨까요? 아직도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 가운데 경영 투명도는 큰 비중을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오너 기업에서는 아직도 대주주나 핵심 경영진의 결정이 절대적인 상황이다보니 '거수기' 역할만 하는 사외이사도 아직 많이 남아있습니다.
따라서 기금의 이번 결정은 그 결정 자체로도, 또 다른 기업에 대한 경고로도 긍정적입니다. 세계적인 추세에도 부합하는 일입니다. 물론 일부에선 '회사에 이익이 많이 가져다 줄텐데 무슨 생각이냐', '사면 받은 사람에게 왜 이러냐' 이런 목소리도 있습니다. 또 연기금의 횡포를 걱정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논리로 기업의 경영 투명성과 도덕성에 대한 요구를 무시하는 것은 이젠 아닌 것 같습니다.
새정부는 친기업 정부라고 얘기합니다. 그렇다고 책임을 다하지 않아도, 경제 성장에 도움만 된다면 묵인해 주겠다는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이젠 기업 스스로가 달라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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