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환자방'은 지방에서 서울로 암 치료를 받기 위해 올라온 환자들이 잠시 머무는 공간입니다. 주로 암 수술을 한 뒤에 방사선 치료를 받는 환자들이 이용하지요. 대개는 한 달 남짓 머무르는데, 진단을 위해 하루나 이틀씩 짧게 들르는 분들도 있습니다. 물론 무료로 제공되는 곳은 아닙니다. 원룸이나 주택을 갖고 있는 집주인들이 이를 '환자방'이라고 이름 붙여 놓고 단기 임대 사업을 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방값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하루에 4만 원 안팎, 한 달 동안 머무르면 적게는 50만 원에서 많게는 100만 원을 내야 하는 곳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 곳을 찾는 환자들은 끊이질 않습니다. 저희가 찾은 고양 국립 암센터 앞에는 '환자방'이라고 내 건 간판만 10여 개에 달했습니다.
그럼 지방에 사는 암 환자들은 왜 이런 환자방을 이용하는 걸까요?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을 수는 없는 걸까요? 암 환자들이 많이 찾는 서울의 주요 대형 병원들엔 -이른바 BIG5 라고도 하더군요, 국립암센터, 서울대병원, 아산병원, 삼성병원, 세브란스병원을 지칭해서요.- 수술 대기 환자만 수천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자신이 '암'임을 확인해도 아주 긴급한 상황을 요하지 않으면 수술을 받기 위해 몇 달까지 기다려야 할 정도입니다. 환자들은 이렇게 어렵 게 수술을 받고 경과를 살펴보는데, 심각한 후유증이 발견되지 않으면 대개는 며칠 뒤 퇴원을 하게 됩니다. 수술 뒤에 받는 항암제 치료와 방사선 치료 등은 퇴원 상태에서 외래 통원치료를 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이런 치료들은 한 번에 길어야 1시간을 넘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병원들은, "수술 환자들로도 병실이 모자랄 지경인데, 통원이 가능한 1시간 짜리 방사선 환자들을 위해 병실을 비워놓을 순 없지 않는가"라고 이야기합니다. 일견 설득력이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방사선 치료는 환자마다 다르지만, 보통 20회에서 30회 정도를 한다고 합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하면, 4주에서 6주 내내 병원을 드나들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서울 수도권에 사는 환자들이라면, 서울 대형 병원을 오가며 통원 치료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방에 사는 환자들은 이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아예 병원 근처에 방을 구한다는 겁니다. 이런 분들이 한 사람, 두 사람 생기다보니, 자연스럽게 이런 수요를 이윤으로 연결시키려고 하는 '환자방'이라는 신종 임대업이 등장하게 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환자방 안을 들어가 보면, 생각보다 잘 돼 있는 곳도 있습니다. 음식도 해서 먹을 수 있고 화장실도 방에 딸려 있는 곳이지요. 대학가에 있는 원룸식 자취방이나 소형 펜션과 비슷합니다. 반면 2평짜리 고시원을 빌려 기거하고 있는 환자들도 있습니다. 볕도 안 들고 통풍도 잘 되지 않는 곳에서 한 달 넘게 '투병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이지요. 저희가 만난 '객지 생활' 환자들의 얼굴은 대부분 평안한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뭐랄까요, 짙은 외로움 같은 표정이 서려있었습니다. 환자들은 하루 1시간 치료를 위해 병원에 가는 것 말고는 따로 할 일이 없다고 합니다. TV나 책을 보며 소일하거나, 근처를 산책하거나 하는 게 일상의 전부이지요. 보호자들도 생업 때문에 한달 내내 계속 붙어 있을 수 없어서 며칠에 한 번씩 들른다고 합니다. 아니면 환자들이 금요일까지 치료를 마치고는 금요일 밤에 집에 내려갔다가 다음주 월요일 오전에 올라오는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의 관심과 보살핌이 병을 이기는데 큰 도움이 될텐데, 치료를 위해 객지 생활을 하고 있는 환자들에겐 '난 혼자'라는 외로움이 짙게 배어 있었습니다.
어제 이런 실태를 취재해 '환자방을 아십니까?'라는 보도를 냈습니다. 그랬더니, 여러 곳에서 "그래서, 대책이 뭐란 말이야?"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사실 기사를 쓰면서도 '대책, 대안, 해법..' 이런 단어들이 머리 속을 떠나질 않았습니다. 여러 전문가들에게 물어보고, 이것저것 찾아보고, 이런 저런 고민을 해봐도, 뚜렷하게 "이렇게 해야 합니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지 못한 게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취재 결과를 바탕으로, 기사에서 몇 가지 실마리들이라도 던져보고자 했습니다. 먼저 환자들, 환자 단체들의 목소리를 들어봤습니다. 환자들도 병원이 자신들을 다 받아줄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병자여서 이런 생활을 감수해야 한다"고까지 생각하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바뀌었으면 좋겠습니까?"라고 질문을 던지자, 대형 병원들이 조금 더 나서주면 좋겠다는 답변이 의외로 많았습니다. 곧 병원 안에 암 환자 쉼터를 만든다든지, 약간의 기금을 출연해 병원 근처에 환자방을 대신할 '공공 쉼터'를 마련해 줬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환자 단체는 이를, "병원이 '의료 서비스'를 단지 치료에만 의미를 두지 말고, 치료를 잘 받을 수 있는 환경 조성에도 관심을 둬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환자를, 접수할 때 돈 받고 서비스하고, 수술할 때 돈 받고 서비스하고, 치료할 때 돈 받고 서비스하는, 말하자면 '분절적 대상'으로 보지 말아 달라는 겁니다. 환자가 건강을 완전히 회복할 때까지의 전 과정을 하나의 흐름으로 보는 관점을 병원이 가져달라는 바람입니다. 그러면 환자 쉼터가 하나의 '시혜'나 필요 외 비용이 아니라, 치유 과정에서 필수적인 것으로 인식된다는 겁니다. 이는 또 대형 병원들이 환자들 덕분에 '이윤'을 취하는 만큼, 이에 합당한 사회적 책임을 해야 한다는 소리이기도 하고요.
이렇게라도 좀 더 '편의'가 갖춰지면 정말 좋겠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문제엔 훨씬 깊은 문제들이 함축돼 있습니다. 근본적인 해법을 따지고자 한다면, 결국 "왜 환자들이 서울로만 몰릴까?"라는 질문과 마주할 수 밖에 없습니다.
환자들은 서울과 지방의 의료 격차를 이야기합니다. 주장이 아니라 현실입니다. 당장 내 가족이 암으로 고통스럽다면, 지방 대학 병원보다는 아무래도 서울에 있는 가장 잘 한다는 병원을 찾는 게 대부분 한국 사람들의 마음일 겁니다. 이른바 BIG5 병원의 의료 공급은 제한돼 있고 이렇게 전국적인 수요가 많다보니 환자방 같은 곳에서 고생을 해야 하지만, 그래도 서울, 대형 병원을 찾게 된다는 겁니다. 의료 서비스의 서울 집중이 문제의 중심에 있습니다.
해법을 찾아 물었습니다. 환자들이 자신이 사는 지방에서도 서울만큼 첨단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면, 굳이 객지에서 가족과 떨어져 외롭고 힘겨운 투병 생활을 하지 않아도 될테니 말입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하시더군요. 서울과 지방의 의료 격차는 오히려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는 겁니다. 본래 서울과 지방에서 각자 출발하는 의료진의 '실력'이 비슷하다 해도, 서울 대형 병원들로만 사람들이 몰리다 보니, 서울 의사들은 환자를 더 많이 치료하게 되고 그만큼 임상 경험도 쌓이면서, 절로 '실력'이 는다는 겁니다. 또 수요가 몰린 만큼 첨단 장비도 자꾸 들어오게 되고요. 반면 지방의 종합병원들은 '어려운' 환자들은 모두 서울로 가버려서, 임상 경험을 축적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차단되면서 치료 수준이 매양 제자리 걸음을 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일종의 악순환인 것이지요.
그래서 '대안의 실마리'로 제기되는 게, 암 치료 프로토콜의 공유와 표준화입니다. 예를 들어 폐암 몇 기라고 하면, 어떤 기법으로 수술하고, 어떤 치료법을 쓰는지를 전국적으로 표준화하자는 겁니다. 또 이 과정에서 서울과 지방 병원들을 네트워크로 연결하자는 겁니다. 이러면 지방 병원에서도 서울 대형병원에서 치료받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이야기지요. 그 이전에라도 첨단 의료 기법과 노하우 등을 관련 학회 등을 통해 끊임없이 공유해 의료 격차 해소에 나서야 한다는 제안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가능하겠느냐가 문제이겠지요. 당장 서울의 대형 사립 병원들이 '영업 비밀'을 쉽게 내놓으려 하겠습니까? 아니 내놓으라고 하는 게 타당한 건지도 사회적인 논란거리가 될 겁니다. 암 치료 프로토콜의 표준화를 명분으로 개별 병원 기업의 '자유'를겁니다.
결국 여기엔, 경쟁의 논리와 공공성의 논리라는 대립적인 가치의 충돌 문제가 놓여 있습니다. 단지 의료 부문에만 국한되지 않는, 지금 우리 사회 대부분의 영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충돌'이기도 하지요. 매우 정치적이고 역사적이고 또 문화적인 문제일 수 밖에 없습니다.
'암 환자방'을 이야기하다, 가치 충돌까지 와버렸습다만, 해법 찾기는 더 복잡해 보이기만 합니다. 자,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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