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에 올라 부산 앞바다를 내려보며 잠수함을 찾는데 잘 눈에 띄지 않는다.
"앗! 저거다!"
날씨가 흐린 데다 바다색과 뒤섞여 한눈에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커다란 무언가를 찾았다.
미 해군 잠수함 '오하이오'함이었다.
우리 해군작전사령부 안쪽으로 들어가자 부두에 '거대한 돌고래' 한마리가 바짝 달라붙어 있었고, 'USS OHIO SSGN 726 ALWAYS FIRST'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취재진을 맞았다.
오하이오가 어떤 잠수함인지는 부산으로 향하는 3시간 여정 동안 열차 안에서 2, 3차 자료를 숙독하며 대략 파악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취재란 결국 현장에서 1차 정보를 파악하는 것.
그들의 입을 통해 알아보기로 했다.
오하이오(Ohio)의 함정명은 SSGN-726.
오하이오급 잠수함의 원조다.
18척이나 되는 잠수함에 '오하이오급'이란 수식어가 붙었으니 유명세는 혼자 독차지한 셈이다.
길이가 무려 170.69m로 축구장의 1.5배가 넘는다.
70~80m 정도 수면 위로 드러난 부분은 보이지 않는 물속 '빙산의 일부'인 셈이다.
미 해군 7함대 사령관이 마이크를 잡았다.
어깨에 별 셋을 단 더그 크라우더(Doug Crowder) 제독(중장)은 오하이오는 함정 개조를 통해 새로 태어났다고 소개했다.
"원래는 탄도 미사일을 싣고 다녔는데, 지금은 토마호크 재래식 미사일을 탑재"하고 있다고 했다.
핵무기가 없으니 안심하라는 메시지로 들렸다.
작년 가을 워싱턴 주의 모항을 떠나 1년간 서태평양과 인도양에 배치됐다고 한다.
그러면서, "중요하고 역동적인 지역에 첫 배치된 것은 안보와 안정에 대한 미국의 공약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것이 오하이오
"영광입니다."
한국에 온게 벌써 다섯번째라는 오하이오 함장 앤디 헤일 (Andy Hale) 대령은 우리말로 인사를 전하며 오하이오가 핵 잠수함에서 재래식 전력으로 재탄생하게 된 사연을 소개했다.
"USS Ohio was built in 1981 and was a lead ship and a class of ballistic missile submarines
that served as cold war strategic deterrent by carrying long range nuclear missiles...
...Ohio by replacing those ballistic missiles with conventional Tomahawk attack missiles.
Ohio also received special equipment that make it uniquely suited for the delivery and deployment of special operations forces.
We can perform all the traditional missions that any submarine can do with additional capability of very power strike punch Tomahawk cruise missile and unique capabilities of delivering SOF personnel."
개략적인 설명을 듣고는 잠수함 안으로 들어갔다.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는데 떨어졌다가는 중상감이다.
2개 층을 내려가니 잠수함의 '두뇌' 지휘통제실이다.
(만재)배수량 18,750 톤의 거구를 움직이는 제어가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널찍한 공간 3면에 전자 장비가 빼곡하다.
"소개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선임원사 역시 우리말로 인사를 건네고는 오하이오가 가장 선진화된 디지털 전투/통제 시스템으로 업그레이드됐다고 소개했다. 미 해군 잠수함중 최고란다.
잠수한 선체는 28년 지난 낡은 것이지만 첨단 소나 등 가장 현대화된 장비를 갖췄으니 '신-구'의 조합이 아니냐며 껄껄 웃었다.
"적의 가슴에 공포를 심어라!"
미 해군 잠수함 오하이오(Ohio, SSGN-726)는 오하이오급 핵 잠수함의 원조다.
18척이나 되는 잠수함에 '오하이오급'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으니 유명세는 혼자 독차지한 셈이다.
헤일 함장이 소개한 뼈대에 미 해군 자료 등 살을 붙여보면 이렇다.
오하이오 핵 잠수함은 냉전을 배경으로 탄생했다.
미·소간 핵 대결이 한창이던 1981년 11월 1일 취역했는데, 취역식에서 조시 부시(George H.W. Bush) 당시 미국 부통령은 "전략적 억지력(strategic deterrence)에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고 평가했다.
리코버(Rickover) 해군 제독은 "적의 가슴에 공포를 심을 것(Strike fear in the hearts of our enemies.)"을 주문했다고 한다.
맞수는 구 소련 잠수함 타이푼이었다.
오하이오는 취역 이듬해부터 그런 전략적 억지를 위한 초계 활동에 61차례나 투입됐다고 한다.
그 뒤를 이어 동급 잠수함 17척이 건조됐다.
통상 '핵 잠수함'이라는 표현은 두가지 의미로 쓰인다.
첫째는 핵무기를 보유한 잠수함이라는 뜻이고 둘째는 원자력 추진 잠수함이라는 뜻이다.
오하이오의 경우 과거에는 굳이 가려쓸 필요가 없었다.
가압식 원자로(PWR)로 에너지를 얻어 추진하는 것은 물론 트라이던트(Trident I, II)라는 전략 핵 탄도 미사일로 무장한 명실상부함 핵 잠수함이었다.
발사관(tube) 24개로 미사일을 쏠 수 있는 무시무시한 핵 전력, 한마디로 이동하는 핵 기지였다.
오하이오와 동급 18척이 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 SLBM 수백, 수천 기를 싣고 전세계 바닷속을 누비고 있었으니 실로 냉전이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가공할 전력이었다.
냉전의 시대가 정점을 지나면서 오하이오의 수명도 다하는 듯했다.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에 따라 미-소가 핵 전력 감축에 들어가면서 오하이오급 초기모델 4척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운명에 처한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1994년부터 2002년까지 핵태세검토(NPR; Nuclear Posture Review)를 통해
초기 잠수함 4척을 버리는 대신 재래식 전력으로 전환(conversion)해 살리기로 결정한다.
넓은 함내 공간과 빠른 속도, 그리고 좀처럼 탐지되지 않는 '스텔스' 능력이 버리기 아깝다는 인정을 받은 것이다.
그렇게 해서 2002년 오하이오를 필두로 플로리다, 미시간, 조지아호가 대대적인 '리모델링'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렇게 잊혀졌던 오하이오(SSBN-726)는 2006년 수리를 끝내고 2007년 10월 재래식 전력(SSGN-726)으로 재탄생했다.
탄토(ballistic)의 'B'가 유도(guided)의 'G'로 바뀌었다.
핵 추진 잠수함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핵무기가 모두 제거된 것이다.
이중적 의미의 '핵잠' 보다는 원자력 에너지를 이용한다는 의미에서 '핵 추진 잠수함'으로 부르는 게 정확한 이유다.
재래식 전력의 선봉
트라이던트 핵 미사일이 있던 24개 발154발이 들어있다.
취재진에 배포한 공식 소개서에 의하면, 미사일 154발을 6분 이내에 모두 발사할수 있다.
작은 체구의 재래식 미사일이지만 위력은 무시무시하다.
(지름 51.81cm, 길이 6.25 m, 무게 1,587.6kg)
사정거리가 1,609km에 이른다.
1991년 걸프전 '사막의 폭풍' 작전에 투입돼 대성공을 거뒀다.
나머지 1번, 2번 발사관은 특수작전부대 (SOF; Special Operation Forces)가 '새끼' 잠수정을 타고 작전에 투입되는 공간(ASDS; Advanced SEAL Delivery Systems)으로 개조됐다.
SOF 66명을 수용할 수 있다. 정규 승무원 160명과는 별도이다.
그 아래 원래 발사대는 그대로 남아 있어서 유사시 미사일을 쏠 수 있다.
또, 시속 40km 속도로 사정거리 50km까지 타격할 수 있는 마크-48 대잠 어뢰, 그리고 첨단 소나와 레이다, 위협경고체계도 갖추고 있다.
헤일 함장은 "전세계 어떠한 잠수함보다도 많은 재래식 무기를 탑재했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국에 온 이유는?
일문일답 시간이 되자 날카로운 질문들이 토마호크 미사일처럼 쏟아졌다.
"평양에서 뉴욕 필 하모닉이 역사적인 공연을 하는 날 오하이오를 공개하는 이유가 뭡니까?"
한방 맞은 듯 당황한 7함대 사령관이 에둘러 답변한다.
"뉴욕 필은 세계 최고 오케스트라중 하나입니다. 기회가 있으면 보고 싶은데... 다양한 나라들이 다양한 수준에서 서로 관여(engage)하는 것은 거의 언제나 긍정적이죠. 뉴스에서 보고는 훌륭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키 리졸브(Key Resolve) 연습에서는 특수작전부대(SOF)가 한국군의 특수부대와 함께
모종의 임무를 수행한다고 설명했다.
오하이오에서 분리되는 '새끼' 잠수정을 타고 상륙하는 훈련이다.
과거 한미간 연합 훈련을 한 적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는 "SSBN 이건 SSGN 이건 오하이오가 한반도에 온 것은 처음"이라고 잘라말했다.
기자도 난처한 질문을 하나 던졌다.
"오하이오는 재래식 전력인 SSGN으로 개선한 것인데, 만일 북핵 문제가 악화돼 한반도 비상상황이 발생할 경우 SSBN이 한반도에 투입될 수 있습니까?"
재래식으로 탈바꿈한 오하이오급 4척을 제외한 기존 14척은 여전히 트라이던트 핵 탄도 미사일을 장착한 핵 잠수함임을 염두에 둔 질문이었다.
사령관의 답이다.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전혀 보고 있지 않습니다. 아니라고만 답하겠습니다. 그럴 가능성은 사실상 없습니다.
(I don't see that is something that's probable at all. So I'll just say no. There is virtually no chance of that.)"
민감한 질문에 현명한 답변이었다.
만약 "Yes"라는 답변을 내 놓았다면 이날 오하이오는 '미, 한반도 유사시 핵 투입'이라는 제목으로 머릿기사를 장식했을지 모른다.
'미국의 전력이 이런 것이구나! 오하이오급 18척이 한반도 주변을 에워싼다면...'
취재를 마치고 나오는 데 오하이오 함의 호스트 격인 우리 해군의 1,800톤급 손원일 함이 눈길을 잡는다.
전력화 작업이 진행중이었다.
작년 6월 같은 214급 잠수함 2호인 '정지(鄭地)함' 진수식 때 가보고는 그 크기와 위용에 두 눈이 휘둥그래졌었는데, 오하이오와는 길이로는 3배, 배수량으로는 10배나 차이가 난다. 미군은 "작지만 강하다"고 평가했다.
한국을 찾은 '거대한 돌고래' 오하이오!
단단한 근육질을 언론에 공개한 것은 억지력(deterrence)의 표현인가? 아니면 존재감의 과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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