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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밀가루가 휘발유보다 더 오를까?

정명원

입력 : 2008.02.22 09:04|수정 : 2010.01.06 15:04


물가 상승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나타나는 '인플레이션' 이라는 단어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인플레이션이라는 말로도 부족해 엄청나게 급등하고 있다는 뜻으로 '하이퍼(Hyper)' 라는 단어까지 앞에 붙인 '하이퍼플레이션'에 이어

농산물 가격 급등을 뜻하는 '농업(Agriculture)+물가급등(Inflation)=Agflation'까지 언론을 통해 계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물가 급등을 이끌고 있는 쌍두마차는 '밀' 과 '원유' 입니다. 둘 다 사상 최고치 기록을 깨면서 상승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제유가는 비록 종가 기준으로 100달러를 돌파하기는 했지만 사실 올해들어 10달러 선에서 등락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상승 폭으로만 본다면 밀이 원유보다 훨씬 큰 폭으로 뛰고 있습니다.

밀 가격이 오르면 밀가루 가격도 오르고 밀가루를 재료로 하는 라면, 자장면을 비롯한 서민들이 즐겨찾는 음식 가격이 오르게 됩니다. 자장면 가격이 3년만에 500원 오르게 된 것도 이런 이유때문이죠.

그런데 왜 '땅에서 사는 황금' 이라는 원유보다 밀 가격이 폭등하고 있는 걸까요?

수요가 많아졌고 공급은 줄어든데다 투기적 요인까지 결합했기때문인데요. 하나하나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중국이나 인도 같은 신흥경제성장국들이 수출로 돈을 벌어 국민 생활 수준이 나아지면서 식생활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동안은 잡곡만 먹었는데 이제 쌀, 밀가루, 육류 같은 제품들을 많이 찾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가 7,80년대 보릿고개를 해결하고 쌀과 밀가루 음식들을 찾았던 상황과 비슷하지만 중국과 인도는 인구가 합쳐서 20억을 넘는다는 점이 다르죠. 엄청나게 수요가 늘고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공급은 줄었습니다. 기상이변으로 주요 밀 수출국 가운데 하나인 호주의 밀 작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부시 대통령의 대체에너지 에탄올 지원책으로 미국에서도 밀을 경작하던 농가들이 돈이 더 될 것으로 보이는 옥수수로 작물을 바꾸면서 밀 생산량이 줄어든 겁니다. 에탄올 수요 증가로 옥수수 가격이 먼저

뛰었기때문에 옥수수 가격 오름세가 시작된 탓입니다. 하지만 이제 밀 농가가 옥수수 농가로 바뀐데다 수요는 늘고 공급까지 줄었으니 밀 가격 급등세가 옥수수 가격 상승세를 앞지르게 됐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1월부터 올 1월까지 1년 동안 밀 가격은 80%, 옥수수 가격은 25%나 올랐습니다. 이런 오름세는 계속되고 있기때문에 짧게는 4달 길게는 7달이 지나면 생필품 가격에 그대로 반영이 됩니다.

여기에 투기적 요인도 급등세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서브프라임 사태로 경기침체 위기에 몰린 미국이 금리를 계속 낮추면서 연 3%대의 저금리 기조를 택해 달러가치가 떨어졌습니다. 그러자 글로벌 투자자들이 미국채권 같은 달러자산을 사지 않고 원유와 곡물, 원자재 시장으로 몰리고 있습니다. 특히 올 들어서는 금과 밀, 옥수수에 자금이 집중되는 모습을 보이면서 가격 급등 속도가 빨라지고 있습니다.

이 자금들은 지난 2004년부터 글로벌 저금리를 바탕으로 싼 이자로 돈을 빌린 뒤 지난해까지 세계 증시 상승세를 이끌어 온 바로 그 돈들입니다. 이 자금들이 이제 증시와 채권, 부동산 시장을 떠나 금과 밀, 옥수수에 쏠리며 가격 거품을 만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국제유가도 100달러를 넘기긴 했지만 일시적인 재고문제와 석유수출국 기구의 감산 결정을 우려한 반응일 뿐 미국의 경기침체로 인한 세계 경제 둔화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에서는 오히려 국제유가 급등세는 앞으로는 

주춤할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합니다. 세계 경기가 둔화된다는 것은 그만큼 공장을 덜 돌리고 석유가 덜 필요하다는 말이고 소비자들은 자동차를 덜 타게 된다는 뜻이기때문이죠. 지난해와 달리 투기자금이 원유시장에는 별로 몰리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곡물 시장의 특징은 수요와 공급이 단기간에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원유는 오펙이 증산결정을 하면 되지만 곡물은 하루아침에 생산량을 늘릴 수 없습니다. 또, 미국이 계속 금리를 낮추면서 달러가치 하락은 더 가속화 될 것이기때문에 투기자금에 의한 가격 급등도 더욱 기승을 부릴 것입니다. 그렇기때문에 당분간은 라면과 자장면 가격이 오른다는 소식을 계속 듣게 될 것입니다.

결국 현명한 소비자라면 지금부터 라면이나 자장면 대신 쌀국수를 먹고 식단에서 밀가루를 줄이는 방법을 택할 수 밖에 없게 된 것 같습니다. 국제투기세력이 다른 투자대상으로 일시에 옮겨지 않는 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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