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이번 달(2월)에도 역시 금리를 연 5.0%로 동결하며 6개월째 금리를 그대로 두는 선택을 했습니다.
이번 달 금리결정에는 국내외 경제전문가들이 상당히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분위기였습니다. 부동산 가격 급락과 대출이자 연체율 급증이라는 서브프라임 사태가 금융위기를 넘어 미국의 실물경제까지 흔들리게 하면서 미국이 다시 공격적인 금리인하 기조를 택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이 가장 큰 이유죠.
일부에서는 미국의 경기침체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미리 우리도 금리를 낮춰 경기둔화를 막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인수위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주장을 펴는 쪽에서는 이번 한국은행의 결정이 마땅치 않아 보일 것입니다.
해외 투기자금으로 인한 우리 금융시장의 불안을 걱정하는 논리도 있습니다. 이제 미국와 우리나라 금리 차이가 2%p나 되니까 미국에서 돈을 빌려 우리 채권을 사면 3년만기 국공채 금리 5%대 이자+2%P, 즉 아무런 위험부담이 없는 7% 수익을 얻을 수 있게 돼 투기자금이 많이 들어올 것이라는 거죠. 투기자금이 들어오는 것 자체는 나쁘다고 할 수 없지만 혹시 이렇게 대량으로 우리 채권을 산 뒤 지난해 말 처럼 우리 채권 가격이 크게 출렁이는 상황이 와 한꺼번에 팔면 채권시장 불안이 커진다는 겁니다.
사실 지난 연말과 올 초까지만 해도 은행들이 자금난을 겪으면서 CD를 무더기로 발행해 한국은행이 금리를 낮춰야 할 만큼 주택담보대출 금리의 기준이 되는 CD 금리가 급등했습니다. 이때문에 주택담보대출 이자가 8% 중반대까지 치솟아 그렇지 않아도 원재재와 유가 급등에 따른 물가상승으로 쓸 돈이 준 가계에 더욱 부담을 주는 상황이었습니다. 내수에 타격을 줄 것이란 걱정까지 나왔습니다.
그런데 미국이 공격적으로 금리를 낮추면서 앞서 설명한대로 해외 자금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은행들이 돈을 구하기 쉬워졌습니다. 여기에 증시까지 올들어 약세를 보이면서 은행권 특판예금에 돈이 몰린 점도 작용해 CD금리가 안정세를 찾았습니다.
지난해 한국은행이 서브프라임 위기가 현실화되는 상황을 예측하지 못한 채 금리를 전격적으로 올려 공격을 받기는 했지만 이번 결정은 신중하고 옳은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금리인하를 주장하는 쪽에서 내세우는 주장은 막연한 '가능성'인데 비해 물가상승에 따른 소비둔화 우려는 '눈에 보이는 현실' 이기때문입니다.
미국이 공격적으로 금리를 낮추는 이유는 문제의 본질인 부동산 시장때문입니다. 저금리 시대에 능력도 안 되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대출받아 집을 샀다가 금리가 오르자 살인적인 이자부담에 집을 차압당하고 부동산 시장이 침체된 것이 현 상황이 근본 원인이기때문에 금리를 낮춰 일단 살인적인 이자부담을 줄이려는 겁니다. 미국 정부가 나서서 연체이자를 동결하려하고 집을 차압당하기 전에 30일 정도 유예기간을 두는 방안(Lifeline)까지 내놓은 이유도 역시 부동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부동산 시장만 놓고 보면 정반대의 상황입니다. 이제 겨우 부동산 급등세를 막아 1년 정도 냉각기를 갖고 있는 중인데 새 정부 출범이후 부동산 시장이 들썩이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이때 금리를 낮춘다는 것은 불에 기름을 끼얹는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외국투자자금이 들어오는 것도 채권시장에는 자금이 유입되고 있지만 주식시장에서는 올해들어 거의 10조 가까이 돈이 빠져나가고 있기때문에 서로 상쇄하는 효과가 있고 채권에 투자한 자금은 극히 불안한 상황이 아니라면 한 꺼번에 일시에 빠져나가는 성격의 돈이 아니라는 점도 고려해야합니다.
반면 물가 상승 속도는 이미 한국은행의 목표치를 뛰어넘었고 원자재와 유가 상승 추세는 계속 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중국 폭설 영향으로 중국산 수입품의 가격이 오르는 등 중국이 물가상승을 수출하게 될 국면에 놓여있습니다. 지금보다 물가가 더 오를 수 있는 조건이 마련돼 있는 셈입니다.
일본의 10년 장기불황과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의 배경에는 '공격적인 금리인하' 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경기를 인위적으로 살려보려고 금리를 공격적으로 낮춰 부동산 거품을 키웠고 이 거품이 터지면서 고통이 시작됐습니다.
똑같은 실패를 우리도 반복하지 않으려면 금리결정에 좀더 신중해야합니다. 이런 점에서 이번에 금리를 동결하며 미국 경기 상황과 세계 경제 움직임을 보겠다는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의 결정은 옳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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