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 정권 힘겨루기 성격 강해
노무현 대통령이 11일 한달 가까이 보류해왔던 김만복 국정원장의 사표를 수리키로 한 것은 방북 대화록 유출사건의 '부적절한 업무처리'에 대해 참여정부 임기내에 책임을 묻고 매듭을 지어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사표 수리 여부에 대해 가타부타 입장표명을 유보해오던 청와대 입장에 비춰 "김 원장의 책임을 묻지 않으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오기도 했지만, 노 대통령은 결국 김 원장의 사의를 유야무야함으로써 야기되는 정치적 부담보다는, 정보기관장으로서의 책임을 묻는 쪽을 선택했다.
하지만 김 원장의 사표 처리 여부를 신속하게 결정짓지 못하고, '사표 계류' 상태로 한동안을 끌었던 청와대 일처리 방식의 적절성 여부에 대한 논란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지난달 15일 김 원장이 김양건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간의 대화록 유출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을 때, 청와대의 첫 반응은 "부적절한 업무처리에서 빚어진 일"이라는 것이었다.
여론은 '기밀 문건'을 언론에 직접 유출시킨 정보기관장으로서의 행태에 대한 비판이 무성했고, 이 때만 하더라도 노 대통령은 김 원장의 사표를 곧바로 수리할 것으로 관측됐다.
그러나 이튿날부터 청와대는 "국정원장의 사표 수리 여부를 결정하는데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며 신중한 기류로 돌아섰고, 김 원장이 언론에 공개한 대화록에 대해 "국가기밀이라고 단정하기 힘들다"는 법률적인 입장까지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나아가 "방법은 부적절했지만 김 원장의 방북과 관련해 대선 북풍공작, 정상회담 대가 제공설 등 여러 가지 근거없는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이를 해명할 필요성이 있었던 점도 있었다"(청와대 대변인)며 김 원장을 '옹호'하는 듯한 설명도 곁들였다.
'부당한 정치공세를 해명하려 특정 언론사에 자료를 제공한 것인데다, 그 자료마저도 국가기밀이 아니다'는 판단이 강했기 때문에 국정원장을 퇴진시킬 필요까지는 없지 않느냐는 견해까지 제기됐다.
특히 당시 대통령직 인수위와 한나라당이 사건의 성격을 '국기문란', '북풍공작'으로 규정하는 상황에서 청와대는 이번 사안이 국정원장 퇴진으로 일단락되지 않고, 남북정상회담 자체를 포함한 대북정책 전반에 대한 공세로 연결될 것을 우려한 점이 '사표 수리 유예'의 결정적 이유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로서는 설사 김 원장을 퇴진시키더라도 '냉각기'를 가질 필요가 있다는 정치적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천호선 대변인이 이날 브리핑에서 "당시 '북풍공작설' 등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성급한 사표수리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을 했다"고 밝힌데서도 이 같은 정황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청와대로서는 김 원장의 자료유출을 '부적절한 업무처리'라고 규정지은 상황에서 이 문제를 마냥 방치할 수만은 없었다.
끝까지 김 원장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을 경우 '김만복 감싸기' 의혹이 불거질 수도 있고, 그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로스쿨 선정 논란으로 김신일 교육부총리의 사표를 즉각 수리한 것과 대비돼 '이중잣대'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시기적으로도 내주 정도면 차기 정부의 국정원장 내정자도 발표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이번주중에는 매듭을 지어야 한다는 견해가 부상했다고 한다.
특히 김 원장의 사의 표명 당시 정치적 쟁점으로 부상했던 '북풍공작설', '정상회담 뒷거래설' 등의 주장들도 정치권에서 사그라졌고, 다소 변화한 정치적 환경에서 김 원장의 사표를 수리하더라도 이 문제가 정치적 논란으로 확산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사표 수리의 결정적 이유로 분석된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김 원장의 사표를 수리하는 쪽으로 1월말께 방향이 잡혔고, 다만 시기만이 문제였다"면서 "터무니없는 정치적 공세도 줄었고, 국가정보기관장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여러 점을 고려해 오늘 사표를 수리키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김 원장의 사표가 수리되는데 한달 가까이 걸린 데는 법률적 판단의 문제라기보다는 정권 교체기 신·구 정권의 힘겨루기, '정치게임'의 논리가 그 이면에서 움직였다고 볼 수 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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