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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미국은 진통제를 택했다

정명원

입력 : 2008.01.31 18:44|수정 : 2010.01.06 15:06


서브프라임 사태의 후폭풍으로 피해를 본 사람들이 여러 명 있지만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도 대표적인 피해자라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학자시절부터 경기부양보다는 미 중앙은행(FRB)의 핵심 책무인 물가 안정을 중시하는 '매파' 성향을 가졌던 '박사' 버냉키 의장은 결국 불과 일주일 만에 월가의 예상대로 0.5%P 연방기금 금리를 낮췄습니다.

미국의 실물경제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철저하게 금융시장을 달래기 위한 것입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진통제라는 표현까지 쓰는데요. 이유는 이렇습니다.

보통 금리를 낮추면 6개월 정도는 지나야 실물경제에 효과를 주게 됩니다. 다시말해 이달에 낮춘 무려 1.25%p(0.75%p+0.5%p) 이자율은 올 하반기는 돼야 효과를 발휘한다는 거죠. 지난해 세 차례 낮췄던 금리 정책의 효과가 나타나려고 해도 올 2분기는 돼야 합니다.

더욱이 변동금리주택담보대출이 전체 주택담보대출의 94%를 차지하고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은 현재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이 10% 정도에 불과합니다. 금리를 낮춰도 서민들이 고통받고 있는 모기지 이자에 미치는 영향력이 그만큼 낮다는 거죠.

다만 Home Equity 부문에는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Home Equity라는 것은 자신의 집에서 대출받은 액수를 빼고 남은 액수를 바탕으로 다시 대출을 해 주는 제도인데요. 미국에서는 집 값이 한창 올랐을 당시 사람들이 이 Home Equity를 이용해 또 대출을 받아 그 돈으로 소비를 했습니다. 이런 대출을 집 값이 올랐을 당시에는 마치 공돈처럼 쓸 수 있어 좋았겠지만 집 값이 급락한 지금에는 이자도 높아져서 거의 받을 수 없는 대출이 됐는데요.

이번 조치로 Home Equity 대출이자나 카드 대출 이자가 내린다면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이 대출을 받아 상대적으로 높은 모기지 이자를 갚거나 생활비로 쓸 수 있겠죠.

하지만 앞서 설명드린대로 이번 금리인하는 '충격'에 빠진 월가에 이런 '진통제'라도 주지 않으면 심리적 불안이 가중돼 금융시장 혼란이 더욱 커지고 이로인해 실물경제까지 영향을 받지 않을까 하는 걱정때문입니다.

그런데 '진통제'의 부작용도 만만치 않을 것 같습니다. 이번 조치로 이제 미국의 연방금리는 3%가 됐습니다. 물가상승률보다 낮아진 겁니다. 지난해 미국의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4.1%였으니까 실질적으로 마이너스 이자인 셈이죠. 다시 저금리 시대라는 말입니다.

문제는 미국의 4분기 GDP가 예상보다 훨씬 낮은 0.6%에 그친 것처럼 미국은 성장은 멈춰가고 있고 물가는 오르고 있는 상황이라는 거죠. 이럴 때 저금리 기조를 고수하면 물가상승만 부추기게 돼 저성장, 고물가라는 '스태그플래이션' (Stagflation)에 한 발짝 더 다가서게 될 수 있습니다.

'진통제'의 부작용은 미국 경제 뿐 아니라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경제까지 전염시킬테니 참 걱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