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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러시아 최전선이다! - 러시아 출장기 ①

최호원

입력 : 2008.01.29 15:32|수정 : 2008.02.03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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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러시아 특사단(단장 이재오 한나라당 의원)을 따라 2008년 1월 20일부터 25일까지 모스크바와 블라디보스톡을 다녀왔습니다. 첫 러시아 출장이었죠.

이번 러시아 특사단의 최대 목표는 푸틴 대통령과의 면담이었는데, 아쉽게도 성사되지 못 했습니다. 특사단은 대신 러시아의 장차관급 13명을 만나는 등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을 못 만난 것은 러시아에 있어 한국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1월 하순 모스크바의 평균 기온은 영하 8-10도 라고 하는데 이번엔 영하 4도 안팎에 그쳤습니다. 그래도 건조한 도시 기후 때문에 상당히 날씨는 매섭게 느껴졌습니다.

출장 기간 동안 여러 분들을 만나면서 재미난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습니다. 3편에 나눠 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러시아 시장을 잡아라!>

첫 순서는 러시아에서 활동 중인 한국 기업들의 뒷 이야기입니다. 모스크바 시내에 들어서면 삼성 LG 등 한국 5대 기업들의 광고판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러시아인들은 한국 기업, 한국 제품들을 잘 알고, 또 좋아합니다. 세계 초일류 기업들이 경쟁하는 러시아 시장에서 품질 이상으로(?) 한국 기업들이 선전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한국 기업 마케팅 담당자들의 노력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 가장 대표적인 한국 기업 광고는 바로 LG전자가 확보한 'LG다리'입니다. 원래 이름은 볼쇼이 카메니 다리지만, 러시아 사람들도 이제는 LG 다리로 부릅니다. 다리 도로를 따라 설치된 가로등마다 LG광고판이 붙어있죠. 야간 조명기능까지 있어서 밤에도 광고 효과는 만점입니다. LG가 1995년에 설치했다고 하니 정말 LG 마케팅 담당자분들 존경스럽습니다.
 
- 삼성의 대표적인 광고설치물은 크레믈린 궁 맞은편 건물에 설치한 삼성 옥상간판입니다. 광고 단가가 모스크바 시내에서 최고 수준이라고 합니다. 간판 주변 도로에 교통정체가 심해서 광고효과도 최고입니다. 하지만 삼성이 처음 이 간판을 세울 때는 크렘린(Kremlin) 궁과 적지 않은 마찰이 있었다고 합니다. 간판이 세워진 옥상에서 푸틴 대통령의 집무실이 내부까지 보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대통령 저격 장소로 가장 우려되는 곳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삼성이 어떤 기업입니까? 간판 크기를 조정하는 등 온갖 방법을 써서 결국 광고판 설치에 성공했죠. 지금은 밤에 간판 불이라도 꺼지면 대통령실에서 '무슨 일이냐'고 전화가 온다고 합니다.

- 지금 모스크바 부자들에게 최고로 인기있는 휴대전화기는 바로 삼성 DUOS D880입니다.
한 휴대폰에 SIM카드를 두 개 꽂을 수 있어 한 휴대전화기로 두 개의 전화번호를 쓸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별로 벨소리도 다르게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비밀스런 사생활이 많은 모스크바 상류층 인사들, 마피아, 심지어 공무원들에게도 없어선 안 되는 휴대전화기라고 합니다. 예전엔 두 개의 번호를 쓰려면 통신회사의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했지만 DUOS는 단말기만 간단히 조작하면 됩니다.

- 현대기아차의 분전도 눈에 띕니다. 러시아 자동차 시장은 210만 대 규모로 향후 5년 내 400만대 규모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이 되는 큰 시장입니다. 현재 러시아 자동차 시장의 최강자는 포드입니다. 포드는 소형차 포커스를 앞세워 러시아 자동차 시장의 13% 정도를 차지하고 있고, GM계열의 시보레가 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습니다. 현대차는 그 뒤에서 도요다와 함께 3위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기아차는 최근 정면 돌파를 선택했습니다. 올해 하반기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연간 생산량 10만대 규모의 완성차 공장을 짓기로 한 겁니다. 완공은 2010년 입니다. 포드와 시보레가 모두 현지 공장을 갖고 있는 만큼 현대기아차도 승부수를 띄울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주목할 부분은 현대기아차가 공장입지로 푸틴 대통령의 고향인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선택했다는 겁니다. 현재 러시아의 정관계와 경제계를 모두 상트 페테르부르크 출신인 점을 고려했다는 분석입니다.

현대기아차 측과 투자의향서에 서명한 발렌티나 미트비예코(Valentina Matviyenko) 상트 페테르부르크 주지자는 러시아의 유일한 여성 주지사로 푸틴의 상당한 신임을 받고 있는 전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현대기아차는 지난 2002년 중국 베이징기차(자동차회사)와 합착사를 건립해 중국에 진출하면서 당시 자칭린 베이징 당서기의 도움을 많이 받았거든요. 지금 자칭린은 중국 권력 서열 4위로 공산당 전국 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을 맡고 있죠.

- 러시아 자동차 시장과 관련된 여담 하나 더...

모스크바 시민들은 거의 세차를 안 합니다. 눈이 수시로 내리기 때문이죠. 모스크바 차량의 90%가 더러운 눈 찌꺼기를 뒤집어 쓴 채 다닙니다. 국내에서 1억 1000만원 정도하는 포르쉐의 SUV 카이엔도 까만 눈먼지에 덮여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그만큼 모스크바에 부자도 많다는 이야기죠). 또 모스크바 시내를 돌아다니다보면 카센터를 거의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차량 정비공장이 대부분 시외곽에 있어 소비자들에게 정비 서비스를 제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만큼 잘 고장나지 않는 차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죠.

이런 러시아 운전자들의 성향은 자동차 회사들에겐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동차의 내구성을 더욱 높여야 하거든요. 특히 한국차 내구성의 3대 약점-철판, 고무부품, 도장도금-을 얼마나 빨리 극복하느냐가 관건입니다. 현대기아차, 그리고 GM대우의 선전을 기대합니다.

- 롯데 이야기도 해보죠.

롯데는 지난해 9월 모스크바 시내에 '롯데 프라자'라는 한국식 백화점을 열었습니다. 모스크바 백화점들이 대부분 3층 높이의 일자형 대형 몰(mall)형식인데 비해 롯데 플라자는 전체 7층으로 각 층별 상품이 특화되어 있는 한국식입니다. 주차도 무료입니다. 고객들을 DB화해서 최고급 구매층에게는 MVG(Most Valuable Guest) 카드를 나눠주고 각종 혜택도 부여합니다.

롯데 프라자의 최대 경쟁자는 모스크바 시내 최고의 백화점인 굼(Gum) 백화점입니다. 러시아 부자들은 대부분 붉은 광장 앞에 있는 굼에서 명품 쇼핑을 합니다. 굼의 명품 가격들을 살펴보니 한국보다 오히려 10-20% 정도 더 비쌉니다.(모스크바 물가가 장난이 아닙니다.)

문제는 명품 브랜드입니다. 무엇보다 백화점의 꽃은 명품인데 명품 브랜드들이 롯데 프라자 입점을 꺼리고 있는 겁니다. 이 과정에 러시아 마피아들이 개입했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이들이 러시아 명품 유통시장을 장악해 롯데 프라자 입점을 가로 막고 있다는 것이죠. 입점 계약을 한 일부 명품 브랜드들도 계속 매장을 비워놓고 있는 상황입니다.

롯데로서는 고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 어려움, 어디 한두 번이었습니까? 모스크바 롯데 직원분들, 모두 힘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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