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충여지…수정 안될 경우 '거부' 압박
노무현 대통령이 차기 정부의 정부조직개편안이 국회를 통과해 이송돼 오더라도 관련 법안을 서명, 공포하지 않고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짙어지고 있다.
노 대통령은 28일 정부조직개편안 관련 기자회견을 통해 인수위안은 참여정부의 철학과 가치를 허무는 개편안이라고 규정하고, "새 정부의 가치를 실현하는 법은 새 대통령이 서명공포하는 것이 사리에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참여정부의 철학과 가치를 훼손하는 방향으로 부처를 통폐합하는 조직개편안에 서명하는 것은 "참여정부가 한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를 바꾸는 일에 동참하는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 서명·공포할 수 없다는 논리다.
물론 이날 기자회견에서 명시적으로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못박은 것은 아니다.
노 대통령은 국회 논의를 지켜보겠다는 입장도 개진했다.
"국회 심의를 돌려보내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 합의해서 수용된 모습이 좋지 않겠느냐"며 "그 여지는 열려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발언은 국회 심의 과정에서 입장을 반영해달라는 '호소'라고도 강조했다.
요컨대 거부권 행사 여부는 국회를 통과한 법안이 자신의 입장이 어느 정도 반영됐는지를 보고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참여정부의 철학과 전략을 일정하게 반영하는 선에서 인수위안의 수정이 이뤄질 경우라면 법안 수용도 검토해 볼 수 있지만, 인수위 원안의 기조가 큰 틀에서 유지될 경우라면 거부하겠다는 뜻이다.
국회 법률안 심의전에 거부권을 언급한 이유로 "국회 심의에 영향을 미치고, 가급적이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합법적이고 합리적인 정치과정"이라고 말한데서 '출구'를 완전히 차단하지 않겠다는 의중도 엿보인다.
다만 노 대통령이 이날 기자회견 형식을 통해 인수위와 정면충돌하는 태도로 나왔고, 인수위도 즉각 반박하면서 인수위안의 개편안 기조를 관철시키겠다는 입장이어서 국회 심의과정에서 노 대통령의 뜻이 제대로 반영될 것인지는 불투명하다.
노 대통령이 사실상 거부권 행사를 위한 명분쌓기 수순에 돌입한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5년은 길다. 다음 정부 개혁은 다음 정부에서 해도 된다"며 차기 정부의 정부조직개편에 호락호락 협조하지 않을 뜻임을 분명히 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공개 회견을 통해 차기 대통령 당선인측과 뚜렷한 대립각을 세우면서 임기 한달을 채 남겨놓지 않은 `떠나는 대통령'으로서 유례없는 스타일을 선보이고 있다.
퇴임 이후 참여정부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정치세력의 구심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다음은 회견 문답 요지.
--정부조직개편안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나.
▲여러 사회적 가치와 의견이 어느 정도 균형을 갖추면 저도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협상하는 마음으로 타협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매우 중요한 가치들이 훼손되어 있을 때는 제 스스로의 양심이라도 지켜야 되는 것 아니겠나.
--대통령 회견이 차기 정부 발목잡기라는 식으로 혼란을 줄 수 있고, 또 대선을 통해 당선인측이 차기 정부 운영권에 대해 포괄적 위임을 받았다고 볼 수 있지 않은가.
▲국민들이 선거로 대통령을 뽑아주었으니, 물어볼 것 없이 백지로 밀어주어야 하는 것이냐. 5년동안 한나라당은 그렇게 했느냐. 대통령 뽑아놓고 또 국회의원을 뽑아 국회를 구성하도록 만들어 놓은 것을 보면 민주주의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발목잡기 하는 것 아니다. 저도 제 임기가 있다. 또 정치철학과 소신이 있다. 첫째 요구는 신중하게 생각하고 깊이 토론해달라는 것이다. 둘째 주문은 제 임기동안 제가 양심에 반하는 법안에 서명하지 않을 권리는 존중해달라는 것이다.
--청와대가 수용할 정부조직개편안 수정의 수준이 있느냐. 어느 정도 수준이면 거부않겠나.
▲어떤 것이 데드라인이냐. 어느 정도이면 수용하고 어느 정도이면 거부할 것이냐 지금 딱 잘라 말할 수 없다. 국회에서 법안이 오면 여러 가지를 보고 최종적으로 결정하겠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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