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수 기자의 좌충우돌 일본정착기] 코미디언 출신 현 미야자키현 지사
'부패와 비효율' 개혁…지역격차 문제 답보·보수 우익적 성향 있어
일본 TV를 시청하다 보면 게스트나 패널로 자주 나오는 인물인데 누군지 몰라 답답한 경우가 종종 있다. 나름대로 다양한 개성과 사연이 있어서 출연하는 것 같은데,일본 생활 경력이 짧다 보니 그게 뭔지 몰라 답답한 것이다.특히 그 사람이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다들 웃음이 터지면, 어째 나만 바보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중에 일본 친구에게 물어봐야지'하고 생각하지만, 결국 물어 보는 것 조차도 잊어 먹고 몇달을 보내게 된다.
그런 대표적인 인물이 오늘 이야기하려는 히가시고쿠바루 히데오(東國原英夫) 현 미야자키현 지사다. '도대체 저 아저씨는 누굴까'하고 여러번 생각했던 의문 투성이의 인물이었다. 가장 큰 궁금증은 TV 프로그램 출연 빈도. 웬만한 연예인보다 자주 얼굴을 들이미는데다,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시사 정보 교양 프로그램까지 잡식성(?)이다. 특히 이번 연말 연시에는 정말 질리도록 봤다. 그래서 혹시 '지사'가 프로그램 구성상 일종의 웃음을 만드는 '설정'이 아닐까 라고까지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 사람은 분명히 본업이 지사인 현역 정치인이다. 그것도 지금 일본 사회에서 '가장 잘 나가는'정치인이다. 그가 지난해 일본 정치계에서 일으킨 돌풍은 요미우리 신문 선정 10대 뉴스 중 8위에 오를 정도로 화제가 됐고,각종 10대 트렌드와 10대 히트 상품에도 빠지지 않고 선정됐다. 지사로 취임한 지 올 1월로 1년이 됐는데도 지금도 주민의 지지율이 무려 94%나 되고, 일개 현의 지사지만 총리보다 전국적인 지명도 면에서 훨씬 앞선다고 한다. 이 사람이 입원한 것 조차 뉴스거리가 될 정도의 말 그대로 '뉴스 메이커'다. 심지어 정치에 관심 없기로 유명한 일본 젊은이들에게도 그의 인기는 상종가다. 일본의 유명한 아이돌 그룹인 '아라시' 멤버 5명이 만드는 'GRA(골든 러시 아라시)'라는 후지 TV의 인기 프로그램이 있는데, 현역 정치인 중에 유일하게 메인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다.
히가시고쿠바루 지사 '인기', 유명 코미디언 출신·잦은 방송 출연 때문
그가 인기가 많은 이유는 무엇보다 그가 유명 코미디언 출신이기 때문이다.그는 '소노만마 히로시'('그대로 동쪽'이라는 뜻)라는 예명으로 불과 몇 년 전까지 각종 쇼 오락 프로그램에서 왕성한 활동을 했다. 우리에게 영화 '하나비'로 친숙한 코미디언 겸 영화감독인 기타노 다케시의 첫번째 제자가 된 뒤, 이른바 '다케시 군단'의 일원으로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 연예인 활동 기간이 무려 27년이라고 한다.
더욱이 지사가 된 '미야자키 현 PR'의 명목으로 방송 출연을 엄청 했다. 미야자키현 공식 집계로도 공무(公務)로 1년간 출연한 횟수가 무려 311번이라고 한다. 사적(私的)인 취재와 출연도 2백번이 된다고 한다. 유명한 연예인 출신인데다, 당선 이후에도 하루가 멀다 하고 매일 TV에 나오니 대중적 친밀도와 지명도가 높을 수 밖에 없다고 하겠다.
그러나 그의 높은 인기를 단순히 "전직 연예인의 지명도 덕분"이라고만 폄하하기는 어렵다. 초기라면 몰라도 유명도 하나로 1년이라는 비교적 긴 기간 경이적인 지지율을 이끌어 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꾸 실정(失政)을 거듭 한다면, '연예인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해 인기가 심하게 곤두박질 치게 마련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그가 누리고 있는 높은 인기에는 일본 정치, 특히 그동안 쌓인 이른바 '지역 격차'문제에 대한 일본인들의 실망과 바람이 투영됐다는 분석이 많다.

히가시고쿠바루 지사 인기비결…'변화와 혁신' 선거 전략, 서민 이미지·'발로 뛰는'세일즈맨 이미지 등
우선 그의 당선이 그렇다. 지난해 1월 당시 그의 당선을 언론이 '히가시 쇼크'라고 부를 정도로 그의 당선 자체가 파란이었다. 출마를 앞두고 대학에서 지방정부 관련 공부만 조금 했을 뿐, 선거와 행정 경험이전무한 무소속의 전직 코미디언이 압도적인 표차로 고위관료 출신의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 못했던 것이다. 더욱이 미야자키현은 전통적인 자민당의 강세지역으로 '보수 왕국'으로까지 불리던 곳이다. 또 출마전에 그는 가정문제와 후배 폭력 등 갖가지 구설수에 올라 '한물 간 사고뭉치'연예인으로 취급 받았다.
그래서 언론은 그의 당선 이유로 '변화와 혁신'을 강조한 선거 전략이 먹혔다고 분석한다. 정당의 추천과 동료 연예인의 지원도 사절한 채,철저히 공약 중심의 선거전을 펼친 점이 유권자의 마음을 흔들었다는 것이다. 그의 모토인 "どげんかせんいかん(어찌 됐건 해나가야 돼)"라는 미야자키현 사투리가 지난해일본 최고의 유행어가 된 것 자체가 얼마나 기존 정치권에 대한 일본인의 불신과 변화욕구가 컸는지를 반증하는 사례라는 것이다.
그리고 당선 이후에도 많은 정치 평론가들이 "곧 꺼질 거품,연예인이라서 누리는 반짝 인기"에 불과하다며 인기가 길어야 3개월 밖에 못 갈 것으로 내다 봤지만 취임 후 1년이 지난 요즈음도 지지율 90%가 넘는 고공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일부 언론은 '미야자키로부터 일본을 변화시킨 남자','신 지사','초 일류 (연)예인' 등 낯 간지러운 찬사로 그를 추켜 세우고 있다.
그의 인기의 비결은 무엇일까? 일본 언론은 크게 두가지를 꼽는다. 작업복 차림의 서민적인 이미지에다, 기성 정치인들과 달리 권위주의를 버리고 몸을 사리지 않고 뛰는 모습이 주민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취임 이틀만에 터진 조류 인플루엔자(AI) 사태다.이 일로 일본 내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인 미야자키현의 양계산업이 큰 위기를 맞자,그는 인기 프로야구 캠프를 직접 찾아가 닭고기를 선물하거나, TV에 나와 닭고기를 직접 먹으며 '미야자키산 닭고기는 안전하다'며 사태해결을 위해 애썼다. 당시 그의 모습에 주민들이 강한 인상을 받았고,그의 지지율 상승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또 "미야자키 현의 세일즈 맨"을 자처하며 무차별적으로 방송 출연한 것이 엄청난 광고효과를 낸 것도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출연에 따른 현의 인지도 상승은 돈으로 환산해 165억 엔이 넘는다고 한다. 특히 미야자키현은 관광과 농업이 주 수입원이어서 지역 경제 활성화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취임 후 관광객이 20%이상 늘어나거나 낡은 현 청사를 구경하는 관광객이 30만 명에 이르고,'지사와 함께하는 서울 여행 상품'이 4시간 만에 동이 난 것이 단적인 예다. 또 자신의 모습을 각종 미야자키현산 농산물의 캐릭터로 쓴 것도 주효해서 미야자키산 망고의 경우?실을 적발하고,해당 공무원 499명을 징계했다.또 관제 담합이 가능했던 기존 수의계약 입찰제를 경쟁 입찰제도로 바꿨다.더불어 현재 진행중인 198개의미야자키현 공공사업 중 중복되고 비효율적인 131개의 사업을 통폐합시켰다.

해묵은 지역격차 문제, 일자리 부족 문제 등 별다른 개선안 없어
가벼운 언행·돌출 행동도 인기 하락세 요인
그럼 앞으로도 그의 높은 인기가 계속될 수 있을까? 일본 언론들의 시각은 대체로 회의적이다. 1년 동안은 서민적인 친숙함과 개혁의 이미지로 붐을 일으킬 수 있었지만, 취임 2년째를 맞아 '붐 이상'의 가시적인 성과를 바라는 주민들의 기대 수준을 맞추기에는 그의 행정가로서 능력은 벅차다는 것이다. 특히 그에게 쏟아지는 가장 큰 기대, 즉 '해묵은 지역격차 문제에 그가 진전을 볼 수 수 있을까'라는 점에는 물음표를 달고 있다.
대표적인 과제가 일본의 모든 지자체의 발목을 잡고 있는 재정문제다. 미야자키현의 경우 9천억엔에이르는 채무가 있는데다 해마다 사회 보장비와 퇴직금 등의 증가로 2백억 엔에서 3백억 엔의 새로운 부채가 늘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한다. 이미 파산신고를 받은 홋카이도의 유바리시 정도는 아니지만 재원 부족은 언제 터질 지 모르는 시한폭탄인 것이다. 그러나 그는 별다른 개선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또 다른 대표적인 지역격차 문제, 즉 의료인력과 일자리 부족 문제도 해결될 기미가 없다. 예를 들어 한 종합 병원에 109명의 의사가 필요하지만 실제 의사는 23명 정도에 불과할 정도인 의료인력 부족현상과, 전국 평균의 65%에 불과한 미야자키현의 일자리 부족 문제는 여전히 심각한 상태 그대로다. 두 가지문제 모두 주민들의 입장에서 가장 절실한 문제인데, 별 다른 진전이 없을 경우 주민들이 등을 돌릴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의 가벼운 언동도 자주 도마에 오르고 있다. 문제 있는 돌출발언은 그의 인기를 갉아 먹는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그는 이런 모든 의구심에 대해 "지금은 씨를 뿌리는 시기에 불과하다"고 강조하며 "앞으로 구체적인 성과를 내게 될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올해는 방송 출연횟수도 줄이고,현정에 더 충실하겠다고 말한다. 과연 그가 선거에서 "믿을 수 없는 승리"를 거뒀던 것처럼 '지역격차' 문제들을 풀어 나갈 수있을 것인지 일본 사회가 주목하고 있다고 한다.
지나친 보수 우익적 성향에 '호감'은 '실망'으로
처음에 이 사람의 인생 역정과 캐릭터가 재미있어서 소개해야지 마음 먹었다. 전직 코미디언 출신에갖가지 재미있는 일화 등 워낙 이야기 거리가 많아 "일본에 이런 정치인도 있다"고 가볍게 화제성으로 소개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쓰다 보니 자꾸 일이 커져 갔다. '지역격차' 문제를 말하지 않고서는 이 사람에대해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인데, 결국은 일본 전반의 정치문제까지 몽땅 건드리게 됐다. 줄인다고 줄였는데, 결국 처음 의도했던 것과 달리 딱딱하고 긴 글이 됐다.
그리고 이 아저씨의 보수 우익성향도 질리게 했다. "징병제 도입"이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종군 위안부부정 등 잇따른 문제발언과 돌출행동은 애초 가졌던 호감을 실망으로 바꿨다. 이 사람이 장관쯤 됐다면, 아마 '과거사 망언'으로 한참 문제를 일으켰을 것이다. 그래서 소개를 망설였지만, 이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이 일본 사회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올린다. 또 일본 TV에서 이 아저씨를 보고 나처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SBS 유영수 기자의 블로그 '좌충우돌 일본정착기' 바로가기
※본 기사는 SBS의 편집방향과 무관하며 모든 책임은 정보 제공자에 있습니다.
관/련/정/보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