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는 한국영화가 숨고르기에 들어갔는지 개봉영화 가운데 한편도 없네요. 그 이유는 설 연휴를 겨냥한 한국 영화들이 다음 주에 쏟아지기 때문입니다. 극장가에서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 2백만 관객을 돌파하며 개봉 3주차에도 예매율 1위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이런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는 것을 보면 평소 영화 마케터들이 '변덕이 죽끓듯해 도대체 예측이 불가능하다'며 탄식하는 우리 관객들 성향이 아직은 건전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주 개봉영화 가운데 가장 관심이 갈만한 영화가 [클로버필드]인데 또 시사회를 놓쳤습니다. (쩝) 본 분들 말로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사상 처음 시도되는 촬영기법의 영화로 (이전에 이런 기법은 [블레어 위치]라는 저예산 영화에 사용됐고 톡톡히 재미를 보기도 했습니다만) 처음부터 끝까지 아마추어가 캠코더로 찍은 듯한 '익스트림 핸드 헬드'라는 촬영기법으로 화면이 마구 흔들리는 괴수 영화로 멀미를 느낀 분들이 다수 있고 심지어는 구토까지 한 분들도 있었다는데 85분이라는 비교적 짧은 상영시간 덕분에 그럭저럭 봐줄만 했다는 분들도 있더군요. 저는 [트랜스포머]때 어떤 놈이 우리편 로봇이고 어떤 놈이 나쁜 놈인지 헷갈릴 정도로 어지러웠는데, 안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휴우~ )
에반게리온:서(序) (12세 관람가, 감독:안노 히데야키, 츠루마키 카즈야)
숭배에 가까운 열광을 받았던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처음엔 26부작의 TV 시리즈로 나왔고 이후 애매한 결말의 극장판 2편이 만들어졌습니다. 안노 히테야키 감독은 다시 처음부터 4편의 최종 완결판을 만들기로 하고 그 첫 작품이 이 작품입니다. 감독은 단순한 리메이크가 아니라 '리빌드(Rebuild)'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그 말 그대로 발전된 기술을 사용해 확 뜯어고쳤다고 합니다. 저패니메이션이라 부르는 일본 애니메이션은 보면 볼수록 그 저력이 간단치 않음을 느끼게 됩니다. 일본뿐 아니라 국내에도 소수지만 그 충성도가 높은 열혈팬층이 존재하는데 그럴만한 매력적인 요소들을 많이 갖추고 있습니다.
주인공 신지가 아버지의 호출을 받고 전투도시 도쿄 3지구로 올라오는데 인류의 운명을 위협하는 정체불명의 적 '사도'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개발된 생체형 로봇 에반게리온 초호기의 조종사로 선택됐다는 사실을 듣습니다. 나이 어리고 마음도 여린 소년에게 인류의 운명을 감당하라는 명령은 정말 무섭겠지요. 그 운명을 피해보려고 하지만 결국 몇 번씩 두려움을 가득 안고 탑승하고 사도와의 대결에서 간신히 승리하는데 더욱 강력한 사도가 잇따라 등장합니다.
TV 시리즈를 옛날에 듬성듬성 봐서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제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이번 극장판은 훨씬 밝아지고 쉬워진 것 같습니다. 여주인공들의 노출 장면도 살짝 살짝 간간이 나오는데, 그건 이 영화를 만든 '가이낙스'라는 집단이 '싸비스' 정신을 늘 앞세우기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또 동료 조종사인 말없는 소녀 레이가 이번 영화에서 드디어 웃는 장면이 나오는데 열혈팬들이라면 뒤집어질만한 사건이라더군요. 굳이 팬이 아니더라도 그 스케일이나 정교함, 전투 장면의 박진감, 미래세계 디자인 등 볼거리가 풍부하고 어렵지 않은 편입니다.
엘라의 모험:해피엔딩의 위기 (전체관람가, 감독:폴 J 볼거)
동화속 마법의 성 맨 꼭대기에는 마법사가 사는데 가장 중요한 임무는 선악의 저울을 균형을 유지해 동화가 해피엔딩으로 끝나도록 만드는 일입니다. 마법사가 스코틀랜드로 골프휴가를 떠나고 시중들던 멍크와 맘보가 저울을 지키는데 악한 마녀이자 신데렐라의 계모인 프리다가 침투해 마법의 지팡이를 빼앗아 동화 속 주인공들의 운명을 뒤집어 놓기 시작합니다. 이에 맞서 엘라와 멍크, 맘보는 힘을 합해 동화 속 세계를 원상회복하기 위해 모험을 벌인다는 이야기입니다.
가장 핵심요소는 동화의 해피엔딩이 뒤집어진다는 착안에서 출발했다는 점인데, 출발점의 참신함을 끝까지 유지하지는 못합니다. [슈렉]이 처음 나왔을때처럼 신선하지는 않다는거죠. 원래 마녀 목소리에 시고니 위버, 여주인공 엘라는 샤라 미셸 갤러가 목소리 출연 하지만 국내에서는 우리말 더빙판만 개봉됩니다. 어린이들에게 인기 많은 정형돈과 하하가 목소리 출연하고는데 그럭저럭 재미있어 초등생 이하 자녀들에게 보여줬을때 '엄마 아빠는 뭐 이런 영화를 보여주냐'는 핀잔은 안 들을 것 같은 애니메이션 영화입니다.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 (18세 관람가, 감독:장 이바이, 주연:유가령, 후준)
제목을 봐서는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통 짐작이 안갔고, 포스터를 봐서는 이 추운 겨울을 후끈 달아오르게 해주는 진한 장면들이 즐비한 에로틱 영화같기도 했습니다. 결국 보자면 약간의 에로틱한 요소가 가미된 치정극 내지는 스릴러라고 할 수 있겠네요.
고도성장을 상징하는 중국 내륙 도시 충칭을 무대로 어마어마한 부자들이 사는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 정도 되는 곳에서 부자집 딸과 결혼해 사는 남자가 어느날 미용실 젊은 여자와 기냥 단박에 눈이 맞더니 아슬아슬한 불륜을 시작합니다. 마누라를 잃으면 모든 걸 잃게되는 신세인 남자는 이래선 안되겠다 맘먹고 여자에게 이별을 통보하지만 젊은 여자는 헤어지기는 커녕 병적으로 집착하더니 급기야 남자가 사는 건물 1층에 떡하니 미용실을 차립니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휴대폰 사진기로 촬영하는 사진관 여자 직원이 있고, 또 시골에서 올라온 가난한 젊은 청년 경비원이 있습니다.
이쯤이면 단순한 치정극 내지는 '사랑과 전쟁'에 그쳤겠지만 영화는 중반 이후 90년대 홍콩영화 황금기를 주름잡던 유가령이 연기한 부인의 숨겨진 역할이 드러나면서 다소 복잡 미묘해집니다. 중국 영화하면 대하사극 내지는 무협 액션 등이나 '5세대', '6세대'하는 무거운 사회물 등이 떠오르는데 이 영화는 그 어디에도 포함시키기 애매한 지금 여기 중국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자신의 운명을 나락으로 몰고가는데도 어쩔 수 없이 휘말리는 인간의 욕망과 복수심같은 보편적인 주제도 잘 녹여냈습니다.
이밖에 기네스 펠트로와 페넬로페 크루즈가 나오는 판타지 로맨스 영화 [굿나잇]과 프랑수와 오종 감독이 영국의 여류작가를 소재로 만든 [엔젤] 등이 개봉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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