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사물놀이가 탄생한 지 30주년이 되는 해다.
사물놀이 공연은 1978년 서울 종로구 원서동에 있는 소극장 '공간사랑'에서 시작됐다.
건축가 김수근은 당시 자신이 직접 설계한 '공간'의 문을 열면서 지하에 소극장 '공간사랑'을 마련해 다양한 분야의 예술 무대를 마련했다.
김덕수, 이광수, 최종실, 김용배(작고)는 이곳에서 장구, 북, 징, 꽹과리 네 악기로 구성된 공연을 보여줬다.
민속학자 심우성은 여기에 '사물놀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이후 사물놀이는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이 됐다.
사물놀이의 주역으로 일컬어지는 이들 가운데 김용배는 1986년 작고했고, 다른 3명은 예인의 길을 계속 걷고 있다.
김덕수는 사물놀이 한울림 교육원과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일반인과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5세 때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남사당패 활동을 시작한 김덕수는 7세인 1959년 '전국농악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장구의 신동으로 알려졌다.
이광수는 충남 예산에서 민족음악원을 설립하고 연주 활동과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비나리와 구음의 명인으로 알려진 이광수도 김덕수와 마찬가지로 남사당패를 이끌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1957년 6세 때부터 남사당패 활동을 시작했다.
이광수는 1993년 김덕수패 사물놀이에서 독립했다.
지난해부터 '예산족 프로젝트'를 시작해 전통음악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최종실이 예인 생활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이 두 사람과 비슷하다.
1957년 4세 때 삼촌포 농악계 계장이었던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농악계에 입단했다.
1989년 사물놀이 팀과 결별한 뒤 서울예술단 감독으로 자리를 옮겼고 2001년부터 중앙대 타악과 교수로 있으면서 중앙타악단을 창설했다.
이들은 1982년 미국 댈러스에서 열린 '세계 타악인 대회'에 참가해 사물놀이를 알린 뒤 일본, 캐나다, 영국 등지로 해외 공연을 다녔다.
1983년부터 로스앤젤레스, 뉴욕, 도쿄, 베를린 등지에서 사물놀이 캠프가 열렸고 대영백과사전에는 '사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이라는 뜻의 '사물놀이안'(samulnorian)이라는 뜻의 신조어가 등록됐다.
지금도 사물놀이를 다른 나라 타악기와 접목하거나 월드 뮤직 또는 재즈, 힙합 등 여러 장르와 교류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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