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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것이 좋아 - 1월 셋째 주 개봉영화

남상석

입력 : 2008.01.17 16:14|수정 : 2008.01.17 17:43


지난 주에는 모처럼 한국영화가 흥행 기지개를 켰습니다. 같이 개봉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과 [무방비도시]가 나란히 1, 2위를 차지했네요. 평일에도 각각 9만, 7만명 정도가 들고 입소문도 괜찮은 편이어서 흥행호조는 당분간 지속될 것 같습니다. 이번 주에도 한국영화와 할리우드 영화들이 개봉 대결을 펼칩니다. 권칠인 감독의 [뜨거운 것이 좋아]와 팀 버튼 감독의 [스위니 토드]가 주목되고 추천해 드릴만 한데 [스위니 토드]는 제가 시사회를 놓쳐 보지 못했습니다.

뜨거운 것이 좋아(15세 관람가, 감독:권칠인, 주연:김민희, 이미숙, 안소희)

27살의 잘 안풀리는 시나리오 작가 아미(김민희)는 몇 달째 방음도 안되는 모텔에 쭈그리고 앉아 시나리오 수정작업에 몰두합니다. 겨우 끝냈다고 생각하며 감독과 제작자에게 건네지만 반응은 싸늘합니다. 밴드에 몸담고 음악을 하지만 어느 천년에 언더그라운드에서 지상으로 올라올지 모르는 원석(김흥수)과 몇 년째 사귀고 있습니다. 결혼을 서두르는 아미와 비전은 없지만 음악을 계속 하고자하는 원석의 갈등은 점점 커져갑니다. 그 순간 못이긴척 나간 맞선 자리에서 얼굴도 괜찮고 능력있는 회계사(김성수)를 만나는데 점점 그에게로 마음이 기웁니다. 이런 아미는 40대 성공한 디자이너인 언니 미영(이미숙)과 이모를 쌩무시하는 영악한 조카 강애(소희)와 함께 삽니다.

 [싱글즈]에서 20대 후반 여성의 심리를 잘 그려내 흥행에도 성공했던 권칠인 감독 작품으로 이번에는 10대, 20대, 40대 여성으로 다루고자하는 여성들의 연령대를 확대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자꾸 [싱글즈]가 생각나며 아쉬움이 느껴집니다. 중심에 놓인 것은 20대 후반의 아미로 20대 중후반은 일과 사랑, 그 어느 하나도 확실한게 없고,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은 많지만 불투명한 미래를 짊어진 상태라고 표현할 수 있겠죠. CF퀸으로 반짝이는 재능을 보여줬던 김민희는 이번 영화에서 자연스런 생활연기를 마구 보여줍니다. 갖출 것 다 갖춘 회계사와 사귀고 결혼하기로 맘 먹고 구질구질한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선고하는 자리에서, 징징짜며 불쌍하게 돌아서는 남자의 애원어린 눈빛에 잠자리를 함께한 뒤 후회하는 장면은 아마 많은 남녀들이 겪었거나 겪을 뻔 했던(?) 에피소드로 가장 현실감 있게 다가옵니다.

눈맞은 연하남과 호텔로 직행하는 화통한 성격의 미영은 폐경선고를 받고 당황하고, 3년째 사귄 남친과 스킨십 시도에 골몰하던 여고생 강애는 성 정체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합니다. 김민희를 비롯해 배우들의 연기는 흠잡을데 없습니다. 하지만 각 캐릭터들이 그럴 듯하지만 왠지 생동감은 획득하지는 못해 보이고 이야기 전개도 설득력을 완전히 갖췄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특히 아미가 가장 큰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는 장면이 그렇더군요.

(*깜찍하고 귀여운 안소희의 연기도 썩 괜찮은데 영화 계약과 촬영은 원더걸스의 [텔미]광풍이 불기전에 이뤄져 영화 인지도를 높이는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김민희의 생생한 생활연기, 술주정 연기에서 대사가 웅얼웅얼 잘 안들리더군요. 시사회를 많이하는 서울극장의 음향이나 좌석은 좀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어린 왕자(12세 관람가, 감독:최종현, 배우:탁재훈, 조안)

종철(탁재훈)은 영화와 드라마 등에서 각종 효과음을 만들어내고 입히는 폴리아티스트입니다. 처자식 있는 가장이지만 가정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일에만 매달립니다. 그러면서 ‘내가 이러는게 다 누굴 위해서인데...’하는 알랑한 자의식에 휩싸여 있죠. ‘매년 가는 여름휴간데 뭘 그러냐’며 원망어린 아내의 시선을 외면하고 아내와 아이만 달랑 지방으로 떠나 보냅니다. 아내가 모는 차는 보기에도 위험한 절벽 길에서 고장나고 그 지역은 요즘 전화 한통이면 5-10분 내에 달려오는 보험사 긴급출동 서비스도 외면하는 지역이랍니다. 아니나 다를까 불길한 예감답게 불의의 사고로 아내와 아들을 잃고 종철은 뻔할 뻔자로 술에 쩔어 폐인같은 생활을 합니다. 그러던 중 작은 철갑상어를 갖고 다니는 다소 엉뚱한 아이 영웅을 만나면서 조금씩 마음을 열고 자신의 소홀함으로 떠나보낸 자식 대신 사랑과 헌신으로 대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맑은 마음으로 만든 착하디 착한 영화인데 땡기지는 않습니다. 채널 돌리는데마다 나와서 자연스럽게 웃기던 탁재훈이 한번도 웃기는 연기를 하지 않아서일까요? 하지만 탁재훈의 연기 자체는 흠잡을데 없이 좋습니다. 불의의 사고라는 설정에 이어 우연히 만난 영웅이와 종철과의 기도 안차게 기막힌 과거 인연 등 영화의 주요 고비마다 중요한 사건과 설정들의 작위적인 느낌 때문인 것 같습니다. 가정에 충실하게, 있을때 잘하고, 난치병 어린이를 힘을 모아 내 일처럼 도와야 하고, 아무리 큰 역경이 들이닥쳐도 절망하며 폐인처럼 살지 말고 희망을 갖고 살라는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너무 직설적으로 던져지는데에 대한 거부감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전체 관람가면 딱 좋을듯한데 12세 등급을 받은 것은 실의에 빠진 종철이 술먹고 담배피우는 장면이 많아서 그랬다더군요.

(18세 관람가, 감독:스티븐 셰인버그, 주연:니콜 키드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20세기 충격적이고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작품을 남긴 여류 사진작가 디엔 아버스를 다룬 독특한 전기영화입니다. 여기서 독특하다는 것은 그녀의 실제 생활을 충실하게 묘사하는게 아니라 ‘그래서 그랬을 것이다’라는 추측 아래 상상력을 많이 가미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모피 사업을 하는 부잣집 딸로 각종 패션 사진을 찍는 남편을 돕는 조수로 충실하게 살던 디앤이 어느날 일상의 답답함에서 벗어나 호기심으로 엿본 세계를 맛보고는 점점 빠져들고 결국 전문 사진작가가 된다는 것인데 그 세계가 장애인, 기형으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영화에서는 윗층에 이사온 남자가 그 세계를 대표하는 인물인데 온몸이 털로 덮여있는 다모증이 있는 인물입니다.

니콜 키드먼은 여전히 투명한 듯 차갑고 아름다운 매력을 발산하며 멋진 연기를 보여줍니다. 특히 무언가에 홀려 같은 건물이지만 전혀 다른 분위기의 위층 남자의 집과 그 남자에게 끌려들어가는 부분은 분위기가 아주 묘하게 신비롭습니다. 다모증 남자 온몸에 난 털을 세심하게 면도해주고 마지막 정사를 나누는 시퀀스의 에로틱 지수는 무지하게 높습디다. 영화가 그리는 인물과 세계가 독특한데다 다소 지루한 느낌이 드는 예술 영화입니다. 예술가들의 독특한 내면 세계를 잘 이해하기 어려운 평범한 분들은 ‘아니 멀쩡한 가정 주부가 뭐가 아쉬워서 남편과 딸을 내팽겨치고 윗층의 이상한 남자에게 매력을 느끼고 기이한 사람들과 행복하게 어울린단 말인가?’하며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겠습니다. 저 역시 그렇더군요. (특히 부잣집 딸을 얻어 승승장구하다가 아내에게 신기가 들어앉으면서 가정에서 몸과 마음이 점점 멀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며 절망속에 슬픔을 삭이는 남편이 너무 불쌍하더군요.) 

이밖에 제시카 알바 주연의 다소 엉뚱하고 억지스럽고 황당한 로맨틱 코미디 [굿 럭 척]과 [에이리언 vs 프레데터2] 등이 개봉됩니다. 즐겁고 행복한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