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레네 산맥을 지나자 바닥을 드러낸 채 구릉을 이룬 밀밭, 수확이 끝났지만 향긋한 와인 내음이 느껴지는 듯한 포도밭길, 끝없이 이어지는 지루하고 건조한 고원지대... 다양한 기후대를 지나는 산티아고 길은 마치 인생의 축소판처럼 순례자들 앞에 놓여있다.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것만이 이 길의 목적인양 순례자들은 그날의 목표를 정하고 스스로에게 걷기의 과제를 부과한다. 그렇게, 오랜 세월 누적돼온 지독한 조급증을 내려놓지 못하던 사람들이 서서히 보폭을 줄이고 걷기의 속도를 늦춘다.
꾸려온 짐은 길 내내 줄어들고 순례자들은, 최소한의 소지품으로 한 달이 넘는 노정을 견디는 자신을 만난다. 줄어든 짐만큼, 카미노는 지나쳐 버렸던, 놓치고 말았던 아름다움과 살가운 만남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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