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뉴스

뉴스 > 스포츠

김득구 '비극' 25년 만에 또 뇌사라니...

입력 : 2008.01.02 13:51|수정 : 2008.01.02 13:51


고(故) 김득구와 2008년 1월2일 최요삼(35.숭민체육관).

김득구는 1982년 11월13일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복싱협회(WBA) 라이트급 타이틀전에서 레이 맨시니(미국)에게 14회 KO 패한 뒤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나흘 만에 사망했다.

한보영 한국권투위원회(KBC) 부회장에 따르면 김득구 역시 사인은 뇌사였다.

한 부회장은 "당시 뇌사 판정을 받은 뒤 인공호흡기를 떼어내야 하는데 가족 동의가 필요하다고 해서 어머니가 미국으로 건너갔었다"고 회상했다. 김득구는 당시 심장과 신장을 미국인에게 기증하고 세상을 떠났다.

권투위원회에 따르면 당시 중구 정동 문화체육관에서 권투인장으로 치러졌다. 최요삼의 장례 절차가 권투인장으로 진행되면 애초 알려진 것과 달리 두번째가 된다는 설명이다.

한 부회장과 조민 숭민체육관장은 "당시 김득구는 훈장까지 추서됐다"고 회상했다.

이후 일본 챔피언을 지낸 한국인 복서 고 이동춘이 1995년 9월5일 도쿄에서 벌어진 일본 밴텀급 타이틀 재도전 경기에서 가와마쓰 세추에 패한 뒤 죽기도 했지만 국민들 기억 속엔 김득구의 비극이 또렷이 남아있다.

최요삼은 지난 12월25일 광진구 자양동 광진구민체육센터에서 벌어진 세계복싱기구(WBO) 인터콘티넨탈 타이틀 1차 방어전에서 헤리 아몰(25.인도네시아)에게 판정패를 거둔 뒤 뇌출혈 증상을 일으킨 끝에 2일 서울아산병원에서 뇌사 판정을 받았다.

프로복싱계는 최요삼의 뇌사 판정 소식을 듣고 25년 전 김득구가 쓰러졌을 때의 몸서리치는 기억을 떠올리며 장탄식을 뱉어내는 한편, 복싱 안전대책을 두고 심각한 논의를 벌이고 있다.

복싱계는 "복싱이 격투기보다 위험한 건 아니다"라고 반박하면서도 권투위의 경기 승인 절차, 형식 뿐인 의료테스트 등은 당장 뜯어고쳐야 한다고 한결같이 입을 모으고 있다.

최요삼은 1999년 세계챔피언이 될 때 턱뼈를 크게 다쳐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20대 때에는 괜찮을 지 몰라도 서른을 넘긴 그가 2006년 12월30일 복귀전부터 작년 크리스마스 마지막 경기까지 1년 남짓한 기간에 다섯 차례나 경기를 치른 것은 무리가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최요삼은 경기 전 보양식 부작용에다 감기·몸살, 불면 등이 겹쳐 기진맥진한 채 링에 올라간 것으로 뒤늦게 확인되기도 했다.

하지만 마지막 안전판이라고 할 수 있는 의료테스트('메디컬테스트')는 지극히 형식적이었다.

권투위는 경기 한 달 전 인정료를 받고 경기 승인을 하면서도 의료테스트 결과는 감안하지 않았다. 의료테스트라고는 경기 직전 혈압과 맥박을 재고 손을 쥐었다 폈다 한 게 전부였다.

그 테스트에서 '정상' 판정을 받았다고 해서 몸이 정상인 것은 아닌 셈이다.

복싱인들은 권투위가 적어도 미리 선수 진단서를 보고 경기 승인을 내주든지 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최요삼이 소속돼있던 숭민체육관의 장병인(49) 코치는 "우리가 무슨 운전면허 시험 보는 거냐. 눈이 보이고 손을 쥐었다 폈다 할 수 있으면 링에 올라가도 된다니 참 기가 찰 노릇"이라고 말했다.

복싱계 일각에서는 세계 복싱계가 김득구 사건을 계기로 세계타이틀전 라운드 횟수를 15회에서 12회로 줄인 것처럼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내에서만이라도 10회나 8회로 줄이자거나 현재의 8온스 글러브 대신 솜을 더 빼서 6온스 글러브를 사용하는 문제도 거론되고는 있지만 찬반 양론이 팽팽하다.

변정일 전 세계챔피언은 "긴 경기는 지루하고 사고 위험도 높다"며 "라운드 횟수를 줄이는 로컬 룰을 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이동포(41) 숭민체육관 코치는 "경기가 짧아지면 막싸움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서울=연합뉴스)
SBS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