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뉴스>
<앵커>
젊은 시절 교통사고로 두 팔과 한쪽 다리를 잃은 칠순의 할머니가 평생을 써온 일기가 책으로 나왔습니다. 고통을 견디며 온몸으로 쓴 희망에 대한 기록을 송년기획 '당신은 챔피언'에서 소개합니다.
정형택 기자입니다.
<기자>
'살과 가슴에 피멍을 안고 생의 한 페이지를 그려온 내 역사, 그 누가 함께 울어주었던가. 바로 이 백지가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나의 역사를 지켜본 장본인이다.'
교통사고로 두 팔과 한쪽 다리를 잃은 70살 할머니가 지난 40년 동안 온몸으로 써내려간 일기의 한 토막입니다.
회한의 세월은 '내 마음에 꽃 한 송이 심고'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이한순 할머니가 끔찍한 사고를 당한 건 젊음이 채 꽃피기도 전인 22살 때입니다.
가족에게 보낼 김장 보너스에 들떠있던 여직공을 석탄을 가득 실은 화물 트럭이 덮쳤습니다.
말로 표현 못 할 고통과 팔다리가 떨어져 나갔다는 상실감에 할머니는 4번이나 자살을 결심합니다.
[이한순 : 이 세상에서 살아봤자 뭘 해요. 아무런 보람도 꿈도 없고 다 앗아갔는데. 이 세상을 그만둬야겠다는 궁리밖에 안 했죠.]
할머니를 살린 건 가족의 사랑입니다.
[우리 식구를 위해서, 어머니를 위해서. 오빠를 위해서, 동생을 위해서.]
사람구실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한쪽 어깨와 무릎을 이용해 기어다니며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았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글쓰기입니다.
[동생이 군인 나가서 편지가 왔는데 답장해줄 수가 없잖아요. 우리 어머니도 글을 모르시니까 읽어주기는 하는데 쓸 줄을 모르잖아요.]
어깨와 팔목에 펜을 낀 채 온몸을 움직여 한두 글자 적어가면 극심한 고통에 며칠을 앓았습니다.
[손으로 쓰는 게 아니고 몸으로 쓰는 거잖아요. 몸이 약하잖아요, 우리같은 사람들은 운동도 부족하고. 한 몇 자 쓰고 방바닥에 뒹굴면서 죽는다고 앓고.]
그러나 글쓰기는 두 평 남짓한 방에서 할머니가 만나는 세상의 전부였기에 멈출 수 없었습니다.
[(제목의 의미는? 왜 생과 운명이에요?) 딴사람들은 생과 운명이란 말은 쉽잖아요. 그런데 나에게는 그게 뼈가 저리고 육신이 사무치게 아프잖아요.]
글쓰기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았고, 세상으로 다시 나올 수 있는 용기도 얻었습니다.
[글을 써서 언젠가는 내가 이 세상에 없어졌을 때라도 이 세상을 밝게 해서 어려운 사람들도 극복을 하고 참고도 되게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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