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대통령 선거 투표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 왔다. 내일 저녁이면 많은 것이 변할 것이다. 승자는 천하를 얻은 기쁨을 누릴 것이고, 패자들은 통한의 눈물을 흘릴 것이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위대한 발명품이다. 선거가 없었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권력을 갖기 위해 싸우다가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선거가 있기에 정치인들은 피를 흘리지 않고도 경쟁할 수 있다. 이번 선거에서 지는 사람들은 다음 선거에 다시 도전하면 된다. 유권자들도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이 당선되면 좋지만, 안돼도 너무 슬퍼할 일이 아니다. 누가 대통령이 돼도 나라가 쉽게 망하지는 않는다.
▶피 흘리지 않고 경쟁할 수 있는 선거 ‘민주주의의 위대한 발명품’
지금 이 순간 가장 궁금한 것은 후보들의 지지율일 것이다. 지난 13일 이후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는 공표가 금지되어 있다. 유권자들은 답답할 것이다. 특히 16일 이명박 후보의 광운대 특강 동영상이 폭로되고, 17일 국회에서 ‘이명박 특검법’이 통과된 이후 여론의 흐름이 궁금할 것이다.
선거법에 위반되지 않는 수준으로 몇 가지 정보만 제공하기로 하자. 이명박 후보 지지율은 하락세다. 한나라당에서도 5~8%의 낙폭을 인정한다. 오늘과 내일 사이에 더 빠질 가능성도 있다.
정동영 후보 지지율은 상승세다. 상승의 폭은 크지 않다. 그러나 대통합민주신당 자체적으로 하고 있는 조사에서는 상당히 많이 치고 올라간 것으로 나온다. 이회창 후보와 문국현 후보도 상승세다. 상승 폭은 크지 않다.
▶정·창·문 상승세나 폭 크지 않아…동영상 파괴력 한계
부동층은 늘었다. 아마 이명박 후보에게서 떨어져 나온 사람들이 곧바로 다른 후보에게 옮겨가지는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대선의 투표율은 크게 떨어질 것 같다.

▲ 한나라당 이명박, 민주당 이인제, 무소속 이회창,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민주노동당 권영길,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왼쪽부터)가 지난 16일 밤 서울 여의도 문화방송에서 경제 분야 합동토론을 마치고 함께 포즈를 취한 뒤 이명박 후보가 먼저 자리를 뜨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그래서, 역전은 가능한 것일까?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정동영 후보나 이회창 후보, 문국현 후보 진영에서도 인정한다. 지난 12일까지 조사에서 이명박 후보는 40%대 중반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다른 후보들은 절반에도 못미쳤다. 차이가 너무 커, 며칠 만에 뒤집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얘기다. 동영상 사건은 새로운 이슈가 아니기 때문에 파괴력에 한계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추격자들도 이런 사정을 잘 안다. 그래서 지금 바쁘다. 정동영 후보 진영에서는 문국현 후보와의 막판 단일화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오늘 밤에라도 문국현 후보의 사퇴와 정동영 지지를 끌어내야 한다고 눈에 핏발을 세우고 있다. 문국현 후보가 동영상 사건 이후 흔들리고 있다는 자체 분석도 있다.
▶정쪽 자체 분석으로는 흔들린다지만 문쪽선 요지부동
그러나 문국현 후보 쪽 사람들은 요지부동이다. 정동영 후보가 사퇴하면서 문국현 후보를 지지해야 감동을 줄 수 있다는 논리를 아직 접지 않고 있다. 오히려 동영상 사건 이후 지지율 상승에 약간 고무된 분위기다.
이회창 후보는 박근혜 전 대표에게 매달리고 있다. 이회창 후보는 오늘 오전 기자회견을 열어 박근혜 전 대표와 ‘공동 정부’를 구성하겠다고 약속했다. 제의한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발표를 했다.
“박근혜 전 대표가 애절하게 호소했듯이 불안한 후보를 뽑으면 땅을 치고 후회할 날이 온다. 어쩔 수 없이 인질이 된 동지의 심정을 잘 안다. 한나라당의 정통성과 원칙을 지킨 박 전 대표에게 간곡히 부탁한다. 일초의 순간이라도 대의를 위한 시간이 남았다면 그것이 진정 옳고 박 전 대표를 사랑하는 동지의 고통이라면 자신을 던져야 한다. 그래야 한나라당과 국민이 살고 한국의 미래가 산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이회창은 국민의 소중한 정치적 자산인 박근혜 전 대표와 공동 정부를 구성해 대한민국을 바로 세울 것을 약속한다.”
이회창 후보의 애타는 심정이 잘 녹아 있다.
▶전날 밤 돌출 변수에 ‘방심-결속’ 소리없는 ‘역풍’ 불기도
추격자들에게는 지금 ‘시간’이 가장 아쉬울 것이다. 시간이 조금만 더 있으면 뒤집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동영 후보의 전략기획 참모는 “선거를 1주일만 늦출 수 있다면 좋겠다”고 했다. ‘동영상’으로 흔들리기 시작한 이명박 후보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있어도 민심을 얻는다는 ‘보장’은 없다.
과거 대선에서도 그랬다. 1997년 대통령 선거 막판에 이회창 후보는 상승세였다. 김대중 후보를 바짝 추격했다. 투표일이 2~3일 만 늦어졌어도 이회창 후보가 이겼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정말 그럴까? 그건 알 수 없는 일이다. 김대중 후보가 좀 더 큰 차이로 이겼을 수도 있다.
▶유권자 권리이자 사는 재미인 느긋한 ‘한 표’ 즐기자
2002년 대선 투표일 전날 밤 정몽준 의원은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철회를 선언했다.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노무현 후보에게는 이를 만회할 시간이 없었다. 전문가들도 이회창 후보의 승리를 점쳤다. 보수 성향의 신문사 편집국에서는 만세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런데 역풍이 불었다. 이회창 지지자들은 방심했고, 노무현 지지자들은 결속했다.
민심이라는 상수는 시간이라는 변수보다 언제나 위에 있다. 대한민국 유권자들은 정치인들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 앉아 있다는 얘기다.
이제 선거운동 기간이 끝나간다. 후보와 참모들은 애가 타겠지만, 유권자들은 ‘한 표’를 준비하면서 느긋하게 선거를 즐기면 된다. 내일은 공휴일이다.
내년 4월9일엔 국회의원 선거가 또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투표 행위는 유권자들의 권리이자 사는 재미이기도 하다.
(한겨레)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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