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뉴스

뉴스 > 국제

마이클 클레이튼-고단한 삶의 무게와 결단

남상석

입력 : 2007.12.03 16:26|수정 : 2007.12.03 18:40


(**영화의 중요한 대목과 결말을 몽땅 알려주는 스포일러가 있으니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TV 시리즈 [ER]을 통해 세계적인 섹시스타로 발돋움한 조지 클루니는 [배트맨과 로빈]같은 블록버스터와 [오션스..]시리즈 같은 오락영화는 물론 [시리아나], [굿나잇 앤 굿럭]같은 무거운 사회 고발물까지 다양하게 출연, 감독하며 다재다능한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자료를 뒤지다 보니 데뷔 초 [델마와 루이스]에서 브래드 피트 역할을 노리고 몇 년간 공을 들였지만 탈락했고, 그 때문에 타란티노 감독의 [저수지의 개들] 출연 요청을 거절했다고 하네요. 인간만사 새옹지마!) 톱스타로서 명성에 만족하지 않고 정치적 발언은 물론 행동까지 서슴지 않는 좀 독특한 할리우드 스타인 그가 이번에는 [마이클 클레이튼]이라는 묵직한 스릴러 영화로 우리 곁을 찾았습니다.

쟁쟁한 변호사 600명을 거느린 뉴욕 최고의 로펌에 근무하는 마이클 클레이튼,. 13년차 짬밥이지만 파트너로 승진도 못했고, 소송팀에서도 제외되어 회사 안팎의 골치 아픈 문제들을 해결하는 해결사 역할로 근근이 살아갑니다. 아내와는 이혼했고, 한때 도박에 빠지기도 했고, 퇴직 후 노후대책이나 세워보겠다며 알코올 중독자인 사촌과 동업으로 레스토랑을 개업했지만 7만 5천 달러의 빚만 남기고 폭삭 망했습니다. 그에게 돈을 빌려준 사채업자는 일주일내로 갚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최후통첩까지 받습니다.

제초제 회사 유 노스사와 제초제의 독성으로 죽었다는 주민들 사이에 벌어진 수십억달러짜리 소송을 5년째 진행해오고 있던 유능한 변호사 아서(톰 윌킨슨)가 갑자기 법정에서 옷을 벗어던지는 스트립쇼를 벌이고 원고 측 여자에게 사랑한다고 달려드는 난동을 피우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자칫하면 막대한 금전적 손실을 입힐 수 있는 이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로펌 대표 마티(시드니 폴락)는 마이클을 긴급 투입합니다. 아서는 소송분야의 내로라하는 전문가로 3년째 휴일도 없이 이 사건에 매달려왔지만 평소 조울증 증세가 있어 약을 복용해왔습니다. 회사 측은 아서의 정신병을 핑계로 강제 입원시켜 이 사건에 손을 떼게 하려는 계획이지만 아서는 마이클에게 유 노스사가 완전하게 패소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가 있다며 횡설수설하다 잠적해 버리고, 이튿날 자살로 보이는 시체로 발견됩니다. 마이클은 아서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그의 행적을 추적하다 유 노스사가 제초제의 위험성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고 이를 개선하려면 설비투자를 몽땅 바꿔야한다는 결론을 내린 빨간색 표지의 내부보고서의 존재를 알게 되는데 곧바로 정체불명의 괴한들이 그의 뒤를 밟습니다. 이 괴한들은 어떤 방법으로든 유 노스쪽으로 유리하게 일을 해결하려는 법무팀장 카렌이 고용한 전문 해결사들입니다.

이 영화의 감독은 맷 데이먼의 [본...]시리즈 3편 모두의 각본을 썼던 토니 길로이입니다. 본 시리즈에서 흠잡을 데 없이 완벽에 가까운 치밀한 시나리오로 명성을 날린 그가 처음 메가폰을 잡았는데, 이 작품 역시 고전적인 정통 스릴러로서 흠잡을 구석이 별로 없습니다. 다만 흠이라면 영화를 지루하지 않게 해주는 잔재미나 액션, 유머가 거의 없어 다소 건조하게 느껴집니다. 본 시리즈의 절반, 아니 3분의 1정도의 재미만 첨가했더라면 더 많은 관객을 끌어모을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느껴졌는데 항상 너그럽고 열린 마음(?)으로 영화에 몰입하며 본 저로서는 별 불만을 느끼지 못하겠더라고요.

우선 인물들의 개성이 명확하고 인물들 간에 주고받는 대화의 조합이 장난이 아니더군요. 주인공 마이클은 물론 런던 로펌과 합병을 은밀하게 추진하며 조금 반항하는 마이클에게 빚 변제를 조건으로 은근하게 압박하는 로펌 대표 마틴 역의 시드니 폴락, 유 노스사의 법무팀장으로 원죄를 짊어진 회사의 구린 소송을 끌고나가느라 엄청난 압박감에 시달리는 카렌역의 틸다 스윈튼까지 팽팽한 긴장감으로 끝까지 영화를 끌고 갑니다. 특히 캐릭터의 특성을 주변 사람들과의 대사나 혼자 있을 때의 행동 등으로 보여주면서 더욱 입체적으로 형성합니다.

선과 악의 대립구조에서 사적으로는 따뜻하고 착한 마음씨, 공적으로는 항상 정의의 편에 서는 주인공이 추악한 절대악과 맞서 싸운다는 평면적인 설정에서 벗어납니다. 관객들이 우리 편이라고 느끼는 마이클과 아서 모두 여러모로 하자를 지닌 인물로 설정함으로써 영화는 풍부함을 잔뜩 지니게 됩니다. 난동을 부린 아서와 그를 찾아다니던 마이클이 뉴욕 뒷골목에서 마주쳤을 때 바게트를 담은 봉투를 든 아서가 자신을 정신병원에 강제감금하려는 로펌과 마이클의 시도가 뉴욕 주 법률 아래서 얼마나 취약하고 실현가능성이 희박한지를 설파하는 대목은 대사와 배우의 연기가 최적의 조합을 이루는 것이 이런 것이다라고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영화 첫 대목, 늦은 밤 마이클에게 바하마에 휴가 가있는 동료 변호사가 전화를 걸어 자신의 중요한 고객이 보행자를 치는 뺑소니 교통사고를 냈다며 좀 수습하고 대책을 마련해달라는 부탁을 받습니다. 먹물 깨나 먹은 고객답게 사고를 낸 도로 구조와 시설물을 핑계로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거나 얼마 전에 차량을 도난당했다고 거짓 신고를 하자는 부도덕한 제안을 내놓는데 마이클은 유능한 형사소송 변호사를 구해 솔직히 얘기하라고 조언합니다. 이에 고객은 '내가 당신네 회사에 일 년에 얼마나 갖다 바치는데 이따위 밖에 못하냐? 내 담당 변호가가 마이클 너더러 '미러클 메이커'라고 해서 믿었더니 고작 그것 밖에 안 되냐'며 길길이 날뛰는데 마이클은 그를 뒤로하고 분노를 억누르며 차를 몰고 떠납니다.

레스토랑 개업했다 말아먹고 진 빚 7만 5천 달러를 요구하는 사채업자 왈, "뉴욕 대형 로펌 변호사가 고작 그 정도 돈을 못 갚는다고 하면 일이 복잡해진다. 니 차(벤츠) 팔아라." 하니 마이클 "회사에서 리스 한건데..." "그럼 집 담보로 대출 받아라" "레스토랑 개업할 때 벌써 담보로 들어갔거덩"하는 대목도 인상적입니다. 겉만 번지르르하고 실속과 내면 모두 황폐해진 마이클을 잘 설명해주는 대목입니다. 자살한 아서의 집에 밤에 몰래 들어갔다가 경찰에 연행된 마이클을 빼주는 것은 같은 나와바리에서 경찰로 근무중인 그의 친형인데, 마이클을 빼주며 "너 때문에 내가 평판도 안 좋고 형편없는 부부 경찰년놈들에게 약점 잡혔다. 은퇴할 날 얼마 안 남았는데 너 때문에 연금혜택 박탈당할지도 모른다."며 불평을 쏟아놓는 것도 멋지더군요. 하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이혼한 아내와 함께 살며 가끔 차로 데려다 주는 동안만 마주치는 어린 아들과 나누는 대화 장면들입니다.

악의 화신 편에 있는 유 노스 법무실장도 그런 식으로 묘사됩니다. 비지땀을 흘리며 화장실에서 호흡을 가다듬거나 중요한 미팅이나 인터뷰를 앞두고 신중하게 옷을 고르고 예상 답변을 꼼꼼하게 암기하며 단어 하나하나 선택에 망설이는 그녀 또한 삶을 억누르는 고단한 무게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아서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는 결정적 정황 증거를 포착한 마이클은 괴한들이 자기 목숨까지 노리는 사실을 알고난 뒤 갈등하는데, 아서가 제거되고 유 노스가 돌연 소송을 포기하고 부랴부랴 원고 측인 피해자들과 합의를 준비하고 마이클은 마티로부터 8만 불을 받습니다. 아서는 죽고 피해자들도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합의금조로 보상을 받고, 마이클은 개인적인 빚을 갚게 되고...늘 그래왔던대로 구린 냄새 맡으 없는 상황이 되었는데, 영화는 후련한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는 결말을 택합니다.

뚜벅 뚜벅 걸어나가 택시를 집어타고 50불 어치만 돌아달라고 말하는 마이클, 이어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고 카메라는 복잡 다단한 표정을 짓는 마이클을 길게 보여줍니다.  나름대로 결단을 행한 마이클의 이후 삶은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증을 여운으로 남기며 영화는 끝을 맺습니다. 

무미건조하다 못해 냉혹한 프로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고단한 삶의 무게에 짓눌리며 그때 그때 어떤 형태로든 선택을 해야하는, 때로는 그 선택의 주도권을 행사하지도 못하고 강요당하면서 때가 덕지덕지 묻은 도덕이나 양심을 박물관에 보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결과만 좋으면 만사 오케이' 라거나 '강한 자가 살아남는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라는 격언을 자기 최면처럼 중얼거리는, 저를 포함한 이 시대의 고단한 프로들에게 관람을 권하고 싶은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