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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족 복서, 시련의 세상에 '챔피언 펀치'를 날리다

하현종

입력 : 2007.12.01 20:46|수정 : 2007.12.01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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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뉴스>

<앵커>

"최근 한국에서는 날이면 날마다 새로운 스캔들이 터지고, '거의 모든 사람이 부정에서 자유롭지 못한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미국의 LA타임즈가 어제(30일) 이렇게 보도했습니다. 서글픈 얘기지만, 결코 좌절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희 8시뉴스는 우리 사회 희망의 등불은 여전히 밝게 켜져 있다는 것을 우리 이웃들의 잔잔한 인생 드라마를 통해 보여드리겠습니다.

송년기획 첫 순서, 하현종 기자입니다.

<기자>

웅크린 자세에서 순식간에 뻗어나오는 양손 주먹.

상대방의 공격을 피하는 날렵한 위빙.

여느 프로선수 못지 않은 몸놀림이지만 놀랍게도 한쪽 다리에 의족을 차고 있습니다.

43살의 장애인 복서 박영길 씨입니다.

[박영길(43)/의족 복서 : 주먹을 가능한 한 많이 뻗습니다. 대신 남들보다 덜 움직이죠.]

박씨는 7년 전, 말초혈관이 막혀 살과 근육이 괴사하는 버거씨 병에 걸렸습니다.

처음엔 발가락으로 시작해서 다음에는 발목, 결국에는 무릎 아래를 모두 절단해야 했습니다.

[피가 안 통하고 살이 썩는 거예요, 그냥. 잠을 못 자요, 아파서.]

다리를 절단한 뒤 괴사는 진행을 멈췄지만 박씨는 이미 일터도, 삶의 의지도 모두 잃어버린 상태였습니다.

[자살할 마음까지 가질 정도로 좌절이 심했어요. 매일 술 먹고 1,2년을 방황했어요.]

하지만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딸 생각에 그대로 쓰러질 수 없었습니다.

[가장이 주저앉아 있는 것보다 뭔가 하나 해야 되겠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계단 오르기도 불편했던 그에게 복싱은 결코 만만치 않았습니다.

과연 할 수 있을까,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습니다.

[막상 해보니 이건 뭐, 3분이 아니라 30분을 하는 것 같고. 그만둘까도 생각했는데 그때마다 용기를 주는 건 아이들이더라고요.]

1년을 매일같이 하루 4시간씩 꾸준히 연습한 결과, 불편한 다리는 어느새 권투 스텝에 익숙해져 갔고 이제는 비장애인과의 스파링에서도 밀리지 않을 정도가 됐습니다.

[노대민/스파링 파트너 : 라이트훅 같은 게 힘이 잘 실려 있고, 다리가 없는 분인데도 중심을 잘 잡는 것 같습니다.]

현재까지의 전적 3전 2승 1패.

체육관 대항 공식전에서 일반인 선수들을 상대로 얻어낸 값진 결과입니다.

[내 손이 올라가는 순간, 아! 해냈구나, 자신감이 확 올라 오더라고요.]

복싱에서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박씨는 직장도 다시 구할 수 있었습니다.

좌절을 딛고 일어나 다시 가장 역할을 할 수 있게 됐다는 박 씨.

그동안 힘이 되어준 가족들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 뿐입니다.

[자랑스러운 내 딸, 아들, 아빠는 열심히 살 거야. 너희들도 열심히 살기를 바란다. 아빠처럼 아프지 말고, 아빠보다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아빠가 살아있는 동안은 열심히 뒷바라지 해줄게. 사랑한다.]

이제는 어떤 시련이 닥쳐와도 포기하지 않고 세상을 향해 주먹을 뻗겠다는 박영길 씨.

그는 인생이라는 사납고 가혹한 링 위에 우뚝 선 진정한 챔피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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