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들에게 '치명적인 전염병'으로 알려진 에이즈. 그러나 이 질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에이즈가 만성질환이 됐다는 사실은 이제 상식에 속한다. 실제로 에이즈 감염자의 기대여명은 건강한 사람과 동일하다는 사실이 여러 연구에서 확인됐다.
에이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고 나면 에이즈는 인체에 무서운 질병이라기보다 사회가 만들어낸 `공포'라는 데 고개가 끄덕여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12월 1일 세계에이즈의날을 맞아 에이즈에 대한 우리 사회의 오해를 짚어본다.
◇에이즈 선고받고도 평균 35년 이상 생존 = 처음 발견될 당시 에이즈는 불치병이었지만 1996년 강력한 항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요법이 도입된 이후 치료성적이 크게 향상됐다.
최근 발표된 덴마크 HIV 감염자 생존율 연구에서 제대로 치료를 받는 환자는 평균 35년 이상 생존하며 이런 기대여명은 같은 나이의 건강한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즉 에이즈 감염자나 일반인이나 기대여명이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또 미국 에이즈 환자 100명 가운데 연간 사망자수는 1.3명꼴이며 이 가운데 에이즈와 관련된 면역기능 약화로 인한 사망은 0.3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오명돈 교수는 "국내 에이즈 사망자 중 흔한 사례는 자신이 HIV에 감염된 줄 몰라 치료를 받지 않고 있다가 면역력이 약해진 상태에서 폐렴이나 뇌수막염 같은 감염성 질환에 걸리는 경우"라며 "치료를 제대로 받은 환자라면 대부분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노년에 암, 심혈관질환 등으로 사망한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또 "에이즈에 대한 오해로 감염자들이 극도의 사회적 차별, 그로 인한 고통을 당하고 있다"며 "환자 치료보다 사회 치료가 더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약물치료 받으면 체내 바이러스 '제로' 수준 = 영화 '너는 내 운명'은 건강한 남성이 에이즈 감염 여성과 결혼하는 내용.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에이즈 감염 남성과 결혼하려는 여성의 사례가 실제로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이들 부부는 자녀출산도 원했는데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 역시 약물치료 효과 덕분이었다.
약물치료를 받게 되면 감염자의 혈중 바이러스 농도는 측정 한계(혈액 1mL당 바이러스 40개) 이하로 떨어져 감염 위험이 크게 떨어진다. 여기다 남성이 콘돔을 사용하면 감염 위험은 더욱 낮아진다.
에이즈 감염자인 임신부가 치료를 받지 않는다면 태아의 감염위험은 20%이지만 약물치료를 받을 경우 수직감염 위험은 1%대로 떨어진다. 이는 또 항HIV 약물이 임신 중에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부작용이 크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무서운' 바이러스를 없애는 약이어서 독할 것이라 예상하기 쉽지만 에이즈 처방은 부작용이 거의 없고 내성도 잘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최근 해외에서 하루에 한 번만 복용하는 에이즈 치료제도 판매 중이다. 고혈압이나 당뇨병과 다를 바 없는 그야말로 '만성질환'이 된 셈이다.
모든 에이즈 감염자가 다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바이러스에 감염되더라도 면역기능에 문제가 없다면 약물치료를 받지 않아도 된다. 국내 에이즈 감염자중 생존자는 약 4천명이며 이 가운데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는 2천200명 정도로 집계된다. 보통은 감염 후 10년 이내에 증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환자 수 많게는 1만5천명 추산 = 질병관리본부가 파악하고 있는 누적 감염인수는 2007년 6월말 현재 5천명에 육박하는 총 4천956명이다. 하루 평균 2명의 신규 감염자가 발생하는 속도를 고려하면 연말께에는 5천400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실제 감염자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에이즈 검사에서 양성으로 확진되면 보건당국에 인적사항이 통보돼 보건소의 '관리'를 받게 된다. 감염 가능성을 알고도 신원이 파악되는 것을 원치 않아 검사를 꺼리는 감염자가 적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이는 보건소 익명검사에서 확인된 환자가 약 30%인데 비해 피로, 체중감량 등 다른 이유로 의료기관에서 받은 검사에서 드러난 비율이 70%로 높다는 데서도 드러난다. 즉 위험한 성접촉을 하고도 자발적으로 에이즈 검사를 받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무늬만 익명검사가 아니라 양성으로 확진되더라도 신원을 정부에 보고하지 않는, 진짜 익명검사를 실시해야 에이즈 확산을 차단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국내 감염은 대부분 이성(異性) 감염이라지만 = 에이즈 확산은 보통 집단별 6단계로 일어난다고 알려져 있다. 감염 확산 단계가 동성애 남성 감염→정맥주사마약 사용자 감염→성매매 여성 감염→성구매 남성 감염→성구매 남성의 여성 파트너 감염→일반인 여성으로 인한 수직감염의 순서로 이어진다는 것.
우리나라는 아직 감염자가 많지 않은 1단계 상태로, 확인된 감염자 다수가 남성 동성애자로 알려져있다. 이는 국내 감염이 대부분 이성간 감염이라는 보건당국의 발표와는 상반된 내용으로, 동성애가 금기시되는 상황에서 감염자들이 보건소 직원에게 동성애 사실을 숨기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서울 소재 종합병원의 에이즈 진료 담당 감염내과전문의는 "우리나라는 감염자 가운데는 양성애자들이 많아 급속하게 3단계 이상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도움말: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오명돈 교수, 국립의료원 감염내과전문의 방지환)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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