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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류세 인하 거부' 정부 논리는..

입력 : 2007.11.13 14:50

"오일쇼크때보다 충격 크지않다"


정부가 정치권의 끈질긴 요구에도 불구하고 일괄적인 유류세 인하를 거부하고 저소득층의 부담을 덜어주는 등의 내용을 담은 고유가대책을 내놨다.

정부는 유가 상승이 최근 경기 회복세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기업과 서민들의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소득증가 등에 힘입어 과거 오일쇼크 때만큼 충격이 크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따라서 정부는 최근 유가상승에도 불구하고 성장률 전망 등을 수정할 단계는 아니며 올해 물가전망도 당초 예상했던 수준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 "성장 전망 수정할 단계 아니다"

정부는 일단 최근의 유가 상승이 최근 우리 경제의 회복세에 영향을 미칠 소지가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유가 상승은 우리나라와 같은 석유수입국의 가처분소득 감소를 통해 소비·투자를 위축시키고 이는 성장세 둔화로 이어진다.

아울러 석유제품의 가격상승은 물가상승과 경상수지 악화를 불러오고, 특히 교역조건이 악화되면 실질 국내총생산(GDP)과 국민총소득(GNI) 간 괴리를 유발해 체감경기 부진을 불러올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정부의 거시경제모형 분석에 따르면 유가가 10% 상승하면 수입단가가 1.8% 상승해 교역조건(수출단가/수입단가)은 1.8%포인트 악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역조건이 1%포인트 악화되면 GDP가 1%포인트 증가하더라도 실질소득은 0.47%포인트만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정부는 그러나 우리 경제구조의 변화 등을 감안할 때 실제 고유가가 미치는 영향은 모형에 의한 분석보다 크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우선 그동안 경제규모와 소득이 증가하고 에너지효율성 등이 개선되는 혁신형 경제로 발전해 유가 상승의 충격 흡수능력이 향상됐고, 과거 오일쇼크 당시와 달리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아 우리 수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도 아직 나타나고 있지 않다는 설명이다.

조원동 재경부 차관보는 "현재로서는 성장률 전망을 수정할 단계는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면서 "다만 대내외 여건을 면밀히 검토해 연말 또는 연초에 다시 성장률 전망치를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물가와 관련해서도 정부는 유가 상승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석유제품, 광열.교통 관련 공공요금을 중심으로 상승압력이 작용할 수 있지만, 최근 유가 상승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력이 약화돼 올해 연간으로 소비자 물가는 당초 예상했던 2.5% 내외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내년 경상수지 흑자폭 역시 올해(50억달러 내외)에 비해 축소될 수는 있지만 고유가가 지속되면 원유수입물량이 감소해 적자요인이 완화되고, 환율 하락으로 인해 서비스수지 적자 추세가 개선되면서 전체적으로 균형 또는 소폭의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 판단의 근거가 현실과 동떨어진 내용이 있어 실제 우리 경제가 받는 영향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 경제와 관련해 최근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4.4분기 경제성장이 현저하게 둔화될 것이라며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재경부는 발표자료를 통해 "미국의 분기별 경제성장률이 점차 호전되고 있다"는 전혀 상반된 인식을 드러냈다.

아울러 글로벌 물가 안정에 기여해온 중국에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가시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경부는 "신흥국 저가물품 수입증가로 물가상승 압력이 완화되는 등 최근 유가 상승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력은 약화되고 있다"고만 밝혔다.

◇ 유가전망 유리한 것만 골라

재경부는 이날 배포한 고유가 대책 참고자료에서 "유가가 100달러대(두바이유 기준)를 장기간 상회하는 현상이 지속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전망은 다분히 '유류세 일괄인하 불가'에 유리한 근거를 찾는데 초점이 맞춰졌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재경부는 유가를 전망할 때 해외 분석기관의 자료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날 발표한 참고자료에서는 분석기관의 최근 자료 대신 1개월 전의 자료를 제시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6일 내년 서부 텍사스 중질유(WTI) 평균 가격을 기준 유가 시나리오 하에서 79.92달러로 전망해 지난달 10일 내놓은 연평균 전망치 73.50달러에 비해 6달러 이상 높였으나 재경부 자료에는 지난달 자료만 소개했다.

또 재경부는 유가전망시 주로 참고하는 케임브리지 에너지연구소(CERA)의 분석도 자료에 싣지 않았다.

CERA는 6일 중동산 두바이유의 내년 평균가격이 현재보다 큰 수급상 장애가 발생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평균 배럴당 70.56달러가 될 것으로 전망하면서 9월 하순에 발표한 63.50달러에서 대폭 상향조정했다.

CERA는 특히 공급 부족이 발생하는 고유가 시나리오 하에서는 내년 3.4분기와 4.4분기에는 각각 101.50달러, 100.50달러까지 치솟아 연 평균 99.50달러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아울러 경제연구소나 언론 등에서 '국제유가 100달러 시대'가 코앞에 닥쳤다고 언급할 때는 WTI 가격을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재경부는 WTI보다 배럴당 약 10달러 정도 낮은 두바이유를 기준으로 "100달러를 장기간 상회하는 현상이 지속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라고 밝혔다.

재경부는 유류세가 종량세로 부과되면서 유가가 오르더라도 소비자부담이 다소 완화되는 결과가 나타났다며 고율의 유류세 필요성을 강조하는 엉뚱한 논리를 내세웠다.

유가가 오르면 휘발유 가격 대비 휘발유 관련 세금은 종량세 구조이기 때문에 비중이 낮아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세액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소비자부담에는 중립적이다.

또 휘발유에 붙는 부가가치세는 종가세이기 때문에 유가상승과 세금의 관계를 엄밀히 따지자면 소비자의 부담을 다소 가중시킨다.

아울러 재경부는 7월부터 2차 에너지세제 개편으로 유류세가 올라 가격이 높아진 경유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 유가 10%오르면 영업이익률 0.2%포인트↓

하지만 정부도 최근의 유가 상승으로 인해 기업들의 수익성이 악화되고 저소득층 서민들의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는 점은 인정했다.

지금은 기업의 자체적인 비용절감 노력을 통해 유가상승의 충격을 흡수할 수 있을 만한 상황이지만 상승세가 지속되면 대응력이 취약한 중소기업 등을 중심으로 적자를 내는 기업들이 늘어날 것이라는 진단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외부감사 대상 기업들을 대상으로 추정한 결과 유가가 10% 오르면 이들 기업의 영업이익률은 0.2%포인트 하락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62달러선이었던 유가가 90달러로 상승하면 대기업중 적자기업의 비중은 20.2%에서 26.2%로 높아지지만 중소기업중 적자기업의 비중은 27.0%에서 31.3%로 상승하는 등 중소기업들이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으로 추산됐다.

또 유가가 120달러로 올라갈 경우에는 대기업중 31.2%, 중소기업중 35.1%는 적자를 면치 못할 것으로 전망됐다.

특히 기름을 많이 사용하는 운수.보관업의 경우 유가가 연평균 90달러로 오르면 대기업의 52.1%, 중소기업의 51.9%가 적자를 내는 등 운수.보관업과 석유화학 업종의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유가상승으로 인한 광열.교통비 지출 증가는 저소득층의 가계에도 상당한 부담을 줄 전망이다.

지난해 가계소득 대비 광열.교통비 지출수준은 10.0% 수준을 유지했으나 소득 1분위 계층은 15%로 높아지는 것으로 추정되며, 유가가 100달러에 이르면 이 비중이 16.3%에 달해 월평균 3만 4천 원을 추가 부담해야 하는 등 과거 오일쇼크 때와 비슷한 수준의 부담이 발생한다는 계산이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