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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 파프리카 - 11월 첫째주 개봉영화

남상석

입력 : 2007.11.01 13:58


가을이 깊어가면서 동시에 겨울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출근길은 바람이 세게 불어 코가 시릴 정도더군요. 두꺼운 코트와 머플러에 마스크까지 쓴 중무장 세력들이 거리를 점령하기 시작했습니다. 몇 년 전 미국인 친구가 한 겨울에 남녀노소 흰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서울 거리 풍경이 생소하다며 왜 마스크 쓴 사람이 많은가하고 질문하기에 짧은 영어로 길게 설명해주기 귀찮아 '저 사람들 다 감기 환자야!'라고 대답해 줬던 기억이 납니다. 극장가에서는 [바르게 살자]의 뒷심이 제법 강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나란히 개봉한 [궁녀]와 각축을 벌이다 1위를 다시 탈환했습니다. 이번 주에는 또 한국영화 [식객]이 도전장을 던집니다.

식객(12세 관람가)

허영만의 신문 연재만화를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제작사의 어려운 사정이 겹치면서 촬영이 길어졌고 완성 후에도 개봉이 자꾸 늦춰지는 바람에 영화판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많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완성품은 그리 걱정할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만화와 가장 다른 점은 다양한 인물과 에피소드의 가지들을 쳐내고 성찬(김강우)과 봉주(임원희), 두 젊은 요리사의 대결로 압축한 점입니다. 사라졌던 조선말 대령숙수의 칼을 차지하기 위한 요리대회에서 두 요리사가 물러설 수 없는 대결을 펼치고 그 과정에서 과거의 이야기를 돌아보는 구조입니다. 후반부로 가면서 긴장도가 떨어지는 등 전체적인 짜임새는 그리 만족스럽지 않지만 각각의 에피소드들이 상당히 재미있고 임원희가 펼쳐보이는 만화처럼 과장된 코믹연기와 두 사람의 대결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는 VJ역의 이하나의 재치넘치는 연기도 주목할 만합니다. 결말부의 주제와 교훈이 상당히 교육적인데다 쉽고 친절하고 재미있어서 중학생 단체관람 영화 정도로 딱 이라는 생각입니다. 펄떡거리는 황복을 식칼로 해체하는 장면이나 소 잡는 장면은 생생함 덕에 오히려 채식주의자를 양산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도...(성찬이 자신이 집에서 키우던 소를 잡는 시퀀스에서는 과거의 사연과 현재의 애타는 이별을 잘 그려서 그런지 많은 여성관객들이 눈물을 흘리더군요. 그런데 꼭 그래야 했을까하는 의문이 듭니다.)

파프리카(15세 관람가)

한국에서는 이명세 감독이 꿈과 환상의 세계를 인공미 가득한 실사영화로 풀어놓고 일본에서는 곤 사토시 감독이 애니메이션으로 비슷한 일을 해냅니다. 지난해 만들어진 [파프리카]가 시기적으로는 앞서는군요. 'DC미니'라는 새로운 기계가 개발되는데 이 기계를 이용하면 다른 사람의 꿈속에 들어갔다 나왔다 할 수 있다는데 아직 품질인증을 받지 못한 상태인데 이 기계가 도난당하면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들을 그렸습니다. 주인공 형사가 서커스에서 범인을 추격하다가 배경이 뭉게지는 첫 시퀀스부터 시각적으로 압도하는 등 꿈과 현실을 넘나들고 자신의 꿈에서 다른 사람의 꿈으로 들어가는 등 꿈속에서 펼쳐지는 여러 장면의 각종 이미지들이 화려하게 잔상을 남깁니다. 영화를 보면서 '역시 일본은 애니메이션의 강국이고, 기술적으로는 엇비슷할지 몰라도 우리나라는 아직 한참 멀었구나!'하는 감탄과 절망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스폰지 배급영화로 중앙시네마 한 곳에서 단관 개봉하지만 발품 팔아 보아도 아깝지 않을 영화 같네요.

킹덤(청소년 관람불가)

[히트]에서 고독한 중년 남성들의 드라이한 총격 액션을 실감나게 보여줬던 마이클 만 감독이 제작을 맡았다고 보도자료 표지에 제일 큰 글씨로 강조되어 있었습니다. 전반부의 폭탄테러와 후반부 고속도로 총격전은 그럭저럭 봐줄만 한 총격 액션 영화인데요. 주제가 민감한 중동 테러라는 게 문제입니다. 사우디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석유자본 종사자들의 집단 거주 지역에서 연쇄 폭탄테러가 발생하고 FBI 수사관들이 외교관례를 무시하고 직접 날아가 수사를 벌입니다. 나쁜 사우디 테러범도 있고 FBI 요원과 인간적인 교감을 나누는 착한 사우디 경찰도 나오고 어마어마한 재력과 권력을 자랑하는 사우디 왕자도 나옵니다. '동료를 잃은 제이미 폭스와 죽어가는 테러리스트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남긴 말이 있는데 그 내용이 똑같다'로 끝을 맺는데 그 주제는 반전평화 내지는 반테러입니다. 끔찍하게 폭탄 터뜨리고 신나는 총격전으로 서로 죽이는 거 보여주는 단순 오락영화로만 평가받기는 싫었던 모양인데, 영 어색하더군요.

블랙달리아(청소년 관람불가)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참 편차가 심합니다. 걸작이나 흥행작도 있지만 졸작에 가까운 작품도 가끔씩 내놓는데 이번 [블랙달리아]도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영화입니다. 베티라는 미모의 신인 여배우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두 형사의 이야기로 LA를 욕망과 음모로 점철된 악의 도시로 묘사하는 음울한 분위기까지는 좋은데 리 형사의 강박증의 이유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 팜므파탈로 나오는 힐러리 스왱크는 정말 미스캐스팅의 전형입니다. 베티와 하나도 안 닮았는데다가 자체로 섹시하지도 않기 때문이죠. 조시 하트넷도 마스크와 틀은 참 좋은데 어딘지 어정쩡한 캐릭터로 나오고, 떠오르는 샛별 스칼렛 요한슨의 연기도 로맨틱 코미디 [내니 다이어리]의 가벼운 코믹 연기가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구요. 부분부분 눈에 확 띄는 명장면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스릴러의 기본마저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밖에 올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을 받은 중국영화 [투야의 결혼]과 이준기 주연의 한일 합작영화 [첫 눈]과 숀펜 주연의 정치극 [올 더 킹즈 맨], 에드워드 노튼 주연의 로맨스 영화 [다운 인 더 밸리]등이 개봉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