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연휴를 전후해 2주 동안 개봉영화 소식을 전해드리지 못했네요. 추석연휴 극장가에서는 예년과 같은 특수는 없었습니다. '큰 거 한방'이 없고 [사랑], [본 얼티메이텀], [권순분 여사...], [즐거운 인생] 등이 관객을 비교적 고르게 나누어 차지했습니다. 한가지 흥미로운 사항은 [사랑]은 서울보다는 지방 관객들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고, 서울에서는 [본 얼티메이텀]이 더 많이 사랑받았다는 점입니다. 글쎄요. 서울과 지방 사이에 정서적 차이가 존재하는 건지 잘 모르겠네요. 자 그럼 이번주 개봉영화 둘러보겠습니다.
행복(감독:허진호, 주연:황정민, 임수정, 12세 관람가)
허진호 감독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봄날은 간다]에서 순진 청년 유지태가 여우처녀 이영애에게 던진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하는 대사입니다. 사랑하고 이별했던 경험을 가진 모든 청춘남녀들의 전폭적인 공감과 지지를 받았었죠. 저도 그때 그런 무리에 끼어있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쳇! 사랑이 변하지. 그럼 안 변하냐? 얼른 정신차리고 생업에 복귀해라"라고 충고할 정도가 되었네요.
술집 사장으로 퇴폐 유흥문화의 한복판에서 별로 즐기지도 않으면서 방탕한 생활에 젖어있던 영수(황정민)는 간경변 진단까지 받자 애인 수연(공효진)에게 이별을 통보하고 모든 것을 정리하고 시골 깊숙한 곳의 요양원으로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폐농양 환자로 8년째 투병하면서 요양원 일을 거들고 있는 은희(임수정)를 만납니다. 처음에는 은희가 먼저 적극적으로 호감을 보이고 영수도 은희의 맑은 모습에 마음이 끌려 둘은 사랑에 빠지고 요양원을 나와 호젓한 시골집을 얻어 둘만의 살림을 차립니다. 하지만 영수는 어렵게 끊은 술담배를 비롯한 세상의 유혹, 더 정확하게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돌아온 서울의 향수에 이끌려 둘의 애정전선에는 작은 금이 생기고 이 금들이 점점 길어지고 많아지는 미세한 파열음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허 감독은 영화라는 매체가 자칫하면 놓쳐버리기 쉬운 인간을 둘러싼 자연의 미묘한 모습을 잘 포착합니다. '봄날은 간다'에서는 유지태의 직업을 아예 사운드 엔지니어로 설정해 자연의 소리를 잘 보여주고 들려줬습니다. '행복'에서도 주인공 남녀의 사랑 못지않게 그 배경으로 나오는 시골 요양원 주변의 숲과 바람과 햇살을 중요하게 잡아냅니다. '너는 내 운명'에서 순정남을 연기했던 황정민은 이번에는 나약하고 비겁하기까지 한 남자로 변신합니다. 황정민의 연기력은 은희와 다시 만나는 병원 장면에서 유리창을 통해 비추는 그의 눈빛과 표정 연기에서 가장 큰 빛을 발합니다.
소녀티를 벗어난 임수정은 허 감독과 같이 작업한 심은하, 이영애의 뒤를 이을만합니다. 대표적인 아줌마 패션인 몸빼 바지도 임수정의 청순한 매력을 가리지 못하더군요. 둘만의 보금자리를 꾸민 아기자기한 소품들과 은희의 옷은 마치 동화속에 나오는 것처럼 예쁩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떠날때 어쩔 수 없다고 합리화시켜보려 하지만 마음 구석에 자리잡은 죄의식 때문에 자신을 학대하고 경멸하는 영수의 모습은 동네 아저씨가 담배를 권하자 '저 담배 힘들게 끊었거든요.' 하면서 무심코 담배를 받아드는 우유부단함과 맞닿아 있습니다.
허진호 감독의 예민한 감성은 여전하지만 그 날끝은 다소 무디어진 느낌입니다. 사랑은 아름답기만 하다는 멜로영화의 공식에서 한발 더 나아가 그 끝을 보여줌으로써 자연의 섭리속에 놓여진 인생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해주지만 아름답고 깔끔한 멜로 영화를 기대하는 일반 관객들에게는 오히려 불편한 요소로 작용할 것 같네요.
러시아워3(감독:브랫 레트너, 주연:성룡, 크리스 터커, 12세 관람가)
성룡이 쉰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맹활약을 펼치는 액션 오락영화입니다. 높은 톤의 목소리로 계속 주절거리는 크리스 터커가 역시 성룡의 할리우드 파트너로 코미디를 담당합니다. 어김없이 국제적인 악당의 음모를 알아내고 찾아가서 목숨 건 대결을 펼친다는 빤한 줄거리이지만 볼거리도 많고 재미 있는 속편입니다. 에펠탑 꼭대기에서 시작해 독특한 낙하산으로 땅까지 내려오는 마지막 액션 장면은 적당한 스릴도 갖추었습니다. 한가지 옥의 티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파리공항에서 만나 아내에게 뺨까지 맞으면서 이들을 도와주는 프랑스인 택시 운전사 캐릭터입니다. 자칫하면 미국과 프랑스간의 외교문제로 비화할 수 있겠더군요. ㅋㅋ 엔딩 크레딧에 등장하는 성룡 영화 특유의 보너스, NG 장면도 어김없이 등장하는데 액션 장면의 NG 보다는 성룡의 서투른 영어 대사 실수가 더 많이 나오네요. 총을 들고 악당들에게 "freeze"라고 외쳐야 하는 장면에서 "Cheese!"하고 나서 멋적게 웃는 성룡, 너무 귀엽습니다. ㅋㅋ
아드레날린24(감독:마크 네브다인, 브라이언 테일러, 주연:제이슨 스테이섬, 18세 관람가)
영국 국가대표 다이빙 선수 출신의 액션배우 제이슨 스테이섬의 매력을 주요 무기로 삼은 액션영화입니다. 독특한 촬영기법, 화면분할과 귀를 따갑게 할 정도의 하드한 음악이 어울려 마치 나이트 클럽에 들어갔다 나온 기분이더군요. 전문킬러인 주인공에게 누군가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주입했고 주인공은 살기 위해서는 몸에서 끊임없이 아드레날린이 나와야 하거나 주사나 약으로 주입해야 합니다. 이 상황이 다른 액션영화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인데 계속 흥분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와플굽는 기계에 손을 굽거나 중인환시리에 애인과 라이브 거시기 쇼를 벌이기도 합니다. '디 워'에서 이무기들이 박살냈던 LA 도심을 이 영화 등장인물들이 또 한번 종횡무진 누비며 혼돈에 빠뜨립니다. 새로운 감각의 영상을 선보이지만 그것이 꼭 다른 영화들이 따라할만한 가치가 있을지는 의문인 18세 등급에 걸맞는 화끈하고 위험한 액션을 보여줍니다.
페이지 터너
프랑스에서 건너온 차가운 스릴러 드라마입니다. 한석봉 어머니가 떡을 썰고 석봉이는 글을 쓰듯이, 아버지는 푸줏간에서 고기를 썰고 딸 멜라니는 열심히 피아노를 연습합니다. 부모의 교육열이 있고 멜라니도 그에 상응하는 재능과 열정까지 갖췄습니다. 우리나라나 프랑스나 자식 예체능으로 키우려면 돈이 수월찮게 드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멜라니는 기특하게도 어려운 형편에 뒷바라지 해주는 부모의 희생을 잘 알고 있습니다.
드디어 음악학교 입학시험, 멜라니가 차분하게 연주를 해나가는데 심사위원인 유명 피아니스트 아리안의 어수선한 행동 때문에 연주를 망쳐버리고 시험에 낙방하고, 피아노를 접습니다. 자고로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리는 법, 세월이 흘?회? 진입해서 결국 아리안이 연주할 때 악보를 넘겨주는 페이지 터너의 자리까지 깊숙이 침투합니다. 그리고는 이 가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겨줄만한 복수를 차근 차근 실행에 옮깁니다.
복수를 주제로 한 스릴러이지만 자극적이거나 요란하지 않습니다. 차분한 피아노 선율 속에 한적한 시골 별장을 무대로 하기 때문에 그 와중에 작은 사건이나 멜라니의 차가운 눈 빛 한 번이 섬뜩한 분위기 조성에 그만입니다. 다소 밋밋해 보일 수도 있지만 나름대로 감각적인 스릴러라고 생각됩니다. (잘나가는 변호사의 파리에서 25마일 떨어진 곳에 위치한 시골 별장은 방도 많고 숲도 있고, 수영장에 테니스 코트까지 2면을 갖춰 놓았더군요. 흐미...부러버라.)
이밖에 스칼렛 요한슨 주연으로 뉴욕 최상류층의 생활을 보여주는 [내니 다이어리], 반 부시 다큐멘터리인 [딕시 칙스:셧업 앤 싱], 영국 연극무대를 배경으로 한 [스테이지 뷰티]등이 개봉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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