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인 인질 석방합의가 전해진 29일. 미국시간은 28일 오후였습니다.
인질 사태 해결에 대한 미국 반응을 취재하느라 분주한 하루였습니다. 국무부 반응 챙기고 우리 정부 입장 취재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또 한가지, 미국 언론의 반응이 중요했는데, 정작 미 언론은 엉뚱한 '사건'을 보도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사건'의 제목은 '난 당신이 화장실에서 한 일을 알고 있다'였습니다.
왠 화장실? 그것도 공항 공중 화장실? 인질 석방 기사를 쓰면서도, 방송을 하면서도 하루종일 계속된 '화장실 사건' 보도를 힐끔힐끔 쳐다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건의 장본인은 래리 크레이그 상원의원(62세)입니다. 아이다호 출신 공화당 상원의원입니다.
10년 동안 3선 연임의 중진이죠. 동성간 결혼에 반대하고 범죄 피해자가 된 동성애자에 대한 특별보호 조치에도 반대해 온 보수주의자입니다.
'화장실 사건'은 지난 6월 11일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공항 화장실로 거슬러갑니다.
화장실 문틈으로 안에 들어있는 남성(남자 화장실이니까 당연히 남자였겠죠)을 한참 들여다본 크레이그 의원은 바로 옆칸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습니다.
여기서 잠깐, 미국 화장실 구조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미국에서 살면서 취재하고 있지만, 아직도 미국 화장실은 틈이 그리 넓은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문과 문틀의 틈이 손가락 정도는 쑥 들어갈 정도로 넓습니다.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죠. 안에 들어가 볼일을 볼라면 밖에서 누가 쳐다볼 것 같아 불안합니다. 우리 화장실 문은 빈틈이 없잖습니까? 칸막이는 더하죠.
10센티미터 이상 띄워놓고 칸막이를 설치하기 때문에 밖이나 옆에서 누가 앉아있는지 다 보입니다.
사실상 누가 있는지 노크를 할 필요가 없을 정도입니다.
민망했지만, 궁금하면 물어봐야하는 직업상, 미국 사람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왜 이렇게 안이 보이게 화장실 시공을 하나요?" 다들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모르겠다는군요. 한 두 사람이 "화장실 안에서 어떤 범죄가 일어날지도 모르고, 누가 있는지 모르는 것 보다 있는 걸 미리 알 수 있는게 더 좋지 않나요?"라고 반문하더군요.
다시 크레이그 의원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의원은 화장실 문을 닫고 가방을 문고리에 걸었습니다.
이것은 보통 화장실에서 짝을 찾는 게이(남성 동성애자)들의 전형적인 '작업' 수순입니다.
그리고 오른쪽 발바닥을 톡톡 두드리다 칸막이 아래 공간으로 발을 옮겨 옆 칸에 있는 남자의 왼쪽 발에 들이 밀었습니다. 다음엔 손으로 칸막이 아랫부분을 쓰다듬었습니다.
모두 게이들의 전형적인 '화장실 구애' 행동이었다는 것이 미국 언론의 보도내용이었습니다.
문제는 옆 칸에 앉아있던 남성이 사복경찰관이었다는 것.
미니애폴리스 공항 화장실에 불미스런 행동들이 자주 일어난다는 신고가 들어오자 경찰이 잠복근무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다 대고 전형적인 게이들의 '구애 행동'을 했으니...
경찰관은 당연히 크레이그 의원을 체포했습니다. 의원은 45분 동안 조사를 받고 풀려났습니다.
경찰관은 조서에 크레이그 의원이 상원의원 명함을 건넸다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고 기록했습니다.
크레이그 의원은 화장실 바닥에 떨어진 휴지를 줍기 위해 그런 행동을 했다고 변명했습니다.
하지만 경찰관은 바닥에 떨어진 휴지 같은 것은 없었다고 조서에서 분명히 밝혔습니다.
궁지에 몰린 크레이그 의원은 지난 8일 사건에 대한 유죄를 인정하고 575달러의 벌금을 냈습니다.
감독관을 배치하지 않는 보호관찰 1년 처분도 받았습니다.
사건은 이대로 마무리되는 듯 했지만, 이번엔 언론이 문제였습니다.
미 의회 전문지 '롤 콜'이 제보를 받고 사건을 보도한 것입니다. 워싱턴 포스트와 CNN 등 유력 신문방송이 들끓기 시작했습니다. 의회 윤리위원회는 진상조사에 착수했습니다.
파문이 확산되자 크레이크 의원은 직접 해명에 나섰습니다.
기자회견장에는 부인을 대동했습니다. 크레이크 의원의 기자회견 내용은 이렇습니다.
"나는 게이가 아니고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다. 사건 당시 경찰관이 내 행동을 오해했다. 빨리 일을 덮고 싶어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법률자문을 받지 않고 유죄를 인정한 것은 잘못된 결정이었다. 변호사에게 이 문제에 대한 검토를 정식으로 의뢰했다. 아내와 가족을 사랑하며 유권자에게 사과한다"
크레이그 의원은 언론이 마녀사냥식으로 사건을 보도하고 있다며 의원직을 유지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언론은 그의 일거수 일투족과 말 한마디 한마디를 반복해서 보도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이 방송에 나와 크레이그 의원 진술을 '해부'하고 있습니다.
대체로 반응은 '말이 잘 안된다'는 것입니다. 유죄를 인정해놓고, 이제와서 '난 잘못한게 없다'고 강변하는 것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백번 양보해 크레이그 의원이 정말 억울하더라도 짓지도 않은 죄를 인정하는 오판을 했다면, 국가의 대사를 논하는 상원의원으로서 심각한 결격사유라는 것입니다.
어째든 크레이그 의원이 자신에 대한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나섬에 따라 '화장실 사건'의 진상에 대한 정밀조사는 불가피해졌습니다. 지저분한 냄새가 나는 '화장실 사건'의 진상을 둘러싼 미국 언론의 취재 경쟁도 치열해질 전망입니다. 드넓은 미국땅에선 별일이 다 생깁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