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추뼈 수출로 수입중단 위기에까지 몰렸던 미 국산 쇠고기가 우리 정부의 검역 재개 결정으로 기사회생했다.
미국 입장에서는 반가운 소식이지만, 국내에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등 한·미간 정치, 통상 현안에 수입 검역 원칙이 끌려간 게 아니냐는 비난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수입재개 결정으로 미국산 쇠고기 개방 폭을 확대하기 위한 '수입 위험 평가(import risk analysis)' 작업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 미 "박스 교체 과정서 등뼈 들어갔다"
농림부에 따르면 미국측은 이번 등뼈 수출에 대해 "내용물 표시·무게에 따라 수출·내수용을 구분하는 구역에서 포장기계 고장으로 상자들을 섞어 쌓다 박스 일부가 파손됐고, 이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교육받지 못한 종업원들이 부주의로 수출용 상자에 T본 스테이크용 쇠고기를 잘못 담았다"고 해명했다.
지난 5~6월 갈비통뼈, 내수용 쇠고기 수출 사건 당시와 마찬가지로 검역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단순한 '실수'라는 설명이다.
아울러 미국측은 재발 방지 대책으로 ▲ 상자 포장 전 내용물 육안 검사원 배치 ▲ 컴퓨터 박스 무게 허용범위 축소로 뼈 포함 여부 식별 강화 ▲ 육안 검사 통관 전까지 한국 수출용 라벨 부착 금지 등을 제시했다.
◇ 일본은 6개월 수입 중단
그러나 SRM 검출이라는 중대한 수입위생조건 위반 사안에 대해 우리 검역당국이 현장조사 한 번 하지않고 미국측의 일방적 문서상 해명을 근거로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검역 중단 조치를 풀어준 것에 대한 비난도 적지 않다.
또 애초에 이달 초 '수입 중단' 사유인 광우병위험물질(SRM)을 확인하고도 정부의 제재 수위가 '검역 중단'에 그친 점이나, 미국에 보름 넘게 해명 시간을 준 점 등은 모두 국내외 법률상 근거가 명확치않다는 지적도 있다.
비슷한 사례에 대한 일본의 대응과 비교하면 이 같은 비판은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
지난해 1월 일본에서 똑같이 미국산 송아지 고기에서 척추뼈가 발견됐을 당시 일본 정부는 즉시 수입 중단 조치를 취했고, 이후 6개월동안 미국이 재발 방지책을 제시하고 일본이 이를 점검한 뒤에야 수입 금지를 해제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현재까지 미국은 일본 수출용 쇠고기를 매우 구체적인 도축 매뉴얼 등 철저한 수출 증명(EV)프로그램에 따라 생산하고 있다.
반면 우리 검역당국은 작년말 이후 10여차례나 명백한 수입위생조건 위반인 등뼈, 내수용 쇠고기, 갈비통뼈 등을 확인하고도 필요 이상으로 유연하게 대처하고 국민에게 공개하지 않는 등 사안 축소에만 급급하다 오히려 더 큰 한미간 검역 마찰을 불렀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은 이날 브리핑 직후 같은 장소에서 발표한 성명에서 "이번 검역 중단 해제 결정은 전날 오전 권오규 부총리 주재로 열린 관계부처 장관회의에서 결정된 것"이라며 "이는 한미FTA를 고려해 국민 건강을 무시한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강 의원은 지난 10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재개된 이후 뼛조각 검출에 따른 반송을 포함해 모두 163건의 수입위생조건 위반 사례가 있었지만 검역당국이 이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다며 의혹 해소를 위해 감사청구안을 제출한 상태다.
◇ SRM 또 발견되도 검역만 다시 중지
이날 검역당국이 밝힌 향후 검역 방침도 논란거리다.
농림부는 앞으로 통뼈가 다시 발견되면 해당 작업장에 대해서는 새로운 수입위생조건이 발효될 때까지 수출 선적을 중지시키고, 등뼈 등 SRM이 또 검출되면 해당 작업장의 수출 승인 취소와 함 께 미국산 쇠고기 검역을 다시 전면 중단한다고 밝혔다.
결국 다시 등뼈가 나와도 '수입 중단' 가능성은 없고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검역만 보류시키겠다는 점을 공식적으로 천명한 셈이다.
더구나 앞으로는 검역이 중단되 더라도 수입위험평가 절차를 그대로 진행시켜 미국과 새로운 위생조건 협의를 계속 한다는 것이 농림부의 기본 입장이어서, 사실상 새로운 위생조건이 마련될 때까지의 '과도기'에는 현행 수입위생조건을 엄격하게 적용할 뜻이 없는 것으로 해석된다.
농림부에 따르면 지난 1일 검역 중단 조치로 현재 검역 창고에 쌓여있는 미국산 쇠고기는 모두 6천830t 규모다.
이 가운데는 등뼈나 갈비통뼈 수출로 승인이 취소되 거나 수출선적이 중지된 카길사 소속 3개 등 미국내 5개 작업장에서 생산된 물량도 포함돼있다.
따라서 27일 검역이 다시 시작되면 또 갈비나 등뼈가 발견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검역 작업이 재개된 지 며칠만에 다시 등뼈 등 SRM이 발견돼 검역이 중단되고, 이 가운데 미국과의 새로운 수입위생조건 협상은 계속 진행되는 '묘한' 상황이 연출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 추석전 美 갈비 수입 물 건너가
정부가 이날 검역 중단 해제 결정과 함께 새로운 수입위생 조건 제정을 위한 수입위험평가도 재개한다고 밝힘에 따라 미국산 갈비 수입도 코 앞으로 다가왔다.
미국은 지난 5월 OIE로부터 '광우병 위험 통제국' 판정을 받은 뒤 이를 근거로 같은 달 25일 곧바로 우리나라에 현행 '30개월 미만, 살코기만'이라는 수입 위생조건을 바꿔달라고 공식 요청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농림부 등 우리 검역당국은 이후 세계무역기구(WTO)가 수입국의 권리로 보장한 8단계의 '수입 위험 평가' 절차를 통해 개방폭 확대의 타당성을 검토해 왔고, 지난달 초 8단계 가운데 4단계인 가축위생 현지 실태 조사까지 마쳤다.
검역 당국은 같은 달 25일 5단계격인 가축방역협의회를 열어 정부의 수입조건 개정안을 확정할 계획이었으나, 첫번째 협의회에서 미국측의 잦은 위생조건 위반을 성토하는 의견이 많아 의견 수렴 절차를 뒤로 미룬 상태다.
일단 정부가 척추, 갈비통뼈 수출 등 잦은 현행 수입위생조건 위반에 대한 미국 측의 해명을 '검역 재개' 결정을 통해 수용한만큼, 조만간 가축방역협의회 일정도 다시 잡힐 것으로 예상된다.
두 번째 협의에서 정부 입장이 정리될 경우, 이르면 다 음달 6단계 절차인 한미 수입위생조건 개정 협의가 시작될 전망이다.
미국측은 기본적으로 "OIE 규정대로 하자"는 입장인만큼, 일부 SRM을 빼고는 모든 수입에 연령·부위 제한을 두지 말라고 공세를 펼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현행 OIE 지침에 따르면 미국과 같은 '광우병통제국'에서 생산된 쇠고기는 원칙적으로 교역에서 연령과 부위에 제한을 받지 않고, 소의 월령이 30개월 미만이면 SRM 가운데 두개골이나 척추 등도 제거할 의무가 없다.
이에 우리 정부는 현실적으로 OIE 규정상 갈비 등 일반 뼈 수입까지는 막기 어려운만큼, '30개월 미만'이라는 연령 제한이나 모든 종류의 SRM 제거 등을 관철하는데 협상력을 집중할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앞으로 아무리 수입위생조건 협상과 수입위험평가 절차가 초고속으로 진행된다 해도, 당초 "원활하게 진행되면 9월께 마무리될 것"이라던 권오규 경제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의 전망은 실현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9월 중순까지 협상을 끝내고 새로운 수입위생조건이 체결되더라도 국내 고시 기간과 새로운 검역 기준에 맞춘 미국의 수출 준비, 수송 기간 등을 감안할 때 미국산 갈비가 들어오는 시점은 10월 이후로 넘어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상길 농림부 축산국장도 "추석 전 미국산 갈비가 들어올 확률은 없다"고 단언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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