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이 언론의 취재-보도 방법까지 정할 수는 없다
현 정부와 언론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정부 나름대로 언론이 제맘대로 악의적으로 정부를 비판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언론은 마찬가지로 정부가 권력을 자신에 대해 비판적인 언론에 대한 공격에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사실일까요. 국민들 입장에서는 헷갈릴만도 한 일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제가 뭐라고 하면 혹시 기자니까 언론 쪽에서 하는 말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럼 먼저 제가 생각하는, 현재의 전쟁에서 언론의 잘못에 대해서 얘기를 해보죠.
우리 언론은 지지 후보, 지지 정당을 밝히지 않습니다. 전에도 썼지만 우리 언론은 철저히 중립을 전제하고 기사를 씁니다. 문제의 발단은 거기에 있습니다. 중립적이지 않으면서, 사실은 특정한 정치적, 사상적 경향성을 가지고,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있으면서 마치 절대 중립적 위치에 있는 것처럼 기사를 쓴다는 겁니다.
그러다보니 분명히 논란이 가능한 상황에서 어느 한 쪽을 '주장'하는데 언론이라는 무기를 씁니다. 더구나 중립을 가장해서. "우리의 생각은 이렇게 당신과 다르다"라고 의견을 의견으로 쓰는 게 아니라 "우리가 취재해보니 당신의 생각은 잘못됐다"는 식으로, 때로는 전문가 의견까지 들어가며 기사를 씁니다. 의견은 의견으로 쓰면 되는데 아직 그게 잘 안 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이른바 보수적 언론만 그런 게 아닙니다. 진보적이라는 언론도 마찬가지 행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어느 한 쪽이든 확실히 편들지 않으면 마치 언론이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이렇다보니 정말 중립적으로 상황을 보고 기사를 쓰는 사람만 바보가 되는 분위기도 생겼습니다. 뻔히 왜 그렇게 기사를 쓰는지가 보이는데 마치 사회 정의를 위해 꼭 해야만 하는 일을 한 것처럼 강변하거나, 혹은 자신만이 정의의 대변자인 것처럼 무게를 잡기도 합니다. 안타까운 장면들입니다.
기사를 쓰는 것만이 아니라 때로는 직접 정치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취재를 위해서는 대화가 필수적입니다. 정치든, 업계든, 법조든, 어느 분야를 취재하든 취재원과의 관계 형성과 유지를 위한 대화는 불가피합니다. 그러다보니 사실상 고민도 들어주고 의견도 얘기하고, 맞장구도 쳐주고 떠보기도 하고, 그런 관계가 진행됩니다. 때로는 단순한 취재원과 기자의 관계를 넘어 인간적으로 친해지기도 하고 드물지만 인간적으로 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어떤 의도를 가지고 참모 노릇을 해주거나 아예 특정한 결과를 가져오기 위한 활동을 하는 것, 이미 하나의 정치 참여자가 되어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런 사람들이 쓰는 기사가 정부에 대한 객관적인 감시 활동이라고 보기 어렵게 되는 겁니다. 모든 일에 의도가 있겠습니다만 정말 자신의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강화하기 위한 의도에서 쓰는 기사를 정부가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리가 없습니다.
이런 언론의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하필 이 정부에서 언론과의 전쟁을 시작했을까요. 정치인이 되기 전부터, 정치인이 되고 난 이후에도, 그리고 대통령이 된 뒤에도 노대통령은 소수파였습니다. 언론과의 밀월 관계를 기대했던 대통령으로서는 섭섭하기 짝이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권력기관에 대한 탈권력화를 중요한 국정 과제로 삼은 대통령과 그 참모들이 언론을 선출되지 않은 권력으로 보고 언론 권력을 제한하는 것을 중요 과제로 삼은 겁니다. 초기에는 자신들을 지지하는 언론과 그렇지 않은 언론을 나누고 반대하는 언론들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분리 대응 방식을 적용했습니다. 때문에 조중동이라는 아이콘이 조동문으로 바뀌기도 했지요.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과의 관계 속에서 때로는 보수 아이콘에 중앙일보가 끼었다가 빠졌다가 했습니다.
주로 정부에 비판적이었던 메이저, 대형 신문에 비해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던 이른바 마이너 신문들, 지역 신문들에 대한 제도적인 지원이 이뤄졌습니다. 유일한 뉴스 통신사에 대해서도 지원 정책이 나왔습니다. 방송 가운데서는 대체로 민영과 공영을 기준으로 대우가 달랐습니다. 2002년 선거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인정받던 인터넷 언론에 대한 대우도 달라졌습니다. 때문에 인터넷 언론의 영향력이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여기에 만족하지 못한 정부는 직접 언론이 되고자 했습니다. 국정 브리핑이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어 청와대는 물론 정부 소속 공직자들이 의견을 발표하고 기존의 언론 보도를 공박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국정 홍보를 위한 케이블 채널인 KTV의 활동도 계속 강화해 왔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은 물론 청와대의 참모들은 이 KTV를 '언론'이라고 이해합니다. 그냥 홍보라고 한다면 좋습니다. 그러나 이걸 굳이 '언론'이라고 말한다면, 제가 이해하는 선에서는 이것은 '관제 언론'일 뿐입니다.
그런데 언론에 대한 공격은 언론인 전반에 대한 공격으로 번졌습니다. 언론인들에 대해서 '소주나 한 잔 사주면서 기사 흥정을 하는 대상'으로 인신 공격한 것에서 한 단계 올라가 직접 기자들이 일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겁니다.
먼저 개방형 브리핑룸을 도입한 겁니다. 기존의 적대적인 언론 환경이 폐쇄적인 기자실을 중심으로 일부 언론들이 담합해서 여론을 독점하기 때문이라는 진단에 근거한 것으로 보입니다. 기존 언론의 저항이 있었지만 인터넷이나 기존에 기자실에 들어가지 못했던 일부 '언론'들은 환영했습니다. 언론과 취재원인 공무원의 접촉을 대폭 제한했습니다. 정부 초기의 일입니다. 브리핑이라는 형식을 국정홍보처가 요구하면서 검사들도 수사 결과 발표를 할 때 멀쩡히 앉아서 얘기 잘 하다가 카메라만 돌아가면 벌떡 일어서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앉아서 발표하는 화면이 나가니까 곧바로 홍보처에서 경고가 날아왔다는 겁니다.
또 각 부처별로 되어 있던 송고실이 몇 개로 통합되면서 기자들은 기존에 취재 사이사이에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개별 부처 공무원들을 만나기도 하던 기지를 잃어버렸습니다. 제가 당시 출입하던 법무부는 경제부처들과 같은 건물을 쓰는데, 기자실은 폐쇄되어 버리고 다른 건물에 있는 사회부처 송고실로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결국 한 번도 그 송고실을 가본 적이 없습니다. 그냥 경제부처 출입하는 기자들의 양해를 얻어 가끔씩 그곳을 눈치껏 쓰고, 되도록 법무부를 가지 않게 됐습니다. 눈치껏 쓴다는 건, ID카드가 없어 송고실 출입이 안 되니 전화해서 같은 회사 동료를 불러내든지 아니면 누군가 들락거릴 때 슬쩍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법무부에서 갑자기 브리핑할 일이 생기면 경제부처들에 양해를 구해 비어있는 브리핑룸을 썼습니다. 배정된 브리핑룸을 찾아서 다른 건물로 찾아다니기도 불편하고, 기자들도 안 가니까요.
그래도, 안 가긴 했지만 별도의 송고실이 있었습니다. 외교부도 별도의 송고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주 출입하는 기자들은 송고실에 자료도 쌓아놓고 업무 공간으로 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취재 선진화 방안이라는 기자실 통폐합 조치가 나온 겁니다. 아예 개별 송고실은 없애고, 기자의 상주 개념을 없애겠다는 겁니다. 또 공무원과의 모든 만남을 공보실을 통해 통제하겠다는 겁니다. 기사 송고 시설을 이리 묶고 저리 묶어서 지금 기자들이 앉아서 기사를 쓰는 자리의 총량은 대충 비슷하게 만들어 놓을테니 지정된 장소로 가서 기사를 쓰라는 겁니다. 브리핑은 통합 브리핑룸에서 계속 하겠지요. 철저하게 '상주' 기자단 개념을 없애겠다는 겁니다.
선진국은 다 그렇게 한다는 겁니다. 조사 결과를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선진국이 다 그렇지도 않고 같은 대통령제인 미국의 경우는 정부의 말과는 달리 이렇게 하지 않습니다. 의원내각제 국가에서는 국회를 중심으로 취재가 이뤄집니다.
문제는 대통령과 그 참모들이 어떻게든 자신들에게 적대적인 언론을 피곤하고 힘들게 만들고 정보를 통제하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언론 환경을 만들기 위해 이런 조치들을 억지로 밀어붙이는 사이에 엉뚱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언론에 대해 권력이 이런 식으로 구체적인 업무 관행까지 마음대로 바꾸는 일이 다른 나라에서도 가능한지 모르겠습니다만, 결과는 단 하나일 뿐입니다. 정보를 가진 쪽이 더욱 제 편할대로 정보의 유통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공무원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알리고 싶은 내용은 마음대로 알립니다. 언론 일반의 정보 접근은 더욱 어려워지니 정부가 입맛대로 정보를 흘릴 경우 언론은 제대로 검증도 하지 못하고 끌려다닐 가능성이 커집니다. 부처별로, 공무원 개인별로, 이른바 '언론 플레이'라는 게 더 활발해집니다.
안 그래도 언론인들로부터의 감시를 불편하게 생각하던 공무원들은 지금 박수를 치고 있습니다. 약한 곳에는 한없이 강하고, 강한 곳에는 한 없이 약하다는 경찰이 드디어 칼을 뽑았습니다. 각 경찰서에 설치돼 있던 모든 기자실을 폐쇄하고 기자들의 상주 취재를 없애기로 한 겁니다. 경찰청 등에 통합 브리핑룸을 만들테니 그곳이나 출입하고 앞으로 수사관들은 공보실 허락 없이는 만나지 못하고 전화도 못하게 한다는 겁니다.
이게 뭘 의미하는지 잘 아실 겁니다. 당장 인권단체에서도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제가 현재 진행중인 정부의 조치가 국민들의 피해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입니다.
언론은 정부의 홍보 기관이 아닙니다. 언론은 정부를 감시하는 곳입니다. 애초에, 이 정부가 이런 식의 정책을 내놓기 시작한 이유로 든 것이 기자들이 사무실을 무단으로 침입해서 일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극히 일부 그런 기자가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만 대부분의 기자들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전화를 해서 약속을 하거나 사무실을 찾았다가 업무 중이면 조용히 물러났습니다. 나름대로 기자들과 공무원들 사이에 취재 방식에 대한 관행이 형성돼 있었습니다.
기자들 개인은 취약합니다. 공무원들은 거대한 권력 구조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그나마 각 부처별로 구성돼 있던 기자단이, 비록 개별 기사를 쓸 때는 치열하게 경쟁을 하면서도 언론 자유에 대한 침해, 언론에 대한 허위 자료 제시나 거짓말, 자료 은폐 등등에 대해 공동으로 대응했습니다. 이것 또한 오랫동안 관행으로 이어져 온 것이었습니다. 꼭 필요한 엠바고를 지키는 것 등이 이런 신사 협정 위에서 이뤄졌습니다. 기자단 가입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등도 그런 관행 속에서 이뤄져 왔습니다. 공무원들 입장에서는 이런 기자단이 싫었을 겁니다. 이것을 해체하고, 같은 건물에 있는 기자실을 없애버리면 언론의 감시 기능은 '혁신적'으로 약화될 겁니다.
언론을 이렇게 해서 현 정부가 얻고자 하는 게 뭔지 전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렇게 일방적으로 지금까지 내려오던 언론의 취재 관행을 물리력을 동원해 흔들고 망가뜨려서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목적과 수단이 얼마나 일치하는 것인지, 그래서 앞으로 나타날 결과는 무엇인지 등에 대해 정말 진지하게 고민해 봤는지 의문입니다. 어느 후배 기자의 말대로 권력의 언론에 대한 어설픈 인식이 기자들을 멀리 몰아내고자 하는 공무원들의 주체할 수 없는 욕망에 불을 붙인 셈입니다.
왜 친노 반노를 떠나 거의 모든 기자들이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기자실 통폐합 조치에 반대하는지를 조금만 생각해 보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미국 헌법 수정 1조가 갖는 의미를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Congress shall make no law respecting an establishment of religion, or prohibiting the free exercise thereof; or abridging the freedom of speech, or of the press; or the right of the people peaceably to assemble, and to petition the Government for a redress of grievances."
붉은 색으로 표시한 부분이 바로 미국 헌법 수정 1조, 즉 First Amendment의 언론의 자유 조항입니다. 의회는 언론 출판의 자유를 침해하는 어떤 법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이런 정신은 미국의 모든 언론 정책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공권력이 나서서 언론을 어떻게 해보겠다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겁니다. 때문에 미국에서는 언론에 대한 지원 정책이나 법률이 없습니다.
왜 미국 헌법이 이처럼 권력이 언론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한 것인지 저는 요즘 우리 정부의 언론 정책을 보면서 깨닫고 있습니다. 권력은, 제 아무리 정당성과 도덕성을 갖고 있더라도 권력일 뿐이고, 그런 점에서 언론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유혹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다음에 개헌을 하려면 우리의 언론 자유에 관한 규정부터 고쳐야 합니다. 다음에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언론 제도 전반을 재검토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 가고 있는 듯 합니다. 현재와 같은 비정상적인 언론 환경, 공권력, 공무원이 마음대로 언론을 휘어잡고 흔드는 이런 상황이 계속되어서는 국민이 입을 피해를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또, 권력은, 자신에 대한 적대적 언론 환경을 이런 식의 언론의 자유에 대한 침해의 정당화 근거로 사용해서도 안 됩니다. 권력은 역시 권력일 뿐입니다. 유한한 권력이 언론 질서를 통째로 재단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위에서 처음에 제가 지적했던 언론의 문제들은 점진적이고 건전한 방법으로, 사회적 합의 속에서 개선되어 가야 하는 것이지 어떤 소명의식으로 똘똘 뭉친 특정 정권, 특정 권력이 마음대로 그림 그려서 해법을 강제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글이 너무 길어져서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한 마디만 더. 언론의 업무 방식, 취재 보도 방식을 권력이 정해주겠다는 것, 그것은 무슨 수식어를 갖다 붙여도 언론 통제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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