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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뉴스>
<앵커>
헤이그 특사 100주년 연속 기획보도. 오늘(13일)은 3명의 특사 가운데 가장 어린 22살의 나이로 열강의 틈새에서 구국활동을 벌였던 청년 외교관 이위종의 삶을 조명합니다.
보도에 송인호 기자입니다.
<기자>
헤이그 특사 4년 뒤인 1911년 5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머물고 있던 이위종은 고국에 있는 어머니에게 편지 한통을 보냅니다.
한일합방 소식을 듣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버지 이범진 공사의 죽음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16년 동안 머나먼 이국땅에서 서로 의지하며 지낸 자신에게 아버지의 죽음은 무엇에도 비유할 수 없는 큰 불행"이라고 절절한 심경을 토로합니다.
[호사카 유지/세종대 교수 : 나라를 상실했기 때문에 그것을 상당히 슬프게 생각해서 자살했다. 그렇지만 오히려 그런것은 자랑스러운, 존경스러운 일이라고 어머니께 말하고 싶은...]
11살 때인 1896년 주미공사로 임명된 아버지를 따라 워싱턴으로 간 이위종은, 17살 때 주프랑스공사관 서기생으로 임명돼 외교관 생활을 시작합니다.
이후 1907년 아버지의 뜻에 따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이준 열사 일행과 합류해 헤이그 특사로 참여합니다.
[이민원/동아역사연구소 소장 : 아들을 철저히 교육시키고 그러면서도 국가관을 심어주고 아주 반듯한 청년으로 성장을 시켰다.]
이위종은 어릴 때부터 익힌 능숙한 불어와 영어로, 헤이그에서의 연설은 물론 해외 언론과의 인터뷰도 도맡았습니다.
[박종효/모스크바대 객원교수: 이위종 씨가 발표를 했는데, 헤이그에는 자유가 있다고 해서 왔다, 민주가 있다고 해서 왔다, 헤이그에서의 활동은 이위종 씨의 입을 통해서 나갔습니다.]
이위종은 아버지의 죽음 이후, 러시아 군에 입대한 뒤 연해주 등지에서 항일운동을 벌이다 1920년쯤 종적을 감춥니다.
꺼져가는 조국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대지의 바람처럼 풍운의 삶을 살았던 이위종.
그러나 이 땅의 후손들은 아직 그의 유해가 어디에 있는지 조차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