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 취임 100일째를 맞은 한덕수 국무총리가 기자들과 점심을 같이 했다. 과거 정치인 총리들은 이때쯤이면 저마다 그간의 행적을 포장하느라 비서진들이 언론사 이곳저곳을 불이나게 뛰어다녔을 텐데, 한 총리는 오늘 청사 인근 조용한 설렁탕집에서 기자들과 국무조정실 간부들을 불러놓고 조촐하게 100일 잔치를 마쳤다. 정치권이 온통 대선 소식으로 시끄러운 판에 어찌보면 실무형 총리에겐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취임 100일을 맞은 한 총리는 나름대로 풍부한 행정경험을 토대로 참여정부 마지막 총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는 게 정치권 안팎의 평가다.
한 총리는 우선 국민연금법, 사학연금법, 로스쿨법 등 참여정부 주요 민생 개혁법안을 지난 6월 임시국회때 통과시켰다. 입법은 국회가 하는 일인데, 총리가 무슨 상관이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지난 한 달 동안 한 총리는 법안 통과를 위해 장관들을 독려하고, 국회의장을 비롯해 여야 대표들을 일일이 만나 머리를 숙였다. 더우기 상임위별로 의원들을 삼청동 공관으로 초청해 만찬을 갖는 등 `행정총리'를 뛰어넘는 정치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한미FTA에 대한 찬반 논란을 떠나 취임 초기 한 총리는 FTA 전도사라는 별칭답게 협상결과를 적극 홍보하면서 제주 감귤농장과 충북 영동 포도농장등 농촌 현장을 찾아다니며 농민들을 설득하고, 동시에 '투명한 대국민 공개'와 '이익의 균형유지' 원칙을 고수하며 추가협상을 원만히 마무리해 한미 양국의 서명을 이끌어냈다.
또 경제 5단체장 등 기업인들을 잇따라 만나 규제개혁을 위한 발빠른 행보를 통해, 주춤하던 각 부처의 규제개혁 움직임에 채찍을 가했고, 의료와 관광, 위락산업등 서비스 산업에 대한 대폭적인 규제완화를 위한 노력도 계속해왔다.
한 총리의 주요 핵심임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연말 대선의 공정관리를 위해서도, 얼마전 한나라당으로부터 '고의적인 자료유출'이라는 의혹을 받기도 했지만, 선거와 관련된 각종 고소고발 사건을 직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정수사하라고 검경에 지침을 내림으로써 공무원 조직의 정치적 중립을 위협할 수 있는 외풍을 막기도 했다.
하지만 출입기자로서 한 총리에게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머리가 좋은(?) 한 총리는 기자들을 그냥 만나지 않는다. 매번 만날 때마다 기삿거리 한두 가지 흘리면서, 참여정부의 정책이 더없이 좋은 정책이라고 홍보하고 설득한다. 대입 3불정책이 그랬고, 부동산이나 증시, 심지어 기자실 통폐합까지... 경기고에 서울대, 하버드 박사까지 마치고 행정경험이 풍부한 고위공무원의 달변에 사실 당해낼 기자가 없다.
그런데 이런 설득을 듣고 나오는 기자들의 마음은 편치 않다. 물론 참여정부의 마지막 총리로서 노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잘 수행하는 일도 중요하겠지만, 굳이 나팔수까지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더우기 우리나라 최고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한 총리이기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용장(勇將)의 기상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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