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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민 "잘 빠진 공포영화 찍어보고 싶었다"

입력 : 2007.06.17 10:02

영화 '검은 집'으로 공포스릴러 장르 첫 도전


참 만만찮은 작업이었나 보다.

연기 잘한다고 인정받는 배우 황정민에게도.

장르 구별없이 다양한 작품에 출연해왔던 황정민이 21일 개봉하는 '검은 집'(감독 신태라, 제작 CJ엔터테인먼트)으로 공포 스릴러 장르에 첫 도전했다.

어린 시절 병약한 동생을 자살로 내몰았다는 죄의식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보험 사정원 전준오 역이다.

그는 사람을 죽여도 아무런 죄의식조차 갖지 못하는 '사이코패스(psycho-path)'라는 정신질환을 갖고 있는 연쇄살인범과 맞닥뜨린다.

정통 공포 스릴러와 처음으로 맞닥뜨린 황정민은 인터뷰 시작부터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막상 해보니 너무 힘들었어요. 정말 쉽지 않더군요. '사생결단'에서의 연기가 오히려 쉬웠죠. 지금까지와는 뭔가 다른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싶었는데 (공포 장르가) 수학 공식과도 같은 게 있었습니다. 여기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구요. 까놓고 말하자면 우리 역량이 이것밖에 안된다는 걸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다만 우리 입장에서는 최대한 할 수 있을 정도로 해서 (관객에게) 내놓자고 한거죠."

뭔가 다른 무언가를 찾는 것.

그걸 위해서 과감히 도전했고, "일반 시사회 반응은 썩 괜찮아 다행"이라면서도 감독과 배우 등 제작진에게는 힘든 벽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몇 년 전 일본 원작 '검은 집'을 재미있게 봤어요. 그런데 한국에서 영화로 만들어지고 시나리오가 제게 온 것을 보면서 '작품은 인연'이라는 평소 제 생각이 새삼 들었습니다."

이는 '검은 집'과의 인연이다.

그러나 그가 이 영화를 택한 건 보다 큰 욕심 때문이었다.

공포 스릴러는 영화 장르에서 늘 새로운 시도가 있어온 의미있는 실험 장르이면서 지극히 상업적인 면이 주로 드러나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황정민도 배우로서 의미있는 실험을 해보고 싶었나 보다.

"어렸을 때부터 스릴러 영화를 보면서 왜 우리나라에는 잘 빠진 공포영화가 없을까 생각했죠. 배우가 된 이후에도 마치 공포영화는 여름용 기획상품처럼 만들어지는 것에 대해 아쉬움이 계속 남아있었습니다. 제대로 한 번 해봤으면 좋겠다, 그런 목마름이 분명히 있었죠."

그렇게 나름대로 큰 꿈을 갖고 시작했기에 막상 촬영중 느끼게 되는 벽이 더 의미심장하게 다가온 듯 하다.

"멜로나 휴먼 드라마는 우리도 나름대로 다양한 모델이 있는데, 스릴러물은 교과서적인 표본이 없어요. 감독, 촬영감독, 조명감독, 프로듀서, 저, 이렇게 매일 모여 고민하고 이야기했습니다."

마치 현실에서 벌어질 것만 같을 때 공포감은 배가된다.

사이코 패스라는 질병이 우리에게 너무 낯선 것 아니냐는 질문에 "아니다. 굉장히 현실적인 소재"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자식이 부모를 죽이면 그저 미친 놈 취급합니다. 그러나 영화를 준비하면서 자료를 살펴보니 미국과 일본에서는 이를 체계적으로 분석한 자료가 참 많았어요. 철저하게 현실성을 갖고 이야기해야한다는 생각이었죠. 그래야만 관객이 현장에서 느꼈던 감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니까요."

그러나 문제는 두려움이라는 감정 자체가 일상생활에서 쉽게 느낄 수 없을 뿐더러 사랑이라는 감정과 달리 스스로 느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 있었다.

배우로서 그의 고민은 깊어졌다.

"우리가 하려는 이야기가 대단히 정형화됐지만, 그래서 새로운 무언가를 찾기 힘들겠지만 어쨌든 그 감정을 살짝 보여주느냐, 정공법으로 보여주느냐 선택해야 했습니다. 정공법을 택하는 영화가 많은데 그렇다면 그 나름대로 미덕이 있을테니 그걸 믿고 나가자고 했죠."

책이나 시나리오 등 글로 표현될 때는 '뒷목이 서늘하게', '소스라치게'라고 쓰면 그 뿐이지만 도대체 이를 연기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막막하기도 했다.

더욱이 전준오는 동생에 대한 죄의식을 여자친구에게조차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한 채 살아왔던 남자.

"전준오를 연기하면서 밋밋하게 가자고 했어요. 처음 생각했던 것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게 힘들었습니다. 막상 시사회때 보니 남이 누가 뭐래든 '참 잘했다', '잘했던 것 같다'고 혼자 생각했습니다. 선을 넘지 말자고 했는데 그건 지켜진 것 같았거든요."

첫 도전에서 느낀 것도, 배운 것도 많았다.

그리고 그는 "절대 아쉬움은 없다. 아쉬웠다면 그 때 바꿨어야 했다. 할 수 있는 대로 최선을 다했다. 기대감을 충족시켜야 하는데 그게 안됐다면 그건 역량이 안됐을 뿐"이라고 솔직하고 결연하게 말했다.

그의 말을 듣다보면 '검은 집'이 마치 한참 모자란 영화인 듯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 만큼 그가 이 장르에 쏟았던 애정과 개인적으로 품었던 기대치가 있었기 때문. 자신도 그걸 느꼈음인지 "일반 시사회에서 평점이 꽤 높았다. 그래서 다행"이라는 말을 인터뷰 시작과 말미에 했다.

황정민은 히치콕의 작품 세계를 가장 적확하게 오마주했다는 평을 듣는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드레스드 투 킬'을 가장 인상깊게 본 작품으로 꼽았다.

"스릴러인데도 그처럼 섹시한 영화가 또 있을까"라며.

그는 마지막으로 진심을 다해 말했다.

"부디 좋은 감독들이 스릴러 장르에 보다 관심을 기울여줬으면 해요. 영화를 주무를 줄 아는 분들이 한다면 저보다 훨씬 더 역량있는 배우들이 또 도전에 나설 거니까요. 저 역시 이번 작업으로 분명히 쌓인 게 있습니다. 다음에 작업할 때는 이것보다 훨씬 더 잘할 거라고 생각하고요. 또 도전해보겠냐구요? 당연하죠. 당연히 제가 꽂히면 1만2천프로 할 겁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