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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보이십니까?

김영아

입력 : 2007.06.16 21:23|수정 : 2007.06.16 21:33


 

 

 

 

 

아래는 형태심리학의 주요 원칙 가운데 하나를 보여주는 그림이다. 잠시 그림을 들여다 보자.

당신은 무엇이 보이는가? 개인적으로는 좌상단 구석에서 '사람'을 봤다. 같이 그림을 본 한 후배는 '개'를 봤다. 들고다니면서 이사람 저사람에게 물어봤다. 역시 사람이나 개가 보인다는 이들이 가장 많았다. 그 밖에 길이 보인다는 사람도 있고, 숲이 보인다는 사람도 있고, 돛단배가 보인다는 사람도 있고, 나무가 보인다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아무것도 안보인다'는 이도 있긴 했다.

사실 저 그림은 특별히 뭔가를 그린 그림이 아니다. 백지에 잉크를 되는대로 떨어뜨린 그림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저 그림을 들이밀며 '뭐가 보이냐?'고 물으면 별의 별 걸 다 찾아낸다. 한 대학 심리학과 교수님의 설명을 들어보니 사람의 마음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의미'를 찾아내려고 애쓰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래 사진은 한 지하철역 스크린 도어 풍경이다. 안전문 주변 남는 공간에 광고를 붙인 건지, 광고판 한 쪽 남는 공간을 활용해 문을 만든 건지 언뜻 봐서는 구분이 잘 안간다.

승강장 사이를 오가는 통로도 빈 틈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기둥은 아예 전체가 광고로 '랩핑'되기 일쑤고, 하나하나의 거대한 크기는 패스 한 장 손에 쥐고 종종걸음을 치는 보통사람들의 작은 체구를 압도한다.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며 바쁘게 가방을 들고 나선 출근길. 전동차를 기다리면서 그저 '정면'을 무심히 바라보는 동안, 바꿔 말하면, 굳이 억지로 광고판이 없는 쪽으로 눈을 돌리거나 두 눈을 꾹 감아버리지 않는 한, 당신의 무의식은 당신도 모르는 새 눈앞에 펼쳐진 '자극'의 의미를 해석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인다. 잠시 후, 사무실에 도착해서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당신은 한숨을 쉰다. "잠도 충분히 잤는데, 왜 이렇게 피곤하지?"

광고로 둘러싸인 지하철 역에 나가서 시민들을 만났다. 최근 늘고 있는 공공 공간 속 광고물들에 대해 극단적인 거부감을 보이는 이들은 생각보다 적었다. 시민들의 반응은 대부분 '별 생각 없다'는 중립적 입장이었다. '기다리는 시간에 덜 지루하고 재미있다'는 긍정적 반응도 많았다. 물론, 가끔 '지나친 상업성이 공적인 영역의 공공성을 해칠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이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반대로 "세계 어디서도 공공장소에 이렇게 광고가 많은 나라는 본 적이 없다"면서도 "상업적이면 어떠냐? 서울지하철이 적자도 심하다는데 시민들은 정보를 얻고 지하철측은 돈을 벌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 아니냐?"고 반문하는 '외국인'도 있었다.

콜라 깡통으로 전철 손잡이를 만들고 지하철 천정에 통마늘을 매달기도 하는 광고업계의 세련되고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말 그대로  '재미'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바쁜 하루살이의 최전선인 지하철역 같은 공간에서 '공공성'이니 '상업성'이니 하는 복잡한 '논리'와 '원칙'을 고민하기엔 우리 삶이 너무 팍팍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유가 무엇이 됐든 이미 많은 사람들이 공공 공간을 '도배'해 가고 있는 수많은 광고, 원하든 원하지 않든 쉴 틈을 주지 않고 눈을 파고 드는 자극들을 일상의 자연스런 '배경'으로 체념하고 있다. 하지만 서두에 소개한 사람과 개와 숲과 돛단배가 마구 뒤섞여 있는 흑백 그림은 질문한다. "정말 그냥 체념하고 말면 되는 걸까?"

기발한 광고가 지루함을 달래주는 것도 좋고, 광고들 덕분에 요금 좀 덜 내고 다닐 수 있는 건 더 좋다. 하지만 그 눈앞에 보이는 재미와 경제적 도움을 위해 떠안아야 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심리적 피로와 압박감과 불안의 크기에 우리 사회는 너무 무심하다. 내 집 거실 TV 속의 광고야 보기 싫으면 끄거나 돌리면 그만이지만, 리모콘 대신 교통카드 한 장 달랑 들고 다니는 이용객들은 무차별적인 자극의 홍수 앞에 한없이 무기력하다.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한계가 갈수록 모호해 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주의의 '꽃'인 광고가 갈수록 득세하는 걸 무조건 비판할 수는 없지만, 꽃향기도 지나치면 역한 법이다. 그 코를 찌르는 냄새 때문에 이유도 모르면서 어지럼증을 느끼는 이들의 마음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최소한의 '한계'는 고민해 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