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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백억 원 바지 소송 결과는...

원일희

입력 : 2007.06.14 09:14|수정 : 2007.06.14 09:16


바지 한벌에 우리돈 5백억 원을 물러내라는 희대의 소송 재판이 시작됐습니다.

미국시간 6월 12일 오전 9시반. 워싱턴 DC 지방법원 415호실.

원고 로이 피어슨 워싱턴 DC 행정법원 판사.

피고 한인 세탁소 주인 정진만씨 부부와 아들.

재판은 배심원 없이 판사 단독 심리로 시작됐습니다.

원고는 신분이 판사이다보니, 변호사 없이 본인이 직접 재판에 임했습니다.

피고는 미국인 변호사 크리스 매닝의 변호 속에 동시통역으로 재판 내용을 들었습니다.

방청석은 40여석.  재판 시작 한시간 전에 방청석은 꽉 찼습니다.

절반 이상을 미국과 전 세계 기자들이 차지했습니다.

피고와 원고를 45도 각도로 바라볼수 있는 배심원 석에는 미국 방송용으로 쓸 스케치 그림을 그릴 화가 두 명이 자리잡았습니다.

판사는 50대 여성이었습니다.

원고인 피어슨 판사는 속기사와도, 판사와도, 법정 경비원과도 잘 아는 사이였습니다.

흑인인 피어슨 판사는 178 센티미터 정도의 키에 건장한 체격이었습니다.

다소 거만해보이는 표정.  거들먹거리는 걸음걸이로 법정에 들어왔습니다.

뒤를 돌아보더니  미국 기자들에게 'Good Mornin!"하고 인사를 건넸습니다.

피고 정진만 씨 부부와 아들은 검은색 양복 차림으로 동시통역을 위한 이어폰을 낀 채로 긴장된 표정으로 앉아있었습니다. 원고와 피고는 눈도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피고석 앞에는 피고측 변호인 매닝과 보조 변호사가 앉아서 재판을 준비했습니다.

판사 :  재판을 시작합니다.  상황이 좀 바뀌었네요?  원고가 소송 가운데 바지 부분의 소를 취하했네요?

피어슨 : 그렇습니다. 바지 부분은 사건의 본질이 아니기 때문에 소를 취하했습니다.

판사 : 그럼 분실된 바지에 대해선 완전히 모든 소송을 취하하는겁니까?

피어슨 : 완전히 취하한다는건 너무 넓게 해석하는거고...

판사 : 그럼 뭡니까? 소를 취하했으면, 바지 부분에 대해선 더이상 말하지 마세요.

정 씨측 변호사 : 이의있습니다. 바지는 이 소송의 본질입니다. 문제의 바지는 분실하지 않았고 피고가 나중에 찾았습니다. 증거물로 이렇게 가져왔습니다. 본질 부분을 빼고 재판을 하는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판사 : 원고가 바지 부분은 소송을 취하했으니, 피고측 변호인도 바지 부분은 거론하지 마세요.

그래서 소송가액은 6백억원에서 5백억원으로 줄어든채 재판은 시작했습니다.

판사 : 원고 먼저 소송 이유를 말하세요.

피어슨 : 저는 잃어버린 바지 때문에 소송을 한게 아닙니다. 워싱턴 소비자들을 대변해 정씨의 세탁소가 저지른 사기 행위를 고발하기 위해 소송을 한 것입니다.

판사 : 근거는 뭐죠?

피어슨 : 정 씨 세탁소 간판에는 두가지 안내문이 걸려 있습니다. 만족보장(Satisfation Garanteed) 과  일일서비스(Sameday Service) 입니다. 정 씨는 내 바지를 잃어버렸고,  결과적으로 두 가지 안내문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이는 고객과의 약속을 저버린 사기 행위에 해당됩니다. 따라서 소비자보호법 위반으로 소송을 제기한 것입니다.

판사 : 피고측 변론하세요.

변소사 : 정 씨가 안내문으로 내건 '고객만족 보장'은 합리적인 고객을 전제로 한 약속입니다. 피어슨 씨는 합리적인 고객이 아닙니다. 이 터무니 없는 소송의 피해자는 원고인 피어슨이 아니라 피고 부부입니다. 이렇게 증거물이 남아있는데, 엉뚱한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판사 : 소비자들이 피해를 입었다는 점을 원고는 어떻게 입증하겠습니까?

피어슨 : 그래서 저는 증인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피어슨 판사는 증인을 9명이나 내세웠습니다. 증인들은 모두 흑인. 한결같이 정 씨 세탁소에서 이런 저런 불편을 겪었다고 불만을 표시했습니다.

오전 9시반에 시작된 재판은 오후 4시에 끝났습니다. 중간에 점심 시간 한 시간만 정회가 이뤄졌습니다.

이 시간.  법원 밖에는 백여명의 미국 기자들이 진을 쳤습니다.

미국 법률 관련 시민단체 회원 10여명도 몰려들었습니다.

시민단체 회원들은 앞다퉈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Darren McKinney(American Tort Reform Association)씨는 분개했습니다.

"피어슨 판사의 능력이 의심스럽습니다. 이런 황당한 소송을 위해 납세자들이 세금을 냅니까? 시민들이 분노할 것입니다.  피어슨 판사 같은 사람은 직업을 잃어야 합니다. 정 씨 같은 사람은 다시 일터로 돌아가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이 소송의 본질은 잃어버린 바지 값이 얼마냐가 아니라, 미국의 소송 남용이 얼마나 심각한가입니다"

또 다른 시민단체 회원. "그동안 미국의 법률 남용, 소송 남용 사건을 쭉 추적해 왔습니다.  이번 경우가 최악의 소송 남용 사례입니다. 미국의 모든 납세자들이 어런 소송 남용 비용을 부담해야한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있습니다"

한 미국기자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물었습니다.

미국기자 : 당신 한국 기자냐?

필자 : 그렇다. 

미국기자 : 한국에서 이 뉴스가 큰 관심을 끄나?

필자 : 큰 관심은 아니지만, 황당한 뉴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어떻게 이런 소송이 가능한가?

미국기자 : 당신은 개인적으로 어떻게 생각하나?

필자 : 웃긴다(ridiculous)고 생각한다. 사안의 본질이 잃어버린 바지값도 아니고, 소비자를 상대로한 사기행위라는데, 이해할 수가 없다. 피어슨 판사가 그렇게 생각하는게 이해안되는게 아니고, 그렇다고 5백억 원을 내놓으라고 소송을 거는 행위가 이해가 안된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

미국기자 : 나를 비롯한 상식을 가진 미국인들도 다 동의한다. 그런데 한가지가 걱정된다.

필자 : 뭔데?

미국기자 : 오늘 원고측 증인 봤냐?

필자 : 봤지.

미국기자 : 좀 이상한것 못 느꼈나?

필자 : 9명 모두 흑인이더라. 그것 빼고는...

미국기자 : 바로 그거다. 재판이 혹시 한인사회 대 흑인사회 갈등으로 변질되지 않을까?

필자 : 이 사건과 인종갈종은 관계 없잖아?

미국기자 : 그렇지. 그런데, 증인 내세우는 분위기가 그런 식으로 가는 것 같아서...

필자 : 말도 안된다. 이 사안이 어째서 인종문제인가?

미국기자 : 그렇지... 그런데... 누구든 내놓고 말하진 않지만, 그렇게 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필자 : 그러냐? 그럼 안되지...

첫 날 재판이 끝났습니다. 피고인 정 씨 부부와 아들들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변호사가 모든걸 대변했습니다. 변호사는 "예상했던 증인들이 나왔다. 내일은 우리도 증인 네명을 내세운다. 피고 증인이 증언하면 원고측 주장이 터무니없다는걸 입증할 자신있다."

피어슨 판사는 굳은 얼굴로 재판정을 나섰습니다. 기자들이 명함을 내밀었습니다. 피어슨은 굳은 얼굴로 손가락을 내저으며 거부했습니다. 인터뷰 요청은 물론 거절. 

필자도 명함을 내밀며 '나중에라도 연락하겠다' 말했습니다.

피어슨은 빤히 쳐다보면서 명함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리곤 지나쳐 나갔습니다.

언론이라면,  미국이든, 한국이든,  상대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사표시였습니다.

재판은 하루 더 열립니다.  빠르면 판결이 나올수도 있습니다. 일단 판사의 질문 내용과 전체적인 분위기는 정 씨측에 그리 불리해 보이지 않습니다.

판결이 나오는대로 속보를 전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