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평가포럼 강연에 대한 선관위의 선거법 위반 결정에 대해서, 청와대가 공언했던 '헌법소원 등 헌법과 법률이 정한 쟁송 절차 밟기'가 1-2주 후에나 이뤄질 것 같습니다. 이번 주에 법적 대응할 것 같던 청와대가 왜 신중한 자세를 보일까요?
선거법 위반 결정에 따른 선관위의 처분 내용이 법적 제재 (선관위법에 나와 있는 중지, 경고, 시정 명령, 수사 의뢰, 고발)가 아니라, 선거 중립 의무를 지켜 달라는 '협조 요청'에 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이 선거법 9조를 어겼는데, 이 법규 위반에는 처벌 조항이 없기 때문에 '협조를 요청한다'는 게 선관위의 설명이었고, 지난 2004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선관위로서는 대통령에게 법적 제재 조치를 취하는 데 따른 부담을 피해 가는 나름의 묘수였던 셈입니다. 그러면서 '사실상'의 경고라는 설명으로 여론의 비난도 피해 갔고요.
그런데 이렇게 '협조 요청'의 제재 수위가 낮은 것이, 청와대 법적 대응을 어렵게 합니다.

청와대는 법적 대응 방안으로 헌법재판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6.10 민주항쟁 기념식에서 "선거법을 고쳐야 한다"고 명시적으로 제안했지만, 대선을 6개월 앞둔 시점이라는 점과 국회 지형 등을 고려하면 대통령 임기 전에 선거법 9조를 고치는 것은 어렵습니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빨리 결론이 나는 헌법재판을 검토하는 겁니다. 2004년 대통령 탄핵 사건 때, 대통령이 선거 중립 의무를 위반했다고 판시한 헌법재판소 결정이 있었는데, (사건번호 '2004헌나1'로 헌재 홈페이지에서 판례 검색하면 볼 수 있습니다) 이걸 바꾸겠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되면 선거법 9조를 고칠 강제 수단을 얻게 될 뿐만 아니라, 대선 정국에서 대통령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공간도 얻게 된다는 판단입니다.
청와대는 헌법재판 중에 '헌법소원 심판'과 '권한쟁의 심판' 두 가지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헌법소원은 '국가 공권력이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경우에' 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은 개인이 아니라 국가기관이기 때문에 헌법소원을 낼 수 없다는 의견이 만만치 않습니다. 여기에다 '협조 요청'이 대통령의 정치적 표현 자유를 매우 어렵게 할 정도로 심한 제재 조치가 아니며 법적 제재 조치도 아니라는 주장이 있어서 헌법소원 심판을 선뜻 청구할 수 없게 하는 것입니다.
권한쟁의 심판은, '국가기관이 다른 기관의 권한을 침해하거나 침해할 위험이 대단히 클 때' 청구할 수 있습니다. 개인은 청구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협조 요청'이라는 낮은 수준의 제재 조치가 걸림돌이 됩니다. 대통령의 권한을 침해했다면, 그 뒤 대통령이 비슷한 발언을 할 수 없어야 할 텐데, 원광대 발언이나 6.10 기념식 발언을 통해 대통령은 비슷한 발언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가 충분한 법률 검토 없이 헌법재판을 걸었다가는 제대로 된 판단도 얻지 못하고, 헌법재판의 대상 자체가 되지 않는다거나 헌법재판을 걸 자격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각하' 결정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청와대가 신중한 것입니다.
헌법재판 청구 여부와 방안에 대한 1-2주간의 검토 결과가 어떻게 나오더라도, 선거법 9조에 대한 대통령의 문제 제기는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대통령 임기 중에 해결을 보지 못해도 문제를 던지고 공론을 모으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노 대통령 특유의 소명 의식 (손호철 교수는 순교자 의식이라고 정의했더군요)이 계속 작동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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