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적인 안무가 알랑 플라텔이 안무한 벨기에 쎄드라베 무용단의 공연 '저녁 기도'(일요일까지, LG아트센터)를 보고 왔다. 나는 막이 내렸을 때, 공연의 강렬함에 압도돼 한동안 멍하니 앉아있다가 땀에 젖은 무용수들이 커튼콜을 위해 다시 등장할 때에야 박수를 보낼 수 있었다.
휴식 없이 100분간 지속된 공연 시간은 결코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곡예사를 방불케하는, 상상을 초월하는 유연성과 에너지를 지닌 무용수들은 쉴새없이 무대에서 뛰고, 구르고, 기고, 쓰러지고, 소리쳤다. 몸을 떨고 뒤틀며 몸뚱아리 하나 제대로 통제할 수 없는 인간의 불완전성을 보여줬다.
알랑 플라텔은 자기 통제력을 잃은 정신병자를 찍은 필름과, 가장 숭고한 신앙심을 표현한 몬테베르디의 종교음악 '성모마리아의 저녁기도'에서 이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자기 통제력을 잃을 정도의 무아지경, 극단적인 감정 상태는 종교적 순간과 통한다고 생각했단다.

괴기스럽고 흉물스럽기까지 한 인간의 육체. 무언가를 갈망하듯 계속해서 뒤틀린 동작을 반복하고, 알 수 없는 소리를 질러대는 사람들. 무용수들이 자기 자신을 가누지 못하고 경련하며 토해내는 갈망의 동작들은 절정에 이르러 출연자들이 집단적으로 경련하며 자위를 연상시키는 동작을 하는 장면으로 이어지는데, 아,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무아지경? 황홀경? 어쩌면 무당의 '접신'이 이와 비슷한 것 아닐까.
이들의 무아지경은, 그러나 슬픔으로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 것이기도 했다. 채워지지 않는 인간의 근원적 욕구와 그 허무를 느꼈다고 해야 할까.
한바탕 집단 광란 같은 폭풍이 지나간 뒤 몇몇은 완전히 쓰러져 제정신을 잃은 채 간헐적으로 몸을 뒤틀고 있고, 몇몇은, 이렇게 쓰러진 사람들을 어떻게든 도와주려 애쓴다. 이들은 주무르고, 업고, 끌고, 안고, 같이 쓰러지면서도, 서로를 보듬으며 함께 무대 위 산에 오르려 한다. 가슴이 뭉클해졌다.
첫 장면에서 빵을 들고 나와 먹으려 애썼지만 제대로 먹지 못했던 무용수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다시 물병을 들고 나와 물을 마시려 애쓰지만 계속 온 몸을 경련하며 물을 쏟기만 한다. 역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면서 다가가 그를 도와주려 애쓰는 다른 무용수는 고장난 테이프 레코더처럼 이상하게 끊기는 소리로 어떤 말을 반복한다. 이 가운데 확실히 들렸던 것은 We, Us, 이런 단어들이었다. 무용수들의 '사투'를 보면서 갑자기 눈물이 왈칵 솟으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중간중간에 '이게 무슨 무용인가' 싶을 정도로 생경하기도 했고, 무용수들이 뱉어내는 대사(한국어 대사도 상당히 많았다.)에 웃음을 터뜨리며 말장난 같다고 느낀 대목도 있었지만, 마지막 20분은 정말이지, 압권이었다.
'저녁기도'는 나에게 색다른 충격과 감동을 준 작품으로 남을 것 같다. 벨기에 현대무용의 저력이 이런 것이구나, 실감했다. 알랑 플라텔의 안무는 '집단 작업'이라고 할 정도로 무용수 개개인의 아이디어를 존중하고, 일상적인 동작을 작품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전혀 무용 같지 않은' 동작들을 연결하고 의미를 부여해, 극을 절정으로 몰고 가 정점에서 폭발시키는 알랑 플라텔의 연출력은, 가히 천재적인 것이었다.
한국인 무용수 예효승 씨를 비롯해, '접신'의 경지를 보여준 무용수들의 뛰어난 기량과 열정에도, 몬테베르디의 '저녁기도'를 집시음악과 재즈풍의 독특한 편곡으로 연주하랴, 때로는 무용수들과 함께 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며 연기까지 하랴, 바빴던 연주자들에게도, 찬사를 보내고 싶다.
'저녁기도'는 보기에 '아름답고 예쁜' 작품은 아니다. 그러나 '아름다움과 추함', '성스러움과 속됨'의 경계를 넘어, 인간 존재의 모습을 무대 위에서 대면하게 한다.
예술은, 그런 것이다. 양극단을 끌어안고 '아이러니'를 사는 인간을 비추는 거울 같은 것. 때로는 가장 속된 것에서도 가장 성스러운 것을, 가장 추한 것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것을 떠올릴 수 있게 하는, 그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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