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에 가면 언제나 오실라~요. 오실 날짜나아 일러 주요오~"
18일 낮 전북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 노봉마을에 상여꾼들의 구슬픈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날 노제(路祭)의 주인공은 지난 15일 이 마을 삭녕(朔寧) 최 씨 종가(宗家)에서 발생한 화재로 숨진 12대 종부(宗婦) 박증순(93.여) 씨.
삭녕 최 씨 종가는 조선시대 남원지역 양반가의 몰락 과정과 3대째 종가를 지켜온 며느리의 애환을 그린 고(故) 최명희 작가의 소설 '혼불'의 배경이 된 곳으로, 숨진 박 씨는 소설 속 인물 '효원'의 모델로 알려져 있다.
이날 박 씨의 아들 최강원 서울대 의대 교수와 딸 최영희 전 국회의원 등 유족은 물론 평소 종부의 후덕함을 입은 마을 주민과 소설 '혼불'의 애독자 등 100여 명이 모여 박 씨의 마지막을 지켜보며 명복을 빌었다.
남원 혼불문학관 문화해설사 황영순(58.여) 씨는 "이렇게 돌아가시고 나니까 종가가 텅 비고 마음이 그렇게 허전할 수가 없다. 며칠 뒤에 다시 찾아뵌다고 약속했는데..."라며 눈물을 훔쳤다.
남원문화원 박찬용 사무국장도 "노제를 통해 종부 할머니가 지역 사회에서 차지했던 역할과 마지막 종부로서의 삶을 기억하고 전통적인 지역 문화를 계승하는 밑거름을 삼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왔다"고 말했다.
박 씨의 상여는 서울로 모시겠다는 자녀들의 제의도 거절한 채 고인이 평생을 바쳐서 지키고자 했던 최 씨 종가와 노봉 마을 입구를 돈 뒤 슬픈 곡 소리를 남기며 장지로 향했다.
(남원=연합뉴스)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