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하루만에 다시 편지 띄웁니다. 오늘은 바이올리니스트 나이젤 케네디의 기자회견에 다녀온 이야깁니다. 음악적으로나, 음악 외적으로나, 얘깃거리가 많은 연주자라 그냥 지나치기는 아쉬웠습니다. 블로그(https://ublog.sbs.co.kr/shkim0423)에도 올린 글인데, 개인적으로도 재미있었던 케네디의 '어록' 전문은 제 블로그의 인터뷰 카테고리에 다시 정리할 생각입니다.

펑크 머리에 아스턴 빌라 축구팀 티셔츠, 헐렁한 외투와 바지, 빨강과 파랑으로 신은 짝짝이 양말에 낡은 운동회, 그리고 손에 들린 맥주병.
내한공연을 앞두고 기자회견장에서 만난 바이올리니스트 나이젤 케네디의 첫인상이었다.
나이젤 케네디는 1989년 펑크 머리와 파격적인 복장으로 거침없이 연주한 비발디의 '사계'로 보수적인 음악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연주자다. 클래식 계의 악동, 이단아로 불리는 기인. 공연 취소가 잦은 괴짜, 광적인 축구 팬, 그를 설명하는 단어들이다.
그의 명성은 튀는 외모나 언행 때문만은 아니다. 탄탄한 실력과 독창적인 해석을 보여주는 현대의 '비르투오소' 가운데 한 명이고, 가장 많은 음반 판매를 기록한 클래식 바이올리니스트로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음악세계는 클래식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바흐에서 지미 핸드릭스의 록음악까지, 폭넓은 음악세계를 아우르는 그는 요즘 재즈에도 넘치는 열정을 쏟고 있다. 사실 그는 줄리아드 음악원 재학 시절부터 재즈도 함께 연주하며 뛰어난 재즈 뮤지션으로서의 자질도 보였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재즈의 명가 블루노트 레이블로 음반을 발매하기도 했다.
나이젤 케네디는 20대 초반이었던 1978년 한국을 방문해 세종문화회관에서 서울 시향과 협연했던 이후 한번도 내한 무대에 선 적이 없다. 지난 2002년 월드컵 기간에 내한공연이 추진됐으나 축구경기를 봐야 한다는 이유로 취소한 것으로 알려져 많은 클래식 팬들을 허탈하게 했다. 드디어 성사된 내한공연(9일 성남아트센터, 10일 세종문화회관)은 클래식 공연이 아니라 재즈 공연이다.
이번 내한공연은 케네디가 공연 계약에 명시한 여러 가지 까다로운 부대 조건으로도 화제가 됐다. 특정 상표의 공기 청정기, 오디오 시스템을 공연장 분장실과 호텔 객실에 설치해 달라고 요구하는가 하면, 만찬 때 마실 샴페인의 종류, 먹을 음식과 소스의 종류까지 일일히 지정했다. 공연 날에는 반드시 신선한 회 한 접시가 제공돼야 한다고 계약에 명시했으며, 심지어 생선의 종류까지도 지정했다.
(한국 공연 주최측은 그러나 이렇게 오해의 소지 없게 미리 지정해 주는 것이 오히려 편한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까탈스러울 것이라고 예상했던 케네디는 그러나 기자회견장에서는 쏟아지는 질문에 비교적 성실하게 대답하며 소탈한 면모를 보여줬다. 회견 도중에도 맥주를 컵에 따라 마시고, 주먹을 불끈 쥐어보이며 'COOL!' 하기도 하고, 'OH, MAN!'을 연발하며 대답하는 그의 모습에서는 50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한 '악동'의 장난기 같은 것이 흘러넘쳤다.
(내가 쓴 8시 뉴스 리포트의 제목을, 처음에 편집부에서는 '지천명의 악동'이라고 달았었다. 재미있는 제목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보니 이게 어렵다고 생각했는지, 그냥 한국 온 '이단아'라고 제목을 고쳐 놨다.)
케네디는 재즈가 연주할 때나, 연주를 듣는 데 있어서 지적인 능력을 더 많이 요구하는 장르이며, 관객과 연주자간의 특별한 관계 맺음이 가능하다는 점이 매력적이라고 했다. 그는 클래식 연주자는 악보에 쓰여진 대로 '기계적으로' 연주하게 되기 쉽다며, 재즈는 그런 점에서 더욱 깊은 생각을 요구하는 장르라고 했다.
그는 클래식 연주에 있어서도 '지휘자 없이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에 관심이 많다며, 지휘자가 있으면 연주자들은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지시에 따라 '기계적'으로 연주하지만, (sit back and play automatically), 지휘자가 없으면 스스로 생각해서 연주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어떤 장르이든 그는 '정해진 틀에 박히는 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케네디의 이런 생각은 클래식 음악계의 '악동'이라는 별명에 대한 견해를 밝힌 대답에서도 잘 드러난다.
"당신이 만약 '클래식 계의 착한 아이(good boy)'로 불린다면, 이는 당신이 매우 지루하고 재미없는 연주자(boring musician)라는 뜻이다! 아무 창의성이나 개성 없이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케네디가 한 때 클래식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가 다시 돌아온 이유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될 때까지 사랑하겠습니다'고 맹세하며 결혼했다가 이혼하는 것만큼 나쁜 일은 아니지 않느냐고 재치있게 응수했다.
자신의 '드레스 코드'에 대해서는, 옷에 돈 쓰는 것만큼 낭비는 없다며, 현재 입고 있는 외투는 고작 30파운드밖에 안 된다고 자랑했다. 그리고 자신이 '아스턴 빌라'의 티셔츠를 입고 있는 것에 대해, '아스턴 빌라'는 축구를 창조한 팀이라며 열광적인 축구 팬의 면모를 보여줬다. 또 펑크 스타일의 머리는 자신이 직접 자른다며(믿거나 말거나!), 남들이 자신의 머리를 망치는 것은 참을 수 없지만, 내가 망치는 것은 괜찮다(I can fuck my hair)고 농담했다.
케네디는 또 축구 경기를 봐야 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공연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와전된 것이라며, 자신은 절대 잉글랜드 축구 팀을 응원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잉글랜드 축구팀은 돈만 쓰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만약 자신이 잉글랜드 축구팀처럼 연주했다면, 지금 아무도 불러주지 않을 것이라면서.

케네디는 기자회견이 끝나자 이례적으로 즉석에서 연주까지 했다. 정상급 연주자가 공연장이 아닌 호텔 프레스 룸에서 쇼케이스를 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 그와 함께 온 퀸텟 멤버들과 호흡을 맞춰, 케니 버렐의 '미드나잇 블루'를 전자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는 케네디의 모습은 무척이나 흥겹고 유쾌해 보였다.
케네디의 이번 내한공연은 그러나 예상보다 매표 성적이 훨씬 저조하다고 한다. 음악계에서는 '클래식 팬들은 케네디의 클래식 연주에 관심이 있어 이번 공연에 무관심하고, 재즈 팬들은 케네디를 잘 몰라서 무관심한 것 같다'고 분석한다. 케네디의 클래식 연주만을 듣고 싶은 팬들이라면 내년 가을에 케네디가 다시 챔버 오케스트라와 함께 올 가능성이 높다고 하니, 그 때를 기다려도 될 듯 하다.
나로서도 클래식 연주자로서의 케네디에 더 친숙한 편이라, 재즈 연주자로서의 나이젤 케네디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러나 케네디의 기자 회견과 쇼케이스를 지켜보면서 그의 재즈 공연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관객 중 한 두 명이라도 미소를 지을 수 있다면 그 공연은 망한 것이 아니다. 그러면 나도 관객들에게 진지한 음악 뿐 아니라 미소까지 선사할 수 있을 것이고, 그것으로 됐다."
한국 관객을 놀라게 할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다는 케네디. '삶에 놀라움이 없다면 그게 놀라운 것(Life without surprise is too surprising!)'이라는 케네디가 이번 공연에서 어떤 모습으로 관객을 놀라게 할지,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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