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지방강연 동행취재기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본격적인 대선행보에 들어갔습니다.
손 전 지사는 지난 3월 19일 한나라당을 탈당한 이후 “시베리아로 가겠다”며 한껏 몸을 낮춰왔습니다. 그런 그가 지난달 30일 자신의 지지세력인 선진평화포럼 창립식을 시작으로 ‘순회공연’에 나섰습니다. 1일 광주에 이어 2일 대구, 3일 부산으로 이어지는 강연정치가 그건데요. 과연 손 전 지사에게 정치적 봄은 온 걸까요? 사흘간의 강연을 동행취재 했습니다.
광주에 도착하던 날 봄비가 추적추적 내렸습니다. 첫 일정인 5.18 국립묘지 참배와 묘하게 어울리는 날씨였습니다. 손 전 지사는 조금 긴장한 기색이었습니다. 범여권의 텃밭을 첫 강연지로 삼은 자신의 행보가 어떻게 비칠지 신경이 쓰였나 봅니다. 그런 손 전 지사의 옆으로 20여명의 기자들이 일거수일투족을 수첩에 또는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유력 대선주자 취재에는 각 언론사별로 기자들이 동행을 하는데요, 20명의 취재진은 손 전 지사에게는 기록적인 숫자입니다. 지난달에는 평균 두명, 적게는 한명의 기자가 따라다녔으니 무려 열배나 되는 폭발적인 증가입니다. 이렇게 기자들이 몰린 이유, 바로 지난달 30일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의 갑작스런 대선 불출마 선언 때문입니다. 비한나라당, 이른바 범여권 대선주자 가운데 열린우리당 바깥에 있는 잠재적인 우량주가 바로 정 전 총장과 손 전 지사였는데, 정 전 총장이 안나오겠다고 하니 이제는 손 전 지사만 남게된거죠.
어떻게 보면 이런 기회도 없을 법 합니다. 손 전 지사는 전남대에서의 강연 내내 자신을 ‘세일즈’하는데 집중했습니다. 대한민국이 먹고 살 길은 선진과 평화 두가지다. 선진은 잘먹고 잘사는 나라, 그러면서 모든 국민이 행복해하는 나라를 만들자는 겁니다. 평화는 변화하는 동북아 정세 속에서 북한의 경제개발을 지원해 평화체제를 구축하자는 겁니다. 이러기 위해선 낡고 부패한 정치의 틀이 바뀌어야하는데 그래서 자신이 나섰다는 겁니다. 경기고-서울대-옥스포드대 등 화려한 학력에, 그렇다고 책상물림만한 게 아니라 민주화운동 경력에, 여기에 3선 의원, 복지부 장관, 경기도지사로 이어지는 현실 정치인으로의 이력을 섞어가면서 이 정도면 시대정신을 대표할만 하지 않느냐고 호소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민주화의 성지인 광주가 포용력을 가지고 자신을 품어달라는 속내를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강당을 가득 메운 300여명의 학생들은 조금 지루해하는 표정이었습니다. 꾸벅꾸벅 조는 학생이 곳곳에 보였고 점심때가 다가오자 하나둘 자리를 뜨기도 했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학생들에게 손 전 지사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직접 보니 한나라당 이미지가 보이지 않아 좋게 다가왔다”는 우호적인 답변도 있었지만 “대선때 되니까 광주를 찾는 이런저런 정치인 가운데 하나 아닌가?”라는 심드렁한 답변도 나왔습니다.
둘째날 강연은 한나라당의 아성인 대구에서였습니다. 손 전 지사는 보다 여유를 찾은 듯 했습니다. 전날의 우충충한 날씨 대신 눈이 부실 정도로 화창한 날씨도 한몫 했습니다. 강연장인 경북대 강당을 찾은 학생들에게 악수를 청하기도 하고 같이 사진도 찍고 사인도 해주는 등 편하게 다가가려는 모습이었습니다. 강연 내용은 광주에서와 큰 차이는 없었고 “대구 역시 더 큰 포용력을 가져달라”고 호소한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함께 하던 친구와 선배를 만나러 방학 때마다 대구를 방문했다는 개인적인 인연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한나라당 대선주자 못지않은 동행취재단에 기운이라도 얻은 것일까요. 강연 후 기자간담회에서는 그동안 언급을 자제해왔던 범여권 상황에 대한 의견도 거침없이 개진했습니다. 손 전 지사는 최근 각개약진, 백가쟁명식으로 진행되는 범여권의 통합 작업에 대해 “비한나라권(손 전 지사는 범여권이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에서 당장 어떻게 짝짓기하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어떻게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느냐가 중요하다. 그냥 적당히 합종연횡하고 옷갈아 입는다고 국민들이 몰라 보겠습니까? 적당한 합종연횡에 의한 재구성이다, 적당한 판짜기에 의한 정계개편이라면 한나라당에게 뻔하게 패배한다”고 진단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은 이런 정치공학적인 통합론이 아니라 새로운 정치의 내용을 채울 때”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독자 세력화의 길로 가겠다는 거지요. 결국 자신이 깃발을 들고 범여권 정치인들을 흡수하겠다는 생각 아니냐고 노골적으로 물어봤습니다. 손 전 지사는 “새로운 정치의 틀을 만드는데 누가 주도하고 그런 건 의미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표정 변화를 살폈더니 미동도 하지 않더군요. 간담회 장소는 경북대 앞의 호프집이었는데요, 손 전 지사는 생맥주를 채 한잔도 마시지 않았으면서도 “이렇게 맥주나 마시고 있었으면 좋겠다”며 아쉬워하다가 다음 일정을 챙기러 떠났습니다. 그만큼 마음이 풀려 있었다는 얘기지요.
사흘째인 3일은 부산대에서의 강연이었습니다. 역시 강연 내용은 그 지역과의 인연에다 자신이 내세우고 있는 선진평화국가론 등이 주류를 이뤘고 양념으로 영남에서 한나라당이 독식하는 구도로는 새 정치가 어렵다는 말도 곁들였습니다.
사흘째 계속된 기자간담회에선 한결 더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정치결사체(사실상 정당이나 마찬가지라는게 손 전 지사측 얘깁니다만) 성격의 선진평화연대를 다음달 초에 발족시키겠다면서 현재 전국적으로 권역별로 순조롭게 조직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본인이 직접 발족시기를 얘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창당 작업에 대해선 외부 여건이 변화무쌍하다면서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겠다고 했습니다.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시간이 가면 자연스럽게 범여권이 핵분열을 거쳐 재편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자신에 대한 지지세력이 붙을 것이라는 전망을 하는 듯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언급은 극도로 아꼈습니다. 전날인 2일 노 대통령이 “경선에 불리하다고 당을 뛰쳐나가는 행위”라고 적시한 발언이 자신을 겨냥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보도도 못봤다”며 손사래를 쳤습니다. 분명 거짓말이 분명한데도 더 물어볼 여지를 봉쇄한 거지요. 이제 막 독자세력화에 나선 손 전 지사로서는 현직 대통령에 대한 공격이 부담스러워 보였습니다. 고건 전 총리, 정운찬 전 총장 등 노 대통령이 비판적으로 언급했던 인사들이 중도 낙마한 것도 염두에 뒀을 법 합니다.
사흘간의 강연정치를 마치고 손 전 지사는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이제부터는 오는 9일부터 시작되는 방북 준비에 ‘올인’한다고 합니다. 평양에 가서 평화와 번영을 위한 남북 토론회에 참석하는 일정인데, 사실상 자신이 주장하고 있는 선진평화국가론의 한 축을 ‘세일즈’하겠다는 구상이죠.
사흘간의 취재에서 느낀 점은 분명 손 전 지사는 시베리아를 벗어날 채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손 전 지사측은 아직 봄이 온 것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무엇보다 한나라당에서 팔과 다리가 됐던 지지세력들이 탈당과 함께 떨어져나갔고 이 때문에 조직과 자금면에서 하루하루를 꾸려가기가 쉽지 않다고 측근들은 털어놓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다가올 미래에 대한 희망은 놓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정운찬 전 총장의 불출마 이후 혼돈 상태로 빠져들고 있는 범여권의 분열상. 이 모든 것을 대반전의 계기로 삼을 준비를 착착 하겠다는 겁니다. 잔인한 4월을 보낸 손 전 지사에게 계절의 여왕인 5월이 미소를 지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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