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4월 지금 평양은...
지난 18일부터 22일까지 평양에서 열린 제13차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경추위) 회의를 취재하고 돌아왔습니다. 회담 취재기를 1,2편으로 나눠 실어봅니다. 복잡한 회담 이야기보다 우선 평양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평양 가보신 분들 많지 않으시죠? 개인적으론 저도 평양 방문이 처음이었습니다. 사실 통일부 출입기자들도 평양을 방문하기 쉽지 않습니다. 방북 취재의 경우 언론사들끼리 합동취재단을 구성하는데 순번으로 돌리기 때문에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습니다. 운 좋게 얻은 평양 취재 기회인만큼 기대가 컸습니다.
18일 오후 평양 순안 공항에 도착하니 정말 긴장이 되더군요.
착륙 전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평양 순안 공항 주변은 대부분 논밭이었습니다. 소 달구지까지 보이는 것이 70년대 우리 농촌 모습과 비슷했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 계류장을 둘러보니 러시아(북한 말로는 로씨야)제 화물기 IL-76MD가 5,6대 서 있더군요. 북한 고려항공이 보유하고 있다는 다른 러시아제 여객기들은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계류장 건물에 붙은 대형 김일성 수령 초상화.
넉넉하게 웃는 얼굴이었는데도 제 느낌에는 이렇게 말한 것 같았습니다.
'이제 평양이야, 조심해. 임마!'
비행기 트랩에서 내리자마자 남측 대표단은 버스(남한의 현대차)에 올라탔습니다.
순안 공항을 빠져나와 약 10분 정도 달리자 도로 주변에 거대한 채소(북한 말로는 남새) 비닐하우스 단지가 나타났습니다. 재작년(2005년) 저희 SBS가 평양시 낭랑구역 유소농장에 세워준 비닐하우스 10개동이 아닌가해서 물어봤는데 북측 안내원도 잘 모르더군요.-.-;;
버스는 이어 '9.9절 거리'로 들어섰습니다. 북한 정권 수립일인 9월 9일을 기념해 만든 길인데 양 옆에 건물도 없고, 인도만 있는 황량한 도로였습니다. 전체 길이는 7,8km 정도인데 북한 사람들은 잘 걸어다니더군요.
9.9절 거리를 지나 몇 번의 커브를 돈 끝에 평양 시내로 들어섰습니다. 태양절(4월15일로 김일성 수령의 생일)을 기념하는 현수막들이 점점 더 많이 눈에 띄였습니다. 김일성 광장을 지나갈 때는 수천 명의 학생들이 플라스틱으로 만든 모형 횃불을 든 모습도 보였습니다. 북측 안내원에 따르면 '횃불 행진' 연습을 하고 있다는데 남한에서 TV로 봤던 것보다는 좀 어수선 하더군요. 아마 연습 초기였던 것 같습니다.
순안 공항에서 숙소인 고려호텔까지는 40분이 걸렸습니다. 평양 최고 호텔인 고려호텔은 1-3층이 한 건물로 돼 있고, 4-43층까지 객실은 2개 동의 쌍동이 건물 형태로 돼 있습니다. 꼭대기 44층에는 회전전망식당이 있습니다. 회전전망식당은 평양에서 유일하게 시내 전경과 야경을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1층 접수대에는 TV화면 6개가 모아진 대형 스크린이 있었습니다. 스크린에는 방의 수준(고급방이나 보통방)과 층수에 따른 숙박료가 나오더군요. 하룻밤에 싼 곳은 150유로(우리돈 18만8000여원), 비싼 곳은 250 유로(31만4000여원) 정도 했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호텔 숙박비뿐 아니라 모든 북한 상품에는 기본적으로 유로 가격이 붙어있습니다. 하지만 달러로 계산하겠다고 하면 즉석에서 계산기로 환율을 계산해줍니다. 달러와 유로가 모두 통한다는 이야기죠. 또 호텔 1, 2층에는 찻집, 맥주집, 식당, 기념품점, 당구장, 국제전화거는 곳, 사진관, 바(bar), 서점, 그림 판매점 등이 있었고, 지하에는 마시지룸, 체육관, 수영장, 가라오케 등이 있었습니다.
짐을 찾은 뒤 호텔 방으로 올라가봤습니다. 깨끗하더군요. 화장실에도 치약, 치솔, 면봉, 빗, 샴푸, 비누, 수건 모두 있었습니다.(뭐 당연한 이야기지만) 거실에는 봉지 땅콩과 강정이 간식으로 올려져 있었습니다.
호텔방 TV도 켜봤습니다. 조선중앙TV와 러시아 채널 2개, CCTV 채널 2개, NHK, BBC가 나옵니다. BBC에서는 버지니아 참사의 범인인 조승희가 NBC에 보냈다는 사진과 동영상이 나오더군요. (나중에 이야기를 해보니 북한 사람들도 버지니아 참사를 알고 있더군요.) 호텔방 밖에서는 물론 조선중앙TV밖에 볼 수없습니다. 조선중앙TV는 밤 11시까지 하는데 특히 요즘엔 저녁에 하는 중국 드라마 '삼국지'(북한말 더빙)가 큰 인기를 끌고 있었습니다.
호텔방에서 내려와 3층 기자실에 노트북, 카메라 등 취재장비를 놓고는 호텔 정문으로 나왔습니다. 바람이나 쏘일까 했죠. 그런데 북한 안내원이 다가와 큰 소리로 우리를 부릅니다.
"호텔 정문 밖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우리(북한) 거리나 사람들에 대해서는 사진을 찍지 마십시요."
"아니, 숨긴 것도 아니고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을 왜 못 찍게 합니까?"
"하여튼 북한 합의사안을 지켜주십시요. 이거 왜 이러십니까?"
도대체 말이 통하지 않는 대화였습니다. 4박 5일 내내 이놈의 잔소리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이렇게 호텔에 갇혀 지내게 되니 보이는 평양 모습이라야 호텔 정문 앞 거리뿐이었습니다.
마음도 답답한데다가 협상도 안 풀리고....도착 다음달부터 이틀간(19, 20일) 비까지 내리니 우리 마음이 어두워서인지 평양 거리는 한없이 칙칙해보였습니다.
정말 길 건너 10여 층의 아파트는 페인트 칠도 안 돼 있어 짙은 회색 빛이고, 도로에는 녹슨 버스와 낡은 벤츠 승용차가 달리고, 인도에는 고무 장화를 신은 사람들이 터벅터벅 걸어다닙니다. 호텔 맞은 편에는 꽤 큰 식당과 군고구마 매점, 남새식당이 있었는데 드나드는 사람도 적고 또 어찌나 무표정한지.... "이 사람들은 무슨 생각으로 살까?"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자동차를 좋아해 도로를 굴러다니는 차도 살펴봤습니다. 80년대 벤츠와 토요다 모델이 대부분이더군요. 아무 곳에서나 수입해서 그런지 운전석도 오른쪽 왼쪽 차량들이 막 섞여 있습니다. 이런 구형 수입차에 고장이 나면 어떻게 하냐고요?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직접 부품을 만들거든요. 그렇게 놀랄 일도 아닙니다. 중고차 시장으로 유명한 우리 서울 장안평에서도 가능한 일이거든요.
좀 더 지켜보니 북한제 스포츠유틸리티 차량(SUV)인 '뻐꾸기'가 도로를 지나갑니다. 뻐꾸기는 남한의 평화자동차라는 회사가 북한에 공장을 짓고 이탈리아 피아트 모델을 본떠 만드는 차량입니다. 생산량이 연간 500대 정도에 불과해서 그런지 그렇게 많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수입차들도 간혹 눈에 띕니다. 폴크스바겐의 파사트와 아우디 A4, 렉서스 RX300도 지나다니더군요. 호텔 앞 주차장에는 현대차의 최신형 싼타페까지 서 있었습니다. 북측 안내원에게 누구 것인지, 어디서 구했는지 계속 물어봤는데 모르쇠로 일관하더군요. 북한에서는 자동차 운전자가 직접 차를 고치는 일이 많아 어느 정도 전문직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통일되면 북한 운전사분들 걱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도착 첫 날의 밤이 깊어지면서 평양 야경에 눈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평양의 전력 사정은 생각보다 좋았습니다. 밤에는 아파트 창문 가운데 70% 정도가 불을 밝히고 있었고, 평양 밤거리에선 인민문화궁전이나 김일성 광장, 옥류관 등 주요 건물에 야간 조명이 환히 켜 있었습니다. 몇년전과 비교해보면 훨씬 나아진 상황이라고 합니다.
협상이 진행되고 며칠지나고 나니 호텔을 벗어날 기회도 있었습니다. 19일 남측 대표단이 점심을 먹으러 평양 옥류관을 찾은 겁니다.옥류관은 쉽게 생각해 서울 세종문화회관 규모의 대형 식당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북측 안내원은 최대 7000명이 한꺼번에 식사를 할 수 있다면서 연신 자랑을 하더군요. 대동강변에 붙어 있어 강물을 보면서 식사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당 간부나 외빈들만 옥류관을 이용하는 줄 알았는데 옥류관 앞에는 일반인들도 많았습니다. 일반 주민들도 점심 식사 때에는 옥류관을 많이 찾는다고 하더군요. 옥류관 하면 역시 평양 랭면이죠. 실제로 맛있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저는 그저 그랬습니다. 옥류관은 몇 년 전 중국 베이징 왕징 지역에까지 분점을 냈다고 합니다. 제 입맛이 잘못된 것이겠죠?
협상 두번째 날인 20일에는 김책 공대 전자도서관을 방문했습니다.
김책 공대는 북한 최고의 공과대학으로 핵개발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자 도서관은 5층 짜리 건물이었고, 실제 학생들이 강의를 받은 건물은 낡은 10여층 짜리 건물이었습니다.
도서관에 들어가보니 생각보다 학생들도 별로 없었습니다. 우리 대학으로 보면 중간 고사나 기말 고사가 끝난 직후 정도?
학생들이 뭘 읽고 있는지 알아봤더니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인 C++ 관련 책을 보는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북한 소프트웨어 개발 수준이 높다고 하는데 이런 똑똑한 애들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몇 명의 북한 학생들은 우리 남한의 컴퓨터 서적을 보고 있는게 아닙니까? 자기들도 그 책이 남한 책이란 것을 알고 있더군요. 남측 관계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 남한 기업들이 그동안 북측에 IT 관련 서적을 많이 보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열람실에서는 수학 문제를 풀고 있는 두 학생이 보였습니다. 수학 문제를 봤더니....남한 이공계와 크게 다르지 않더군요. 안타까운 것은 이 친구들이 쓰고 있던 노트와 연습장이었습니다. 종이질이 너무 나빠 연필심은 수시로 부러졌고, 쭈욱 쭈욱 찢어지기도 하더군요.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학생들을 잘 살펴보다 보니 같은 대학생끼리도 나이 차이가 많은 것 같더군요. 나중에 북측 안내원이 설명을 해주더군요. 북한에서는 6세 때 유치원에 들어가 7세 때 소학교(4년), 11세에 고등중학교(6년)에 들어갑니다.
만약에 곧바로 대학에 입학하면 17세에 대학 1학년이 되는 것이죠. 이른바 직통반이라고 해서 우수 학생들로 상위 5-10% 학생들인데 이 애들은 그러니까 17세부터 20세까지 대학을 다닙니다. 북한 정부는 또 이들을 배려해 군 복무기간을 7년에서 5년으로 2년을 줄여줍니다. 사회생활은 25,26살부터 하게 되죠.
또 다른 학생들은 고등중학교 졸업 후 곧바로 군에 간 경우입니다. 군 복무를 7년 동안 하기 때문에 대학생활은 24살쯤 시작합니다. 대학을 졸업하면 27살쯤 되죠. 하여튼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남이나 북이나 똑같이 보기 좋더군요.
이렇게 써놓고 보니 완전히 단편 조각 그림이군요. 그래도 2007년 4월 평양, 조금은 느끼실 수 있겠죠?
다음 편에는 지루한 남북 경제 협력 협상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참, 추가로 평양을 떠나기 직전 고려호텔 기념품점에 들렀는데요. 건강 식품 코너에서 20대 후반의 여의사가 직접 상품을 팔고 있더군요. 여의사가 추천해준 북한 건강식품이 뭐냐? 30유로(3만7000원) 짜리 상황버섯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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