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5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치러지는 전남 무안. 마침 5일장이 들어 선 날, 장터는 이른 아침부터 일찌감치 유세차량들로 점령 당했다. 각 후보들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날에 맞춰 대규모 유세전을 준비한 것이다.
대물림 선거 논란 속에 민주당의 견고한 지역 기반을 딛고 국회 입성을 노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 김홍업 후보. 여론지지율 2위로 민주당을 바짝 추격하는 무소속 이재현 후보, 그리고 한나라당 후보로는 처음으로 호남지역에서 두 자리 수 지지율을 기대하는 한나라당 강성만 후보 등이 모두 가깝게는 10미터, 멀게는 200~300미터 간격으로 유세 포인트를 마련했다.
이 날 가장 흥행에 성공한 쪽은 한나라당 후보였다. 당의 두 유력 대선주자인 이명박 전 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가 함께 지원유세에 나서기로 했기 때문이다. 먼저 모습을 보인 쪽은 이 전 시장이었다. 오전 10시로 예정된 유세 시간보다 10분 먼저 도착한 이 전 시장은 시장을 둘러보며 상인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 뒤 연단에 올랐다. 15분 동안의 연설의 끝나고 이 전 시장이 자리를 뜬지 40분쯤 뒤, 이번에는 박근혜 전 대표가 등장했다. 공교롭게도 이 전 시장이 떠난 반대 방향에서 모습을 나타냈다. 두 사람은 각자 '잘 사는 지역을 만들기 위해 한나라당 후보를 뽑아 달라'고 한 목소리로 호소했고, 주민들로부터 비교적 높은 관심과 박수를 받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순조롭게 진행된 듯한 이 '40분 차' 지원 유세에는, 사실 이명박, 박근혜두 주자의 미묘한 신경전이 숨어 있었다. 당초 이 전 시장은 18일 하루 일정으로 전남 지원 유세를 계획했고 박근혜 전 대표는 이튿날인 19일 전남 유세 일정이 잡혀 있었다. 사단은 이 전 시장이 이 일정을 18, 19일로 이틀 연장하면서 시작됐다. 이 지역에 출마한 후보 측이 두 대선주자에게 같은 날 방문한 김에 공동 지원 유세를 요청한 것이었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표 측은 이 제안을 거부했다. 재보궐 선거는 지역 일꾼을 뽑는 선거인데 두 대선주자가 동시에 나타나면 분위기가 과열돼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고 한다. 두 주자 사이에 편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후보 측이 그렇다면 이 전 시장이 박 전 대표 연설과 겹치지 않게 오후에 지원 유세를 해 달라고 공문을 보냈다. 그러자 이번에는 이 전 시장이 일정상 어렵다며 박 전 대표와 같은 오전 10시 반에 유세를 하겠다고 알려 왔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두 사람은 한 시간 남짓의 시간차를 두고 연단에 오르는 것으로 타협을 봐 '원치 않는 대면'은 피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양측 모두 이번 일을 계기로 감정의 골이 더욱 깊어진 것 같은 인상이다. 박 전 대표 측은 이 전 시장 측에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나타냈다. 박 전 대표의 한 측근은, 이 전 시장이 일부러 박 전 대표의 일정을 따라 한 것 같다며 스토커라는 표현까지 썼다. 반면 이 전 시장은, 박 전 대표 측이 유세 관중을 빼앗길까봐 공동 유세를 일부러 피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사소해 보이는 지원 유세에도 서로 자존심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어느 때보다도 높은 호남의 지지를 다음 대선에서 득표로 연결시키는 것이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다. 그러다 보니 두 유력 대선 주자들이 앞 다퉈 호남을 방문하는 과정에서 이런 신경전이 벌어진 측면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아무래도 일반 유권자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아직 한나라당 경선 후보 등록도 마치지 않아 두 사람의 본격적인 경쟁 레이스도 시작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좋게 보일 리가 없다. 경선 룰을 두고 아직도 완전한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후보 검증 등 사사건건 대립하더니 이제는 유세 시간을 놓고도 불편한 모습을 보이는 두 주자. 이들이 유세장을 떠나고 청중 상당수가 빠져 나간 뒤 다른 후보의 유세 차량 마이크에서 들려 온 목소리는 이렇다. "한나라당은 벌써부터 '대권 병(病)'에 빠져 있습니다,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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