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주권에 관한 문제입니다!"
리처드슨(Bill Richardson) 일행의 판문점 통과 취재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주한미군 공보관의 답변에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우리 언론이 우리 땅에서 벌어지는 일을 취재하겠다는데 누구의 허락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리처드슨 미 뉴멕시코 주지사 일행은 6.25때 북녘에서 전사한 미군 유해 6구와 함께 4월 18일 오전중에 판문점을 통과하도록 예정되어 있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판문점 통과 시간에 임박해 취재 허가가 나면 어떻게 하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급한대로 영상취재팀에 부탁해 판문점에서 가까운 통일대교 앞에 가 기다리도록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국방부에 취재 협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결과는 역시나였다. 국방부도 무기력했다.
주권(主權) 문제?
기자는 "주권(主權)에 관한 문제"라며 목소리를 높옆건만, 그 '주권'을 행사할 근거를 끝내 발견하지 못했다.
빗장을 풀 열쇠는 벨 사령관이 쥐고 있었다. 주한미군 사령관이자 한미연합사(CFC) 사령관, 그리고 결정적으로 유엔사(UNC) 사령관까지 겸하고 있는 버웰 벨(B.B. Bell) 미군 대장의 허락 없이는 판문점 출입을 할 수 없게끔 되어 있었다.
그 뿌리는 반 세기를 거슬러 올라간다. 1953년 6.25 전쟁을 매듭지으며 체결된 정전협정을 보자.
- 제7조 8항: 비무장지대 내의 어떠한 군인이나 민간인이나 그가 들어가려고 요구하는 지역의 사령관의 특정한 허가 없이는 어느 일방의 군사통제하에 있는 지역에도 들어감을 허하지 않는다.
이 규정에 따라 유엔사 사령관은 군사분계선(MDL) 남측지역 비무장지대(DMZ)에 대한 관할권을 갖게 된 것이다.
SBS를 필두로 한 취재진의 항의에 시달리던 유엔사 공보실은 리처드슨 일행이 "북한측과 합의"에 따라 유해 송환 장면을 언론에 노출하지 않기로 했다고 해명했다.
맥이 닿지 않는 해명이다. 자신들의 선의(善意)에 따라 성사된 이번 유해 송환을 만천하에 알리고 싶은 게 북한의 속셈이련만, 널리 알리지 말라 했다니...
게다가, 리처드슨 일행의 평양 방문을 동행 취재한 미국의 NBC와 APTN은 "북한의 반대"를 무릅쓰고 어떻게 이들의 판문점 통과 전 과정을 낱낱이 취재할 수 있었단 말인가?
리처드슨을 만나기라도 하면 단단히 따지겠다고 벼르며 치솟는 울분을 삭였다.
그리고 다음날...
기회는 다음날(12일) 찾아왔다. 리처드슨 일행의 기자회견을 외교 담당 기자와 함께 취재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용산의 미 대사관 공보원에 마련된 기자회견장.
일찌감치 모여든 내·외신 취재진들로 북새통이었다. 이곳에 마지막으로 와 본 것이 외교부를 취재할 때였으니 2년도 더 지난 일이었다. 오랜 만에 보는 얼굴들과 인사를 나누고, 또 새로 만난 외신기자들과도 통성명을 하며 기자회견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오후 5시를 조금 넘겨 리처드슨 일행이 도착했다.
방북단을 이끈 리처드슨 미 뉴멕시코 주지사와 프린시피(Anthony Principi) 전 미 보훈성 장관, 그리고 북한 전문가라는 한국계 토니 남궁 박사가 나란히 앉았다. 역시 관심의 인물인 빅터 차(Victor Cha)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은 옆에 마련된 배석자 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세 사람은 차분히, 그리고 진지하게 방북 결과를 설명했다.
그리고 이어진 일문일답. 쏟아지는 질문들의 초점은 모두 북한 핵 문제에 모아졌다. 당연한 일이었다. 북핵 2.13 합의 이행 마감 시한을 불과 며칠 앞두고 북한이 리처드슨 일행에게 과연 무슨 말을 했을까? 이들이 풀어놓을 보따리는 무엇일까?
전날 판문점 취재를 거부한 이유가 뭐냐고 리처드슨에게 따질 계제가 아니였다.
'잘못 끼어들었다가 망신 당할라! 가만 있자!'
북핵 문제와 BDA(방코 델타 아시아)에 동결된 북한 자금에 관해 내리 5차례 질문과 답변이 이어졌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을 한국 기자로부터 받겠다는 사회자의 발언에 나도 모르게 손이 번쩍 올라갔다.
"SBS의 이성철 기잡니다. 지난 2005년에 중단된 6.25 전사 미군 유해 발굴 사업을 즉각적으로, 전면적으로, 일체의 비용부담 없이 재개하자는 북한 당국자의 제의가 있었습니까?"
대답은 ... "예스"였다.
프린시피 전 미 보훈처 장관은 "미국의 유해발굴단이 다시 북한에 들어와 공동작업을 재개하도록 초청하는데 북한이 관심을 보였다"고 답했다. "북한이 앞으로는 단독으로 유해 발굴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는 설명까지기자회견은 끝이었다. 뜻밖의 기사 발굴이었다.
사실 힌트는 리처드슨에게서 얻었다. 그는 모두발언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번 유해 송환이 무조건적으로 이뤄졌지만, 그렇다고 앞으로 북미 양국간 협력을 통해 공동으로 수행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며 향후 6자회담의 틀을 통해 논의될 것입니다."
'아! 북한에서 뭔가 움직임이 있었구나!'
사실 기자는 6.25 전사 미군 유해 문제가 한반도 냉전구조의 한 축을 지탱하는 상징적인 문제라고 보고 주목해 왔다. 유해 송환은 빌미이고 본질은 BDA와 북핵문제라는 게 전문가들 진단이었지만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고 판단했다.
유해 문제는 실제로 인도적 문제를 중시하는 미국으로서는 뼈아픈 구석이다.
전설적인 장진호 전투를 포함해 미군 실종자 8,109 명의 유해를 아직까지 수습하지 못하고 있으니, 유족들의 한을 미국 정부가 어떻게든 풀어줘야 할 터였다.
기자회견에서 리처드슨은 유해를 찾고 싶은 가족들의 염원이 담긴 편지 6통을 북측의 리창복 상장(판문점 대표부 대표)에게 전달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또, 아버지 부시(George H.W. Bush)와 아들 부시(George W. Bush) 행정부에서 보훈성 장관을 지낸 프린시피는 "부시 대통령이 유족들뿐 아니라 전쟁을 같이 치른 두 나라가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다"며 유해 송환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다음날 용산 미군기지에서 유해 송환식이 엄수됐다. 리처드슨 일행을 비롯해 우리 군과 국방부 고위 인사들도 참석했다.
김영룡 국방부 차관은 다음날 "미군 유해 송환 행사에 참석해 보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는 것을 느꼈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국군 포로 문제를 두고 한 말이다.
한국 기자들의 판문점 취재를 원치 않은 쪽은 북한일까, 리처드슨일까, 아니면 벨일까? 벨 사령관 쪽에 무게를 실으며 일주일에 걸친 이번 취재를 매듭지으려 한다.
작은 유골함에 담긴 초라한 모습보다는 파란 유엔기에 싸인 의연한 선배 전우들의 모습을 보이고 싶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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