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바오 중국 총리에 대해 오늘 아침 아사히 신문은
"위엄은 있되 사납지는 않다"고 인물평을 해놨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적절한 평가가 아닌가 합니다.
어제 원자바오 총리가 일본국회에서 연설하는 것을 보면서 부드러우면서도 참 당당하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아사히 신문은 논어의 한 구절을 인용해 위엄은 있지만 사납지는 않다고 표현했더군요.
어제 원 총리의 일본 국회연설은 상당 부분 일본과 중국의 역사 문제 언급에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어제 밤 이에 대한 뉴스를 만들면서 원 총리의 연설 가운데 저는 시간 관계상 일본에 대해 행동으로 반성하라고 촉구한 내용을 주로 기사로 썼습니다만 정작 말하고 싶었던 것은 중국의 대국적인 외교 자세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일본 언론은 사과와 반성을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줄 것을 촉구한 부분도 보도하고 있습니다만
이 내용뿐 아니라 중국 총리가 일본 정부와 지도자들이 여러차례에 걸쳐 공식적으로 침략에 대해 사과한 것을 '적극적으로 평가'한다고 언급한 부분에 대목을 제목으로 뽑고 있습니다.
사실 지난 2000년 방일했던 당시 주룽지 중국총리가 "일본은 공식 문서를 통해 단 한 번도 중국에 대해 사과한 적이 없다"고 말한 것에 비하면 어제 원자바오 총리의 언급은 대단히 전향적인 것으로 받아들일만 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원 총리는 이제 그치지 않고 "중국의 개혁 개방과 근대화 과정에서 일본 정부와 국민으로부터 지원을 받았고 이 사실을 중국 정부와 인민들은 언제까지고 잊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과문에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저는 중국이 일본으로부터 '원조'를 받은 사실을 전혀 몰랐습니다.
중국은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하면서 이른바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지 않아 실제 배상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사실 때문에 중국이 일본으로부터 빚진 것이 전혀 없다고 생각했는데 원 총리의 말을 듣고 보니 사실은 그렇지도 않았던 모양입니다.
일본의 아시히 신문도 오랜 기간에 걸쳐 중국이 일본으로부터 원조를 받은 사실을 모를 뿐 아니라, 이런 말 자체를 듣는 것이 처음일 중국인들이 많을지도 모른다고 전하고 있습니다만 어쨌든 이런 이야기를 일본 국회에서 하고 그 상황을 중국 인민들에게 직접 전하려는 것은 상당한 정치적 함의를 담고 있는 것은 물론 중국 정부와 원총리로서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어제 원 총리의 국회 연설에 예민한 외교적 사안이 직접 언급되지는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야스쿠니 참배나 교과서 문제 같은 것 말이지요.
그러나 "행동으로 반성하라"는 원 총리의 말이
그 어떤 사람의 그 어떤 말보다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행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원 총리의 어제 연설은 피해자로서의 한이 아니라 용서하려는 관용이 녹아있고 진정으로 과거가 아닌 미래로 향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인들이 잘 알지도 못하고 있고 굳이 알려도 되지 않을 일본의 경제 원조 사실을 거론하면서 일본인에게 감사하다고 말하는 원총리의 대국적인 태도는 대단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런 원 총리를 아시히 신문은 위엄이 있다고 표현했습니다.
"당신들이 잘못했다는 말,높이 평가한다.그러니 이제 행동으로 그것을 보여달라"는 말은 부드럽게 들렸습니다.
그러나 그 말 한디로 아베총리의 야스쿠니 참배에 쐐기를 박았다고 일본 언론들은 평가하고 있습니다.
원 총리의 연설 중간에 십여차례에 걸쳐 의석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의례적인 박수일 수도 있겠지만 연설 후 일본 정치인들의 평가를 들어보면 공감의 박수였습니다.
적어도 과거사 문제에 관한 한 일본 정부나 지도자들은 한국이나 중국으로부터 끝도 없이 반성을 강요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정권이 바뀌면 반성과 사죄를 요구하고 자기들의 국내 정치적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과거 문제를 심심찮게 이용한다는 생각도 하고 있을 것입니다.
너희들이 제대로 반성,사죄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주는데도 그러겠느냐는 반론이 바로 가능하겠습니다만, 저는 어제 원 총리의 연설을 들으면서 반성을 강요하지 않고도 반성을 이끌어 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제 원 총리의 연설은 중국측의 강한 요청에 의해 중국 전역에 위성 생중계됐습니다.
반일 감정이라면 우리나라에 절대 지지 않는다고 하는 중국 사람들에게 어제 연설이 어떻게 들렸을지 궁금합니다.
무슨 의도로 원자바오 총리를 비롯한 중국 지도부가 어제 연설을 중국 인민들에게 바로 전달하고자 했는지 그 속내를 쉽게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과거에 발이 묶이면 안된다는 것,
진정한 친선과 우호의 관계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일본 국민과 지도자들에게뿐 만 아니라 자국 국민들에게도 설득할 필요가 있다는 정치적 판단에 따른 것임은 분명합니다.
지도자의 빼놓을 수 없는 덕목 가운데 하나가 국민의 여론을 따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때로는 국민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보면 어제 원자바오 총리의 일본 국회 연설은 지도자의 용기를 보여준 모범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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