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오랜만에 연극을 보고 '포만감'을 만끽한 날이다. 지난해 런던 출장 때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의 공연으로 본 아서 밀러의 '크루서블(Crucible)'을 한국에서 '드디어!' 다시 만난 것이다. 우리 말 제목으로는 '시련'으로 번역됐다. (연극 '시련' /29일까지,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
'크루서블'은 아서 밀러가 17세기말 미국 메사추세츠 세일럼에서 벌어졌던 청교도들의 마녀 사냥을 소재로 쓴 작품이다. 아서 밀러는 마녀로 몰려 화형당하지 않으려면 다른 사람을 마녀로 몰아야 하는 상황을 풀어나가면서 1950년대 미국 전역에 몰아친 매카시즘을 비판한다.
아서 밀러는 자신과 절친한 사이였던 엘리아 카잔(그는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을 연출했고 후에 '에덴의 동쪽' ;'워터프론트'를 감독한 거장이다)이 협박에 못 이겨 동료 여럿을 공산주의자로 지목하는 '위증'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곧바로 세일럼으로 달려가 자료 수집에 나선 끝에 이 작품을 완성했다. 아서 밀러 역시 '공산주의 활동을 한 다른 사람의 이름을 댈 것(naming names)'을 요구받았지만, 끝까지 증언을 거부하면서 반체제 인사로 몰려 갖가지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
'크루서블'은 아서 밀러 자신의 표현대로 'An Act of Resistance(저항의 연극)'이었다. 1953년 매카시즘 광풍 속에 뉴욕의 마틴 벡 극장에서 개막된 이 작품은 몇주간 어렵게 공연을 이어가다 막을 내렸지만, 주연을 맡은 배우들은 모두 '블랙 리스트'에 올라 고초를 겪었다. 아서 밀러는 이 작품이 이후 벨기에에서 공연될 때 여권 갱신을 거부당했다. 1956년 '위원회'에 출석한 아서 밀러는 '이름을 댈 것'을 거부하고 형을 선고받았다.
"I am trying to, and I will, protect my sense of myself.
I could not use the name of another.
I take responsibility for everything I have ever done,
but I cannot take responsibility for another human being."
아서 밀러가 '위원회'에서 증언을 거부하며 했다는 이 진술은 연극의 주인공 존 프록터가 '이웃이 악마와 함께 있는 것을 봤다'는 거짓고백(혹은 이름을 대는 것 naming names)을 거부하면서 하는 대사이기도 하다. 존 프록터는 자신과 한 때 불륜관계였던 소녀 아비게일의 복수심에서 비롯된 거짓말이 온 마을을 휩쓰는 마녀사냥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애쓰지만, 결국 제어할 수 없는 광풍 속에 자신까지 희생되고 만다. 그는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거짓을 거부하고 진실을 택한 고결한 인간이었다.
'배신은 인간이 타고난 본능이지만 이 본능에 굴복하기를 거부하는 것 또한 인간 본능'이라고 했다는 아서 밀러. 그는 인간의 광기와 위선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묘사하면서도, 이 광기를 넘어서는 고결한 인간의 승리를 보여준다. 이 승리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함으로서 완성되는 것이기에 비극적이면서도 감동적이다.
이 작품은 두번째 봐도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가슴 속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치밀어오르는 듯한 느낌은 여전했다. 존 프록터 역의 김명수 씨의 호연은 감탄할 만했고, 다른 배우들의 연기도 든든했다. 비록 정식 공연 개막 전의 드레스 리허설을 본 것이었지만, 나는 극이 끝나고 배우들이 인사할 때 손바닥이 얼얼해지도록 박수를 보냈다.
한국 공연의 연출을 맡은 윤호진 씨는 20여 년만에 이 작품을 공연하게 된 남다른 감회를 털어놨다. 그는 1970년대 유신 말기, 젊은 혈기로 사회 비판을 담아낸 이 연극을 준비하던 중 10.26이 일어났고, 이어 집권한 5공 군사정권의 견제로 결국 공연은 무산되고 말았다고 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그 시절 그 이야기를 꺼내며 언젠가 꼭 이 작품을 다시 올려 내 한을 풀고 싶다고 노래했던' 그가 20여 년을 곱씹어 고대했던 날을 드디어 맞이한 것이다. 윤호진 씨는 왜 이 작품이 제목처럼 오랜 시간을 두고 '시련'을 겪어야 했는지, 관객들이 무대 안에서 열쇠를 찾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런 작품을 만나면 새삼 '연극이 이래서 좋은 거야' 하게 된다. 오랫동안 '명성황후'를 비롯한 뮤지컬을 전문적으로 연출해온 윤호진 씨가 이 작품을 연출하면서, 시끌벅적한 도시 생활을 잠시 접고 고향집에 두고 온 애인과 재회한 것처럼 설레고 행복했다는 말을, 100퍼센트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연극 '크루서블'을 본다는 것은 휴식 시간까지 합치면 꼬박 3시간 반을 바쳐야 하지만, 인간과 사회에 대해 다시 사유하게 만드는, 진지하면서도 즐거운 체험이다.
프로그램에 실린 한국예술종합학교 김윤철 교수의 말을 인용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연극이 사회적 기능을 포기하고 사적인 담론으로 치닫는 세태를 향해 연극의 본질에 대해 다시 한 번 성찰하게 하는 계기를 제공해 주기를 희망한다. 짧고 가벼운 쾌락만 제공하는 연극이 주류를 이루는 요즈음, 길고 무거운 사유를 자극하는 연극이 색다른 즐거움의 원천이 될 수 있음이 증명되기를 희망한다. 예술도, 종교도, 정치도 모두 상업적 마인드에 함몰돼 있는 이 종말론적 시대에 의롭고 선하고 진실하기를 힘쓰는 인간이 더욱 절실히 요구되기 때문이다"
(**저는 지난해 봄 런던 출장길에 RSC가 공연한 '크루서블'을 보고 난 뒤에도 감상기를 보내드린 적이 있습니다. 이번 글과 약간 겹치긴 하지만 당시 글을 보시려면-> https://ublog.sbs.co.kr/shkim0423?targetBlog=36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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