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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다는 돈도 못찾아가는 북한

안정식

입력 : 2007.04.09 12:34


마카오 방코델타 아시아(BDA) 은행에 묶여있던 북한 자금을 미국이 풀어주겠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이 돈을 받아가지 못하면서 6자회담이 2주일째 교착 상태에 빠졌습니다. 이런 상태라면, BDA 문제 때문에 4월 14일까지 영변 핵시설을 폐쇄하기로 한 약속이 지켜지기 힘들 것 같습니다.

BDA의 돈을 북한이 못찾는 이유는?

북한이 BDA의 돈을 못찾는 이유를 살펴보면 다소 황당하기조차 할 정도입니다. 먼저, 50여개 계좌의 돈을 찾기 위해서는 계좌 주인들이 은행에 찾아와서 신청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이게 되지 않고 있습니다. 계좌 주인 가운데 이미 사망한 사람도 있다는 것으로 보아, 북한은 그동안 가차명 계좌를 마구 만들어서 사용해 온 것 같은데, 누가 언제 어떻게 계좌를 개설했는지 비밀번호가 무엇인지 파악이 잘 안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절차적 문제보다도 서방금융시스템에 대한 무지가 더 큰 문제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북한과 같은 나라는 정부가 결정하면 모든 것이 일괄적으로 행해지는 시스템일텐데, 은행에 계좌 주인들이 일일이 찾아가서 신청서를 작성해야 한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정부 당국자 가운데서는 북한 당국의 무지가 일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 밖에 BDA에 있는 북한 돈을 새로이 받아줄 은행이 없다는 것도 문제지만, 이 문제는 그동안 미국이 여러갈래의 해법을 고안한 결과,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의 속내는? 

평양에서는 지금의 사태를 보면서, '우리가 BDA를 가지고 고집피우길 잘했어. BDA 돈 받는게 이렇게 어려운데, 어물쩍 넘어갔으면 언제 돈을 찾을 수 있었겠어'라고 생각할 지도 모릅니다. 막무가내로 밀어붙인 결과, 그나마 미국이 온 신경을 쓰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또, 은행에 신청서도 제대로 내지 않은 채 계속 버티고 있는 것을 보면, 신청서 작성과 관련된 금융 절차도 결국은 미국이 정치적으로 풀어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북한의 시각으로 보면, 미국이 정치적 의지만 있으면, 모든 금융절차는 부수적인 문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협상파 입지 좁히는 북한

하지만, 북한의 이런 고집이 과연 북한에게 유리하게 작용할까요?

아마도, 미국의 협상파들 사이에서는 '에이 XX'이라는 욕이 절로 나오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돈을 돌려달라고 해서 돌려줬더니, 이제는 서류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돈을 직접 찾아달라고까지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지금 숨을 죽이고 있는 강경파들은 어떨까요? 속으로 아마 쾌재를 부르고 있을 겁니다. '거봐라. 북한과 같은 나라하고 협상한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북한은 원래 그렇게 말이 안되는 고집을 피우는 나라다'라며 협상파들을 비아냥 거리고 있을 겁니다.

결국, 이런 상황이 계속될수록 미국내 협상파의 입지는 좁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협상파가 힘을 얻기 위해서는 협상의 필요성을 가지고 강경파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의 상황은 그 반대로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의 갈 길이 험난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2.13 합의의 초기조치, 즉 영변 핵시설을 폐쇄하는 일 등은 어찌어찌 진행이 되더라도, 그 다음 단계로의 이행이 상당히 험난할 것이라는 전망을 하게 됩니다. 누구나 별 탈 없이 진행될 것이라고 봤던 초기조치마저 BDA라는 변수로 이 난리를 겪고 있는 마당에, 핵시설 불능화 등을 논의할  그 다음단계에 또 어떤 난관이 기다리고 있을 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난관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이번 BDA 사태로 인해 각국의 인내심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북한의 고집으로 인해 협상이 지연되고 있다는 인식이 높은 상황에서, 다음번에 또다시 새로운 난관이 등장했을 때, 그 때에도 각국이 협상을 위해 인내심을 발휘해줄 지는 미지수입니다.

북한은 이번에 고집을 피워 2500만 달러라는 돈을 받을 수 있을 지는 모르지만, 모처럼 조성된 협상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소탐대실'이라는 말은 이런 경우를 두고 쓰는 말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