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학입시 불문율
미국 대학 입시가 대충 끝났습니다.
12학년(고3) 2학기의 중간이 끝난 시점이니까, 대학 진학여부가 결정된 상황입니다.
그런데 요즘 부모들끼리는 불문율이 하나 있습니다.
“자녀가 어느 대학 갔나요”라고 묻지 않는 것입니다.
지난 연말 일찌감치 대학으로부터 조기 입학허가(Early decision)를 받아논 사람들이야 느긋하지만, 지난달 말까지 12학년(고3) 학생이나 학부모들은 말그대로 노심초사였습니다.
미국 대학의 입학허가증은 우편으로 전달됩니다. 그런데, 합격통지서는 두툼합니다.
합격통지는 물론 향후 일정, 각종 안내문, 광고등으로 척 받아드는 순간 두툼합니다.
반면, 불합격 통지서는 ‘미안하다. 유감이다. 다음에 보자’는 안내문 한 장 달랑 들어있으니, 당연히 얄팍합니다.
한국 학생이나 미국 학생이나 입학지원 형태는 대충 비슷합니다.
일차로 ‘하버드’로 대표되는 이른바 ‘아이비 리그’ 명문대학에 지원서를 넣어놓습니다. 이른바 ‘희망대학’입니다.
그리고 합격 가능성이 높은 중상위권 대학이나 자기 적성을 고려한 단과대학에 지원서를 제출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안전장치로 절대로 떨어질 리가 없는 지방대학이나 지역 단과대학(주로 000 College라는 이름이 붙은 대학)에 원서를 접수합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미국 수험생들은 ‘재수’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어딜 가도 가게 돼있습니다.
그런데, 올해 미국 언론이 평가한 올해 대학입시의 제목은 이렇습니다. ‘대학은 웃고, 학생은 울었다’ 올해 미국 대학입시가 최근 10여년 사이 최고였기 때문이랍니다.
가장 큰 이유는 1950년대 말부터 60년대 초까지 베이비붐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의 자녀들이 대학갈 나이가 됐다는 겁니다. 거기다 9.11 이후 움츠러들었던, 세계 각국의 유학생들이 몰려들면서 경쟁률이 대폭 올랐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미국인들의 대학 진학 욕구가 어느 때보다 높아졌답니다. 과거 미국인들은 대학 안 나와도 사는 데 지장없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젊은’ 미국 부모들은 자녀들의 대학교육이 필수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네요.
이렇게 삼박자가 맞아떨어져서, 미국 명문대의 경쟁률이 매년 갱신되고 있습니다.
하버드 대학의 경우 평균 경쟁률이 13% 였는데, 올해는 9.1%로 떨어졌다고 발표했습니다. 열 명이 지원하면 겨우 한 명 합격한다는 얘깁니다. 다른 대학들도 합격률이 대부분 10% 전후로 떨어졌습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대학은 학생들을 고르려고 하고, 학생들은 대학 합격통지서 받기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내신 학점은 물론, 우리의 수능격인 ‘SAT' 점수를 잘 받아도 명문대 들어가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입니다. 지원 과정에서 대학이 짭짤한 원서지원료 수입을 챙기는건 물론이지요.
대학입시 스트레스는 미국사람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필자의 큰 아들은 9학년. 우리로 치면 중3이지만, 미국 동부는 고등학교가 4년제라 고1이지요. 아들의 미국인 친구 부모들을 만나보면, 미국 부모들의 고민도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 환경을 제공해서 좋은 대학에 보내는가’에 집중돼 있습니다.
필자가 사는 동네는 미국 CIA 바로 옆 동네입니다. 대부분 집이 1960년에 지어진 낡은 집입니다. 그런데도 월세가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히 비쌉니다. 이유는 학군 때문이랍니다. 돈 좀 있고, 배웠다는 미국 부모들이 몰려들어서 이른바 ‘좋은 학군’을 형성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제가 아는 한 미국인 부부는 아들을 사립고등학교로 보낼까 고민하고 있다고 털어놓습니다. 여기가 좋은 학군이라는데 뭔 소리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합니다.
“당신, 애 다니는 학교에 가서 ‘작년에 이 고등학교에서 아이비 리그 대학에 몇 명 보냈냐고 물어본 적 있냐? 그렇게 묻지 마라. 만약 당신이 그런 질문을 하면, 학교는 당신에게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렇게 아들을 아이비 리그 보내고 싶으면 당장 사립고등학교로 옮겨라. 미국의 공립학교는 아이비 리그 진학이 목표가 아니다‘ 그건 사실이다. 미국의 공립학교가 아무리 좋다고해도, 사립고등학교 입시율을 따라갈 수가 없다. 문제는 돈이다. 나도 그걸 고민하고 있다. 정말 할수만 있으면, 애를 사립에 보내고 싶다. 그런데, 나와 내 아내는 둘다 공무원이다. 애를 사립에 보낼 돈이 없어 고민이다”
대학가기가 워낙 어려워지다 보니, 주변에 좋은 대학 보냈다고 자랑하는 부모보다 뭔가 성에 차지 않아 불만이 가득한 부모들이 더 많아 보입니다. 이런 부모들에게 ‘애가 어느 대학 갔나요?“라고 물어봐야, 좋은 대답이 돌아올 리가 없습니다. 좋다는 대학 보낸 부모들은 어떤 형식으로든 주변에 자랑을 하기 마련입니다.
미국 학생과 부모는 비교적 이런 스트레스를 쉽게 극복한다고 합니다. 어느 대학이든 들어간뒤에 편입을 통해 원하는 대학으로 옮기고, 그 다음에 다시 대학원으로 가는 길이 비교적 넓기 때문이죠. 그래서 미국을 ‘패자부활전의 나라’라고 말하기도 하죠.
이 원칙은 한국 학생들에게도 적용되는데, 한국 부모와 학생들은 워낙 대학 입학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보니까, 원하는 대학에 안 될 경우 충격과 스트레스가 더 크기 마련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미국도 좋은 대학으로 가는 문은 좁습니다. 그리고 그 좁은 문을 향해 달려가는 욕구도 한국 못지 않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순위가 공식적으로 발표되고, 대학 순위도 매년 공표됩니다.
최소한 미국인들에게 ‘스트레스 없이 공부하고, 실컷 놀고, 하고 싶은것 다 한 뒤’ 좋은 대학 가는 길은 없습니다. 현실은 현실로 받아들이죠. 공부를 잘하고 열심히 하는 학생은 인정해줍니다.
어쨌든 미국이 이런 스트레스 속에 치열한 대학입시를 거의 마쳤습니다.
학생들은 희비의 감정을 가라앉히고 새로운 세계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순간, 지구 반대편 한국에서는 교육 평준화와 3불 정책을 놓고 또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접합니다.
그 기사 옆에는 한국에서 미국에 유학온 학생 숫자가 10만 명을 넘었다는 통계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고, 잘못됐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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