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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 부조화의 조화

남상석

입력 : 2007.04.07 11:52|수정 : 2007.04.07 14:55


이 영화를 보면서 일본이 영화 분야에서는 독창적인 예술성과 정교함에서 우리나라가 따라가기 어려울 만큼 풍부한 인적 물적 자원을 갖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재용 감독의 [다세포 소녀]와 박찬욱 감독의 [사이보그지만 괜찮아]가 비슷한 형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독창적인 상상력에서는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대중을 끌어들이는 재미라는 측면에서는 참혹한 실패를 피하지 못했으니까요. 기발한 상상력과 미학적 완성도는 높았지만 이야기의 타당성과 개연성을 대중들이 원하는 선까지 구축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많은 점을 시사해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꿈을 이루겠다며 도쿄로 올라왔지만 한심한 백수생활에 젖어있는 21살 청년 슈, 어느 날 아버지가 찾아와 ‘네가 몰랐던 집나간 고모가 있었는데 엊그제 숨졌다. 나는 유골을 갖고 얼른 돌아가야 하니 네가 고모 집에 가서 유품을 정리해라.’라는 말을 듣습니다. 슈는 쓰레기와 먼지투성이인 고모의 허름한 단칸방에서 유품을 정리하면서 마츠코가 뚱뚱한 몸에 씻지도 않고 냄새를 피우고 다녀 이웃들로부터 ‘혐오스런 마츠코’라고 불리다가 강가 공원에서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됐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1947년에 태어나 55세로 일생을 마감한 고모의 삶을 재구성합니다.

1947년 후쿠오카에서 태어난 마츠코는 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교사로 일할 때까지는 난치병으로 누워있는 여동생만 빼고는 화목한 가정의 행복한 딸이었습니다. 수학여행에서 일어난 절도사건 때문에 해고당한 뒤 무작정 가출을 감행하고 이후 파란만장한 그녀의 고단한 삶이 시작됩니다. 염세적인 작가지망생과 동거를 하지만 곧 자살을 하고, 평소 그녀를 흠모해온 그 작가지망생의 친구인 유부남과 맺기 시작한 불륜도 오래가지 못합니다. 이후 마사지걸, 창녀 등의 밑바닥 직업을 전전하다가 뜻하지 않은 살인을 저질러 수감생활까지 하다가 비운의 죽음으로 생을 마감해야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줄거리만 늘어놓고 보니 아주 뻔 한 신파극 같습니다. 다양한 남자들에게 순정을 바쳤건만 이기적인 남자들은 마츠코를 이용만 하다가 버리고, 냉혹한 현실은 그녀를 타락의 밑바닥까지 굴러 떨어뜨리는 운명의 장난! 하지만 영화의 형식은 내용과는 정반대인 판타지 코믹 뮤지컬입니다. 그것도 아주 독특하고 정교하게 잘 짜여 좀체 흠이라고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도입부는 다소 어수선하게 시작되지만 마츠코가 누구였을까를 추적하기 시작하면서 영화는 놀라운 흡인력으로 관객을 끌어들입니다. 예쁘고 깜찍한 여자가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은 입술을 뒤집고 눈을 가운데로 모으는 괴상하리만큼 우스꽝스런 표정의 기원을 설명하는 부분부터 감독은 쥐락펴락하는 적절한 호흡으로 비극적인 내용을 때로는 판타지로, 때로는 뮤직 비디오 같은 감각적인 화면의 뮤지컬 형식으로 풀어냅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무엇일까요. 제가 볼 때는 한 여자의 순수하고 소박한 꿈입니다. 외로움에 떨어야하는 ‘혼자’가 아니라 바로 ‘다녀왔습니다.’ 할 때 ‘어서와’ 하며 자신을 따듯하게 맞아주는 사람이 곁에 있는 그런 수준입니다. 마츠코는 혼자여야 한다는 것을 못견뎌하는 천성을 타고 났습니다. 이성 관계를 떠나 인간관계에서 ‘저 사람이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거나 좋아하지 않으면 어떡하지’하는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하지만 마츠코는 이런 성향이 그 누구보다 강합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아무리 돈 없고 싹수없는 한심한 인생이라도 바보스러운 맹목적 사랑으로 감싸 안으려 합니다. 하지만 상대방은 어김없이 마츠코의 소박한 기대를 여지없이 배신합니다. 그래도 우리의 마츠코는 꿋꿋하기만 합니다. 마지막 죽음의 순간까지 새로운 희망을 버리지 않는 그녀의 태도는 그래서 설득력을 얻습니다.

 페미니즘 진영에서 남자들의 로망내지는 판타지라며 비판할 여지가 많을 정도로 주인공의 생각과 삶의 방식이 너무나 극단적이어서 관객이 절대 동일시할 수 없지만 고모와 조카가 죽음과 삶의 경계를 뛰어넘어 교감하는 마지막 장면부터는 야릇하게 마음이 움직이다가 어느새 눈물까지 주르륵 흐르게 만드는 이상한 마력이 있습니다.

 

 

여주인공 마츠코역에는 [역도산]에서 역도산의 아내로 나온 조신한 이미지의 나카타니 미키가 나오는데 그녀의 필모그래피를 잘 모르지만 [역도산]만 놓고 비교한다면 정말 이게 그 배우 맞나 할 정도로 놀라운 연기변신을 보여줍니다. 이런 그녀에게 일본 아카데미를 비롯한 여러 영화제는 여우주연상을 안겼습니다. 조연들도 빵빵하고 모두 살아있는 개성으로 무장했는데 특히 마츠코의 교도소 친구이자 AV업체 사장인 우아하고 농염한 여배우의 황당 코믹 연기가 진한 인상을 남깁니다.

2년 전 [불량공주 모모코]로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은 이번 작품을 경쾌하고 참신한 영상에 원숙해진 스타일과 매끈한 다듬질로 업그레이드 시켰습니다. 젊은 20대 천재 감독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자료를 찾아보니 1959년생으로 쉰 줄을 바라보는 노장으로 CF 감독 출신이랍니다. CF에서 영화로 전향한 이유는 TV 드라마 같은 영화들이 판치는 일본 영화계의 관습에 도전하고 싶어서였다는데 그 도전은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 영화계에 모범을 보일만큼 성과를 거뒀습니다. 아무리 삐딱한 시선으로 흠을 잡아내려 해도 찾아내기 어려운 이런 영화에 대한 글을 쓸 때 저도 신이 납니다. 기대하고 발품발아 본 시사회에서 맛보는 아쉬움과 실망때문에 오는 피로와 짜증을 단박에 날려버리는 이런 영화를 볼 수 있어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