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국제음악제는 윤이상 선생의 고향에서 열리는 만큼, 윤이상의 음악을 중심으로 한 현대음악제로 시작됐다. 그러나 아무래도 '현대음악'은 대중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일. 좀 더 많은 관객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고 싶은 음악제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
이용민 사무국장은 윤이상 선생의 곡을 공연마다 최소 한 곡씩은 연주하고, 나머지 레퍼토리는 비교적 친숙한 곡들을 연주하도록 프로그램을 짰다고 설명했다. 또 주말과 휴일에는 재즈나 비교적 대중적인 클래식 프로그램으로 선곡해 가족이나 연인 관객들을 끌어들이려 노력했다고 밝혔다.
사실 클래식도 팝이나 가요에 비하면 '비대중적'인 장르이긴 하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봤을 때 현대 작곡가의 음악보다는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뭐, 이런 작곡가들의 작품이 훨씬 친숙한 것은 사실 아닌가.
(덧붙이자면, 통영 국제음악제의 고민 또 하나는 예산 문제다. 1년 음악제 예산이 15억. 이 중 콩쿠르 예산 3억을 빼고 나면 12억원으로 모든 공연과 기타 행사들을 기획하고 꾸려가야 한다. 별로 넉넉한 예산은 아니다. 그래서 음악제측은 다른 공연장이나 기획사에서 초청한 연주자들을 통영으로 불러 한 번 더 공연하도록 일정을 잡기도 하고, 처음부터 다른 공연장과 공동으로 공연을 추진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통영에서만' 볼 수 있는 연주자는 많지 않다는 아쉬움도 있다.)

통영 국제음악제의 개막 공연은 크로노스 콰르텟이 맡았다. 크로노스 콰르텟은 '선 링즈'에 관한 글에도 썼지만, 현대음악 전문 앙상블로 유명하다.
이번 연주회에서는 음악제가 위촉한 이도희 씨의 '시나위', 윤이상의 현악4중주 5번, 테리 라일리의 'The Cusp of Magic', 민속음악 'Namu Amida', 인도의 영화음악 작곡가 부르만의 'Mehbooba Mehbooba', 그리고 중국인 작곡가 탄 듄의 '고스트 오페라'를 연주했다.
정말 솔직하게 말하자면, 중간에 살짝 졸기도 했고, 낯선 선율들이 조금 버겁게 들릴 때도 있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재미있는' 공연, 한 번쯤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공연이었다.
이도희 씨의 '시나위'는 국악의 흔적이 느껴지는 곡이라 흥미로웠고, 테리 라일리의 곡은 온갖 인형과 장난감을 들었다 놨다 하며 소리내는 연주자들의 모습을 보는 게 즐거웠고, (이 인형과 장난감들은 리더 데이빗 해링턴이 수집한 것이라는데, 데이빗은 이 곡의 컨셉에 맞춘 것인지, 마치 피에로 같은 느낌의 알록달록한 셔츠를 입고 나왔다. 위 사진에서 장난감까지 확인해 볼 수 있다.) 민속 음악 '나무 아미다'나 부르만의 '메부바 메부바'에서는 비파 연주자 우 만과 협연하며 매력적인 소리를 들려줬다. 결국 이건 요즘 유행하는 '월드 뮤직' 아닌가. 사실 나에게는, 윤이상 선생의 곡이 가장 난해하고 어렵게 들렸다.

탄 듄의 고스트 오페라는, 연주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무대 장치나 소품을 이용해 온갖 퍼포먼스를 벌여야 하는 작품이었는데, 중국의 그림자극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고 한다. 맨발로 나온 연주자들이 '야오~ 야오~!' 하며 귀신을 부르는 소리를 내고, 조명을 받은 물그릇을 앞에 두고 손으로 찰랑거리며 물소리를 '연주'하기도 한다. 이미지와 소리를 즉각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공연인 것 같은데, 어렴풋이, '자연'과 원시적인 '생명'을 표현하려 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앙코르 곡으로 연주한 지미 핸드릭스의 'Purple Haze'는 이 날 공연의 하이라이트라고 해도 될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그러고 보면 지미 핸드릭스 역시 시대를 앞서간 '현대 음악가'가 아니었을까. 이 곡의 연주가 끝나자 공연장은 마치 록 콘서트처럼 설레고 열광적인 분위기였다.
공연이 끝나고 나오면서, 이 공연에서 중국 악기인 비파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것처럼, 이왕이면 한국 악기의 협연도 있었더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도 했다. 이도희의 '시나위'는 한국 전통음악의 분위기가 나는 곡인데, 악기는 등장하지 않고 콰르텟은 미리 녹음된 소리에 맞춰 연주했다.
또 한 가지, 크로노스 콰르텟의 연주자들이 멋있다는 생각도 했다. 30년 이상 현대음악을 전문으로 연주해온 앙상블. 낯설어 보이는 퍼포먼스도 마다하지 않고, '친숙해 보이는' 것에 안주하지 않는 실험 정신이 그들을 빛나게 하는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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