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가에는 [300]의 인기가 좀처럼 식지 않고 있습니다. 27일 현재 200만 관객을 돌파했다고 합니다. 영화속에서 백만 페르시아 대군을 격파한 300명의 스파르타 전사들이 현실에서는 300만 관객을 불러모을 것 같습니다. (제가 지난번 글에서 조니 클루니와 너무 닮았다고 했던 스파르타 왕 역의 제라드 버틀러의 수염깎은 '쌩얼' 사진이 모 영화잡지에 실린 것을 보고 너무 실망했습니다. 하나도 안 닮았어요.) 소설을 원작으로 한 [향수]가 [300]의 절반 정도로 2위를 차지했고, 짐 캐리의 [넘버23]이 3위, 한국영화로는 최양일 감독의 [수]가 초라한 성적으로 겨우 4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번 주에는 휴먼코미디와 스릴러 장르의 한국영화와 폴 버호벤,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작품 등이 개봉됩니다.
이장과 군수(감독:장규성, 주연:차승원, 유해진)

장규성 감독은 2002년 한국 최초의 패러디 영화를 표방한 [재밌는 영화]로 충무로에 데뷔했는데 흥행에선 고배를 마셨습니다. 이후 [선생 김봉두]와 [여선생 vs 여제자]를 통해 폐교와 임용고시 등 교육 현실의 문제점을 배경으로 하며 따뜻한 시선으로 흐뭇한 웃음을 그려냈습니다. 그러던 그가 이번에는 지방자치제, 더 큰 틀로는 정치 현안에 초점을 맞춘 듯한 영화로 찾아왔습니다. 시사회 이후 영화계 말 만들기 좋아하는 참새양, 참새군들은 노무현 대통령을 빚대어 만든 영화라고 수군거리기도 하더군요. 영화 속에서 노대규라는 젊은 사람이 예상을 뒤엎고 군수로 당선되고 경험 미숙으로 여러 가지 마찰과 소동을 겪기 때문입니다.
시골마을에서 치매로 고생하는 아버지를 모시며 순박한 노총각으로 사는 춘삼(차승원)은 얼떨결에 젊은 마을 이장에 떠밀려 취임합니다. 나름대로 일좀 해보려고 하는데 어린 시절 반장을 도맡아 하던 춘삼 밑에서 부반장을 하던 노대규라는 친구가 군수에 출마하고 덜컥 당선이 되어 버립니다. 자신보다 공부도 못하고 싸움도 못하던 친구를 군수로 모시려니 속이 편할 리가 있겠습니까. 처음에는 춘삼이 마을에 도로 포장도 해주고 좋은 관계로 시작했지만 동창회의 굴욕 등을 통해 춘삼은 군수의 야심찬 계획인 방폐장 유치에 정면으로 맞서면서 철천지 원수 사이가 됩니다.
모델 출신 배우 차승원이 덜떨어진 이장이고 개성있는 얼굴의 유해진이 젊은 군수역으로 맡아 일단 배역에서 반전을 시도했습니다. 유해진 어머니로 나오는 전원주씨, 정말 모자지간 같습니다! 초반의 티격태격 까지는 무리없이 진행되고 차승원과 멜로라인을 구축하는 면사무소 젊은 여직원 최정원의 개성있는 연기도 감초 역할을 합니다. 이 여배우는 얼굴만 보고는 새침한 공주과인것 같은데 무대인사때나 영화속 모습에서는 약간의 푼수끼도 있고 개그맨 요소도 있어 사람을 편하게 무장해제시키는 매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갈등축으로 설정한 방폐장 문제가 나오면서 현실에 대한 직접적인 차용이 정교하지 못해 완성도가 떨어집니다. 과격시위나 분신 시도같은 장면의 차용은 조금 위험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장 감독 영화의 특징인 행복한 화해로 결말을 맺게 됩니다. 시골은 서울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등장하고 바로 이 시골이라는 무대에서 대립과 갈등은 결국 우정으로 회복한다는 결론이 나는 착하고 따뜻한 시각은 일관되지만 영화적 완성도와 공감의 폭에서는 그의 두 번째 작품이었던 [선생 김봉두]에는 못 미치는 것 같습니다. 장 감독에게는 같은 시선과 철학을 유지하더라도 좀더 색다른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됩니다.
블랙북(감독:폴 버호벤)

[로보캅], [토탈 리콜], [원초적 본능] 등으로 할리우드를 주름잡는 명감독으로 떠올랐다가 [쇼 걸], [스타쉽 트루퍼스], [할로우맨]의 흥행 실패로 하향곡선을 그리며 침체에 빠졌던 폴 버호벤 감독이 [할로우맨] 이후 거의 7년 만에 [블랙북]으로 돌아왔습니다. 감독이 한 작품을 잘 만들 수는 있지만 계속 좋은 작품을 만들기는 어렵다는 영화계의 격언 아닌 격언의 적절한 사례라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이번 영화는 할리우드가 아닌 자신의 고국인 네덜란드에서 네덜란드어로 만들었습니다.
2차 대전 말기의 네덜란드, 유태인 여성 레이첼은 독일군의 눈길을 피해 탈출하다가 독일군에게 발각돼 가족과 일행이 모두 몰살당하고 자신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습니다. 레이첼은 레지스탕스 조직에 들어가고 금발로 염색한 뒤 독일군 사령부에 들어가 문츠 대령(‘타인의 삶’에서 저항시인으로도 나옵니다.)의 비서로 일하며 저항운동을 돕습니다. 조금 양심적인 문츠 대령은 그녀를 스파이로 의심하는 것 같지만 사랑에 빠졌기 때문에 소극적인 도움을 줍니다. 그런데 그녀가 빼내온 고급 정보에 의존한 저항 활동은 모두 발각되고 번번이 수포로 돌아갑니다. 레지스탕스 내부에 독일군의 스파이, 즉 변절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많이 접해 온 2차 대전 유럽의 상황인데 영화가 재미있어지는 것은 그 다음부터입니다. 독일이 항복하고 새 세상이 오자 인간 군상들의 다양한 탐욕과 배신의 파노라마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집니다. 네덜란드판 과거사 청산 격인 영화로 빠른 편집과 군더더기 없는 진행, 다소 충격적인 장면을 과감하게 보여주는 등 세련됨, 매끄러움 보다는 거친 힘을 가진 거장 감독의 내공이 살아있음을 보여줍니다.
뷰티풀 선데이(감독;진광교, 주연:박용우, 남궁민)

박용우 하면 지난해 의외의 흥행대박을 터뜨린 [달콤, 살벌한 연인]이 생각납니다. 엉뚱하면서 신경질적이고 말많은 개성만점 연기로 새롭게 각광을 받아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후속 작품들인 [조용한 세상], [호로비츠를 위하여]에서 좋은 연기를 선보였음에도 불구하고 흥행은 그리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이번에도 그럴 것 같습니다.
영화는 두 남자의 이야기가 병렬적으로 진행됩니다. 강형사(박용우), 강력반 형사인데 늘 불안하고 피곤에 지친 모습으로 다닙니다. 병원에는 식물인간이 된 아내가 몇 년째 누워있고 형사의 박봉으로는 병원비를 감당하지 못해 폭력조직과 검은 결탁합니다. 하지만 씻을 수 없는 죄의식으로 괴로워합니다.
고시생 민우(남궁민), 내성적인 성격의 그는 이웃에 사는 수연(민지혜)의 출퇴근 하는 모습을 창밖으로 훔쳐보며 남몰래 짝사랑합니다. 그 짝사랑은 거의 스토킹 수준까지 발전하다가 우발적으로 그녀를 강제로 범합니다. 몇 년이 흐른뒤 우연히 수연과 재회한 민우는 자신의 과거를 숨긴채 결혼해 아이까지 갖게 됩니다. 하지만 수연은 민우의 과거를 알게되고 충격을 받고 결별을 선언하고 민우 곁을 떠납니다. 수연을 찾아낸 민우는 몸싸움을 벌이다 그녀를 칼로 찌르고 죄책감에 시달리던 그는 경찰서를 찾아가 강형사 앞에서 자신의 죄를 자수합니다.
두 남자가 마주하고 서로 기싸움을 벌이는 장면에서 두 배우의 연기력은 빛을 발합니다. 특히 박용우는 특유의 개성을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하지만 다른 장면에서는 어째 자신에게 안맞는 옷을 입은 듯해서 아쉽습니다. 인간의 죄의식은 과연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하는 묵직한 주제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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